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수
발제하는 박명수 박사. ©이동윤 기자

[기독일보 이수민 기자] 서울신학대학교가 25일 '한국성결교회 인물연구 특별 학술세미나'를 개최한 가운데, 박명수 박사(서울신대 교회사,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장)가 "이명직과 동양선교회: 1930년대 자치와 자립논쟁을 중심으로"를 발표하면서 한국 성결교회의 초기 모습을 설명했다.

한국성결교회는 1907년 동양선교회가 한국인 사역자들과 함께 세운 교단으로, 동양선교회는 한국에 사중복음을 전하고, 성서학원을 세우고, 한국 사역자들에게 재정을 지원했다. 그러나 박명수 박사는 "동양선교회는 한국인 지도자들의 도움이 아니었으면 오늘의 성결교회를 만들 수 없을 것"이라며 "동양선교회가 한국에서 사역을 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은 이명직 목사"라 했다.

이명직 목사는 1914년 목사 안수를 받은 다음에 한국성결교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다 감당했다고 한다. 성결교회의 최고 중요한 자리인 이사직에 선임되었으며, '활천'을 창간하고, 헌법을 만들었고, 성결교회 약사를 편찬했으며, 한국인으로서는 성서학원의 초대원장을 지냈고, 성결교회 연회, 총회 등 모든 중요한 직책을 감당했던 것이다. 박 박사는 "만일 동양선교회가 이명직이라는 지도자를 만나지 않았다면 오늘의 성결교회는 존재하기 힘들다"고 했다.

박명수 박사는 "동양선교회도 이명직도 다같이 자치와 자립을 강조하고 있었다"고 말하고, "동양선교회는 원래 토착선교는 토착인이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아울러서 새로운 지역으로 선교지를 개척하기 위해서는 기존 선교지역을 독립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면서 "이명직 목사는 한국교회는 한국사람이 이끌어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보았고, 단지 이것을 위해서는 한국인의 자립능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박 박사는 "이런 동양선교회와 이명직 목사의 노력은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고 말하고, "1920년대 중반부터 1930년대 중반까지 양측은 다같이 한국성결교회의 자치와 자립을 목표로 하여 노력했지만 결국은 실패하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한국성결교회는 동양선교회의 주도아래 놓이게 됐다"고 이야기 했다.

고 이명직 목사
성결의 아버지 故 이명직 목사 ©기독일보DB

먼저 박 박사는 동양선교회가 "어떻게 한국성결교회의 자치와 자립을 가능하게 할 것인가를 깊게 생각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동양선교회는 자립을 너무나 일방적으로 강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 한다"고 했다. 중국선교에 지나치게 몰두한 나머지 한국성결교회에 대한 재정적인 책임에서 벗어나려고 했기 때문이란 것이다. 그는 "당시 한국성결교회가 역사상 유래가 없는 성장을 경험하고 있었고, 따라서 재정도 더욱 필요한 상황"이었다고 말하고, "전자치와 전자립을 너무나 지나치게 연결하지 않았는가 생각이 된다"고도 했다.

이어 박 박사는 "이명직 목사가 한국교회의 경제적인 자립이 이뤄져야 자치가 가능하다고 생각했고, 그가 택한 방법은 성결교회의 성격, 즉 신앙의 부흥을 통해 경제적인 자립을 이룩하겠다는 것"이라 설명했다. 그러나 이것에 대해 "이런 이명직 목사의 방법은 원칙적으로 옳았지만, 1930년대 한국의 현실은 너무나 가혹했다"면서 "결국 이명직 목사는 원칙적으로는 좋으나 한국사회의 현실은 너무나 어려워서 그의 꿈대로 이루어질 수 없었다"고 이야기 했다.

더불어 "한국성결교회는 내부에서 갈등을 일으키고 있었다"면서 "한국사회의 고질병인 확인되지 않은 루머를 가지고 한국성결교회 내에서 갈등을 조장하고, 이명직 목사를 중심으로 하는 기존의 지도부를 불신했다"고 지적했다. 당시 한국성결교회는 동양선교회와 대립관계를 통해서는 발전할 수 없는 구조를 갖고 있었는데, 동양선교회가 받아들일 수 없는 인사를 총회장으로 세웠고, 이는 현명하지 못했던 일이라는 것이다.

박명수 박사는 "선교 역사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 가운데 하나가 토착교회에 리더쉽을 이양하고, 스스로 자립하게 하는 것"이라면서 "1930년대 벌어진 자치와 자립 운동은 결국 양측의 미숙으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고 했다. 그러나 1940년 태평양전쟁이 일어나자 동양선교회는 한국을 철수하게 되었고, 한국성결교회는 선택의 여지가 없이 자립해야만 했다. 그는 "아이러니 하게도 한국성결교회의 자립은 태평양전쟁으로 이루어졌고, 외형상 이것으로 자치도 이루어졌다"면서 일제 말 재림을 강조한다는 이유로 해산됐던 것과 해방 이후 동양선교회와의 재 관계설정으로 이어지면서 지금의 한국성결교회가 있음을 설명했다.

한편 행사에서는 박명수 박사의 대표발표 외에도 "정빈과 성결교회의 시작"(정병식) "최석모의 생애와 복음전도활동"(박문수) "이건과 복음주의 사상"(박종현) "이성봉과 부흥설교"(박형신) "정진경과 한국교회 연합운동"(장금현) "김상준과 사중복음"(박찬희) "김응조와 사중복음"(배본철) "박현명과 교회 리더쉽 형성"(주승민) "김유연, 민족을 품은 성결운동가"(배덕만) "조종남과 서울신학대학교"(박창훈) 등의 발표가 이뤄졌다. 행사는 서울신학대학교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가 주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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