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 이나래 기자] 대한민국 국민들의 '낙태'에 대한 인식이 점점 관대해지고 있는 경향을 보여줘 우려를 낳고 있다. 낙태가 불법이란 사실은 더 많은 사람들이 잘 알게 됐지만, '필요한 경우 허용'해야 한다는 인식이 더 높아졌기 때문이다. 더불어 낙태가 '일종의 살인'이란 인식은 낮아진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갤럽이 최근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낙태금지법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는 국민들은 73%, 모르는 이들은 17%였다. 1994년 낙태금지법이 있음을 아는 국민(48%)보다 훨씬 많은 숫자로, 낙태금지법 인지율은 젊은층에서 상대적으로 높았고(20대 84%, 30대 88%; 60대 이상 55%) 성별로는 남성 72%, 여성 73%로 비슷했다.

우리나라 형법 제269조와 제270조는 낙태한 여성과 낙태하게 한 의사 등을 처벌하는 '낙태죄'를 규정하며, 모자보건법 제14조는 범죄로 인한 임신, 임산부나 태아의 건강에 심각한 위해가 있는 경우 등에만 국한하여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이러한 법은 1953년부터 존속했으나, 1994년 한국갤럽 조사에서 성인의 낙태금지법 인지율은 48%, 당시 여성 중 38%가 낙태 경험이 있는 것으로 파악돼 현실에서는 거의 사문화(死文化)된 조항으로 간주되어 왔다.

2010년 보건복지부 실태 조사에 따르면 가임기 여성(15~44세)의 낙태 수술 경험률 29.6%, 낙태율(가임기 여성 1,000명당 낙태 건수) 15.8건으로 OECD 주요국 중에서도 높은 편이다.

더 중요한 것은 '허용 여부'이다. 국민들은 '보다 엄격하게 금지'(21%)해야 한다는 입장보다, '필요한 경우 허용'(74%)해야 한다고 했다. 모든 응답자 특성별로 '필요 시 낙태 허용' 의견이 우세했고, 특히 20~40대에서는 그 비율이 85%를 넘었다.

낙태 금지를 강화해야 한다고 보는 사람들에게 그 이유를 물은 결과(214명, 자유응답) '생명 존중/경시하면 안 됨'(41%), '인구 감소 우려/저출산'(35%), '낙태 남발/무분별/무책임'(9%) 등으로 나타났다. 반면 필요한 경우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고 보는 사람들은 그 이유로(753명, 자유응답) '원하지 않은 임신일 때'(31%), '강간, 성폭행 등 범죄로 임신한 경우'(18%), '미성년, 미혼 등 감당할 수 없는 경우'(17%), '개인이 결정할 문제/본인 선택'(9%), '아이 건강, 기형아 출산 문제'(8%), '낳아서 책임 못 지거나 버리는 것보다 낫다'(5%) 등을 언급했다. 낙태 금지론자들이 태아 생명권을 최우선시하는 반면, 허용론자들은 출산 후 여성과 아이 삶의 질을 더 중시한 것이다.

이어 성인의 53%는 낙태를 '일종의 살인'으로 봤으나 35%는 '그렇지 않다'는 입장이며 12%는 의견을 유보했다. 1994년에는 78%가 '일종의 살인'이라고 답했다. '낙태가 일종의 살인'이라는 인식은 남성(49%)보다 여성(57%), 60대 이상(65%)에서 상대적으로 강하게 나타났다. 낙태 금지론자 중에서는 83%가 낙태를 살인으로 간주했고, 낙태 허용론자 중에서는 '일종의 살인' 45%-'그렇지 않다' 44%로 입장이 팽팽하게 갈렸다.

한편 지난 9월 22일 보건복지부가 '임신중절수술'을 포함한 비도덕적 진료 행위 처벌 기준을 강화한 '의료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 한다고 밝혔다. 이에 산부인과의사 대다수가 크게 반발했고, 10월 15일 서울에서는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이후 보건복지부는 해당 개정안 전면 재검토 방침을 내놓은 상황이다.

이번 설문조사는 지난 10월 18일부터 20일까지 휴대전화 RDD 표본 프레임에서 무작위 추출해 전화조사원 인터뷰 방식으로 이뤄졌으며,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018명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응답률은 19%(총 통화 5,429명 중 1,018명 응답 완료)로 표본오차 ±3.1%포인트(95% 신뢰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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