▲평화발걸음에 참가한 주요 인사들이 자유의 종을 치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지희 기자

[이지희 기독일보·선교신문 기자] "북한, 중국을 거쳐 유럽까지 연결되는 유라시아 철길을 통해 자유와 복음이 전파되는 그날이 하루 빨리 오길 기대합니다"

국제연합(UN)이 창설된 지 69주년이던 지난 24일 동아시아에서 가장 긴장된 지역인 비무장지대(DMZ)에 한국과 중국, 일본 3개국의 목회자, 선교사, 교수, NGO 운동가, 북한이탈주민 등 33명이 모였다. 사단법인 평화한국이 23일 제1회 국제평화NGO컨퍼런스를 개최한 데 이어, 이튿날 'DMZ, 155마일 평화발걸음'이라는 특별한 행사를 연 것이다.

참가자들은 임진각, 도라전망대, 제3땅굴, 도라산역을 순서대로 다니며,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했다. 특히 이들은 일정마다 짧게 기도시간을 가졌고, 도라산역에서는 각국 참가자들을 위해 서로 축복기도를 해주며 한반도와 동아시아 평화를 간절히 소원했다.

▲도라산역에서 공식 일정을 마무리하며 한·중·일 3개국 참가자들은 서로 축복기도를 해주었다.   ©이지희 기자

평화한국은 올해만 세 번째 DMZ 탐방 행사를 열었다. 행사 실무를 맡은 서민규 평화한국 국장은 "DMZ는 한반도 안에서 가장 긴장된 곳"이라며 "북한을 바라보며 기도하고 한반도 평화를 그려보는 가장 좋은 공간"이라고 말했다.

아카바네성서교회 소속 노데라 히로부미 박사는 "일본 제국주의 시대 이후 남북 분단에 일본도 책임이 있다"며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이 모임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자유의 다리 너머 보이는 비무장지대에도 단풍이 곱게 물들었다.   ©이지희 기자

24일 오전 실향민들의 아픔을 달래기 위해 1972년에 세워진 남북 분단의 상징 임진각. 1953년 1만 2천7백여 명의 전쟁포로들이 귀환하던 '자유의 다리' 너머 바라본 DMZ 일대는 남쪽과 똑같이 단풍으로 물들어 있었다.

자유의 다리에서 만난 김영한 숭실대 교수는 "10여 년 만에 임진각에 왔다"며 "내년 분단 70주년을 앞두고, 폐쇄된 북한 사회에서 자유의 물결과 함성이 홍수처럼 휘몰아쳐 한반도의 자유를 되찾고, 진정한 발전과 번영을 이루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더 나아가 "한반도에서 시작된 철마가 평양, 신의주를 거쳐 유라시아까지 뻗어 나가는 때가 올 것"이라며 "그때 한국은 유라시아의 평화국가가 되고 복음을 전 세계로 새롭게 수출하는 국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임진각을 출발하기 전 한 사람도 빠짐없이 높이 3.4m, 지름 2.2m, 무게 21톤인 '평화의 종'을 힘껏 쳤다. 웅장하게 울려 퍼지는 종소리가 바람을 타고 철책선을 넘어갔다. 종을 치고 난 후엔, 종을 두 팔로 안으며 북한 동포와 평화 통일을 위해 기도했다. 유관지 목사는 "종이 막 운다. 지금은 평화가 아니라고 운다"고 말했다.

경의선도로남북출입사무소에서 점심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눈 '북한이탈주민' 한윤복 양(성서대 사회복지학과 2학년)은 "지금쯤 고향인 함흥에서도 가을걷이가 한창일 것"이라며 "북한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또 "통일이 빨리 됐으면 하는데, 쉽게 안 될 것 같다. 통일이 되면 고향에서 살 것"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도라전망대에서는 자욱한 안개에 가려 북한이 잘 보이지 않았다.   ©이지희 기자

도라전망대에서는 휴전협정 당시 격전으로 희생된 군인들의 피가 강이 되어 흘렀던 사천강이 보였다. 그 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의 선전마을인 기정동과 남한의 대성동 마을이 있다. 아쉽게도 안개가 껴 먼 곳까지는 보이지 않았지만, 세계에서 가장 높이 설치된 대형 인공기와 건너편의 태극기가 어렴풋이 보였다.

