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대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소장 박명수 교수)가
제21회 영익기념강좌가 29일 오전 서울신대에서 열렸다. 발제자들이 발표하고 있는 모습.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 제공

[기독일보 조은식 기자] 좌우의 대립이 지금처럼 심각하게 표출된 적이 없었던 이유로 근현대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요즘, 서울신대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소장 박명수 교수)가 "해방공간과 기독교"란 주제로 '제21회 영익기념강좌'를 개최했다.

29일 낮 서울신대 우석기념관 강당에서 열린 행사에서 먼저 이은선 교수(안양대 기독교문화학과)는 "대한독립촉성국민회(독촉국민회)와 기독교 지도자들"이란 주제로 발표하면서, 기독교인들이 자유 민주주의 국가 건설의 초석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다.

독촉국민회는 이승만이 해방정국에서 자신의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만든 정치조직을 기반으로 형성됐다. 이 교수는 "독촉국민회는 이승만의 세력과 김구의 세력의 연합으로 형성된 조직이었는데, 이승만은 2차와 3차 전국대회를 통한 개편작업으로 독촉국민회에 대한 자신의 지배력을 높여 나갔다"고 했다.

이러한 독촉국민회 중앙조직에 상당수의 기독교인들이 참여했다. 다만 중앙조직에 참여한 기독교인들이 동일노선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초기에는 오하영이 이승만과 김구 사이의 중간역할을 하면서 부위원장을 했고, 김구의 노선을 따라 참여한 인물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중앙조직이 바뀔 때마다 다양한 인물들이 참여하여 이승만을 도왔다"고 말하고, 특별히 이승만을 끝까지 지지했던 이관운, 배은희, 남천우, 김창근 등의 경우를 보면 대부분 일제시대 3.1운동에 참여하였던 경력이 있었다고 전했다.

더불어 이 교수는 "이들이 해방 정국에서 인민위원회 활동에 반대하고 이승만의 노선에 지지하여 활동했고, 특히 독촉국민회의 국민운동을 통한 건국운동에 공감하여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고 이야기 했다.

또 이 교수는 "기독교의 이러한 독촉에의 가담은 반탁운동이 전개되면서 우익과 좌익의 대항전선이 명확해지면서, 원래부터 공산주의에 반대하여 반공사상으로 무장했던 기독교인들과 월남기독교인들이 적극적으로 우익진영에 가담하면서 가능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목사들과 고등교육을 받은 기독교인들은 당시 사회에서 지역사회의 유지의 위치에 있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독촉의 지도부에서 활동하면서 자유민주주의 국가 건설의 초석이 됐다"고 이야기 했다.

제21회 영익기념강좌가 29일 오전 서울신대에서 열린 가운데, 많은 학생들과 청중들이 강의실을 메웠다.
제21회 영익기념강좌가 29일 오전 서울신대에서 열린 가운데, 많은 학생들과 청중들이 강의실을 메웠다.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 제공

두 번째 발표자인 김동선 교수(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 연구교수)는 "미군정기 미국선교사 2세와 한국정치세력의 형성: 윌리엄스(George Zur Williams)와 윔스(Clarence N. Weems Jr.)를 중심으로"란 제목으로 강연을 전했다.

해방 이후 모든 정치세력들은 기본적으로 미군정과 관련을 맺어야만 했다고 한다. 그러나 미군정에는 한국의 언어와 문화 등을 이해하고, 조언을 할 수 있는 인적자원이 부족한 상황이었고, 이런 상황에서 유용한 사람들이 바로 선교사와 그의 자녀들이었다고 한다.

김동선 교수는 "한국의 문화와 언어에 이해도가 높았을 뿐만 아니라 한국 내의 지식인 및 명망가와 인맥도 가지고 있었다"면서 "비록 미국의 국익이 우선이지만, 그들에게는 한국에 대한 애정과 동정심이 자리하고 있었다"고 이야기 했다.

특히 선교사 2세 가운데 조지 윌리엄스와 클라렌스 윔스는 미군정에 소속되어 직접 조선에서 활동했던 인물들이다. 김 교수는 이들이 뛰어난 한국어 실력을 바탕으로 언더우드와 더불어 미군정기 한국정치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

먼저 조지 윌리엄스는 비록 한국에 3개월간 머물렀지만, 미군정의 관료구성과 이승만의 귀국에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했다고 한다. 김 교수는 "윌리엄스가 서북지역 흥사단계 인사들을 대거 미군정에 영입시켰고, 이들은 미군정 내의 다수를 차지하며 관료세력을 형성했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그가 추천했던 인물들은 미군정기 보수 세력과 한민당을 이루는 밑거름이 됐다"고 말하고, "또한 이승만 정권기에도 주류 정치세력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고 이야기 했다.

클라렌스 윔스에 대해 김 교수는 "그는 해방이전 광복군을 훈련시킨 경험이 있는데, 이 때 자연스럽게 임정과도 접촉했다"고 밝히고, "미국에 돌아가서도 한국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으로 상당히 오랫동안 한국에 대한 연구를 했다"고 전했다.

윔스는 임정에 보다 긍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고, 좌·우의 대립에 대해서도 비교적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때문에 좌우합작을 보다 원활하게 추진하기 위해, 이승만을 견제하고, 서재필을 귀국시키는데 일조했다.

그러나 윔스가 개입했던 미군정의 중간파 육성정책과 입법의원을 통한 통치기반의 확대·강화는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고, 그의 입지도 매우 불안하게 되어 결국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돌아가고 말았다고 한다. 김 교수는 "그가 지원했던 중간파 세력들은 이후 이승만 정권기 소장파 세력을 형성하고 여당의 견제세력이 됐다"고 했다.

김 교수는 "초기 미군정에는 한국을 잘 알고 이해하는 인원이 적었기에 소수의 지한파들은 그 근무기간이나 계급을 떠나 한국정치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하고, "그들 중 상당수는 해방이전 조선에서 활동했던 선교사 세력"이라 했다.

이어 그는 "좌익세력을 제외하고, 이들이 지원한 정치세력은 해방이전 이들과 인맥 상 연결되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하고, "이때 형성된 정치세력들은 정부수립이후에도 남아 각각 성격이 다른 정치세력으로 성장했다"고 이야기 했다.

한편 세미나에서는 이은선 교수와 김동선 교수의 발표에 대해 각각 오영섭 교수(연세대 이승만연구원 연구교수)와 김정회 교수(서울장신대 외래교수)가 논찬자로 수고했다. 행사 전 예배에서는 전병일 목사(정읍교회, 서울신대 이사장)가 "성경 인물에서 배운다"(시90:14)란 제목으로 설교했다.

서울신대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소장 박명수 교수)가
행사를 마치고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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