제3땅굴 입구에서는 분단 역사와 DMZ 생태계를 보여주는 영상을 본 후 DMZ 유물과 자료 전시관 등을 관람했다. 1시간에 3만 명의 병력이 이동할 수 있도록 제작된 제3땅굴은 서울에서 불과 52km 거리에 있다. 북한이 파놓은 땅굴까지 뚫은 인공터널을 지나 개방된 곳까지는 걸어서 왕복 30여 분 정도다. 중간 중간 폭탄을 넣고 폭파시키기 위해 북한이 바위에 뚫은 구멍들이 보였다. 지질학상 석탄이 발견될 수 없는데도, 북한이 퇴각하며 위장수법으로 화강암 벽면에 석탄으로 까맣게 칠한 곳도 눈에 띄었다. 돌아 나오는 마지막 오르막 코스는 젊은이들에게도 쉽지 않았다. 모두들 가쁜 숨을 몰아 쉬며 밖으로 나왔다. 그래도 어린이, 외국인 등 관광객들로 많이 붐볐다.

북한으로 가는 첫 번째 역인 남측 최북단 도라산역에서는 DMZ트레인 앞에서 마지막 단체사진을 촬영했다. DMZ트레인은 오전 8시 30분, 오후 1시 40분 하루 두 번 서울역에서 출발한다.

▲제3땅굴 입구에는 DMZ 영상관과 전시관, 상징 조형물 등이 있다.   ©이지희 기자

이와노 유스케 관서학원대 교수는 "실제 분단지역에 와보니 애절함이 느껴진다"며 "근·현대 평화사상의 바통을 이어받아 21세기 현대에 맞는 새로운 고민이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평소 학생들을 데리고 한인타운을 방문하고, 성경적 평화에 대한 해석과 적용을 하고 있다는 그는 "한·중·일이 자꾸 만나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평화운동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에서 고아원, 양로원 사역을 하고 있는 박영권 왕청가나안농군학교 교장은 "배고픈 북한 동포를 위해 식량을 지원하는 일이 가장 우선돼야 할 것"며 "이와 함께 1907년에 일어난 하나님의 위로가 다시 북한 땅에 일어나도록 기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처음 DMZ를 방문한 박창헌 사모는 "북한 동포를 대할 때, 대가를 바라지 않고 전하는 '아가페 사랑'이 중요하다"며 "남한 주민의 마음이 하나 되면, 북한도 빨리 마음을 활짝 열고 통일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관지 북한교회연구원 원장은 "한일 간 독도, 한중 간 이어도 문제 등 영토분쟁, 역사분쟁 등 동아시아의 분쟁은 갈수록 더 심각해질 것"이라며 "UN이 태어난 날, 한·중·일 종교 지도자, 평화 운동가들이 동아시아의 화약고 같은 이 현장을 찾은 것은 의미가 깊다"고 말했다.

그는 또 "남북 분단에는 중국의 영향이 크고, 일본의 책임도 있다"며 "전날 3국이 모여 근현대 평화사상을 발표했을 뿐 아니라, DMZ에서 하나님이 원하는 복음 안에서의 평화를 기원하면서 질적, 양적으로 더 풍성한 모임이 되었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DMZ를 공식 방문한 이후 25일까지 '한국의 멋·맛·신(信) 체험'을 위해 전주한옥마을과 전주양정교회로 발걸음을 옮겼다.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평화한국 #DMZ #임진각 #도라전망대 #제3땅굴 #도라산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