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 목사

[기독일보 조은식 기자] SNS 상에서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에게 거친 언변으로 비판해 화제가 됐던 김동호 목사(높은뜻교회연합 대표)가 이번엔 진정한 '힘'이 무엇이냐며 자신의 생각을 담은 글 하나를 내놓았다.

김동호 목사의 SNS에 누군가 댓글을 달았다고 한다. "목사님은 이미 많은 부분에서 힘 있는 사람입니다"라고. 김 목사는 "많은 부분에서 이미 힘 있는 나의 생각없이 하는 이런 저런 말들이 아직도 많은 부분에서 힘이 없는 사람들에게 상처가 된다는 뜻에서 쓴 글"이라 밝히고, "매우 중요한 지적과 비판이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 조심해야 겠다 생각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김 목사는 "자꾸 한 마디 하고 싶어졌다. 꼭 한 마디 묻고 싶은 말이 있었다"면서 "뭐가 '힘'인가"를 묻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돈이 힘인 사람도 있고 랭킹(국내 3위)이 힘인 사람도 있고 권력(최순0)이 힘인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이 다 그렇지만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의 힘은 예수에게서, 믿음으로부터 오는 게 아닌가"라고 했다.

김 목사는 자신의 인생 전반부는 경제 생활이 어려워 힘들었지만, 그렇다고 달라진 현재가 '인생역전'도 아니요 그러했던 과거가 싫지만은 않다고 했다. 그 때도 예수를 믿었고, 행복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대형교회라고 으싯댈것도 없고, 개척교회라고 기죽을 것도 없고, 상처 받을 것도 없고, 정말 예수가 힘이라면, 항상 기쁘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다"고 했다. 다음은 김 목사의 해당 글 전문이다.

뭐가 힘인데?

1.
나는 51년 2월 전쟁 중에 태어났다. 피난지였던 부산에서.
우리는 이북에서 피난 내려 온 난민이었다.
정말로 요즘 텔레비젼에서 보는 난민들과 다름 없는 삶을 살았다.

2.
나는 부산 괴정동에서 태어났는데 당시 그곳은 분뇨처리장이 있는 곳이었다. 말이 좋아 분뇨처리장이지 무슨 시설이 있었던 것이 아니고 그냥 부산 시민들의 분뇨를 내다 버리는 곳이었다. 당시 그곳은 사람 살 곳이 아니었다. 그래서 난민들이 살았다. 피난민. 당시에는.

3.
판잣집에서 가마니 깔고 이불 하나로 세 식구가 살던 기억이 있다. 우리 나이로 네 살 때 서울로 올라왔다. 기차타고 서울 오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는 서울에 와서 무직자로 한 일 년 정도 지내다가 내가 다섯 살 때 쯤 연탄공장 노동자가 되셨고 내가 여섯 살 때 쯤 광신중고등학교 수위가 되셨다.

4.
당시 학교 수위 월급으로는 쌀 한 가마 반을 살 수 있었다. 어떻게 알았느냐고? 내가 밤낮 계산해 봤었기 때문이다. 정확하다. 쌀 한 가마 반. 그게 당시 우리 수입의 전부였다. 그 수준의 삶을 68년까지 살았다. 아버지가 은퇴하신 후에는 어머니가 하숙을 해서 또 겨우 먹고 살았다. 내가 결혼하던 77년도 까지 당시 우리 한 달 수입은 5만 원 미만이었다. 그 당시 학교 교사였던 우리 아내의 봉급은 13만 5천 원이었다.

5.
나는 당시 보통 3류라고 불리우던 상고 출신이다.
대학에 일 차 이 차 다 떨어지고 세운상가 점원이 되었었다.
첫 달 7천 원 월급을 받았고, 몇 달 후터 한 달에 만 원 정도 월급을 받았었다.
그러다가 71년도 장로회 신학대학 기독교교육학과에 시험을 보고 입학을 하여 결국 목사가 되었다.
20명 정원이었는데 12명이 지원하였었다.

6.
지독히 내성적이고 열등의식이 심해 사람 앞에 서는 것이 극도로 힘들었었다. 그런데 어려서 좋은 교회를 만나 다행히 교회생활을 열심히 할 수 있었다. 거기서 좋은 목사님, 좋은 선생님, 좋은 친구들을 만나면서부터 내 삶이 풀리기 시작하였다. 교회가 너무 좋았다. 교회생활이 너무 행복했다.
그러다가,
믿음이 생겼다.
믿음.
그 믿음이 주는 행복과 기쁨은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기쁨과 행복이 아니었다.

7.
큰 교회 목사가 되었다.
제법 알려진 유명한 목사가 되었다.
은퇴했지만
은퇴 후 교회 신세지지 않고도
태국 휴양지에서 겨울에 골프치며 보낼 수 있는 팔자 좋은 영감이 되었다.

8.
인생역전?
천지개벽?

9.
그런데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솔직히 나도 내 인생의 전반전보다 후반전인 지금이 좋다.
그리고 나름의 원칙을 정하고 열심히 잘 누리고 있다.
감사하면서.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인생이 역전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10.
이유는
솔직히 다시 그 가난했던 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진 않지만
만일 다시 돌아가야 한다면
숨 한 번만 크게 쉬면 다시 돌아갈 수 있다.
싫지만 무섭진 않다.
난 그 때도 행복했었다.
정말 행복했었다.
가난했던 내 어렸을 적의 기억이 난 우울하지 않다.
어둡지 않다.
경제생활 하나 어려웠을 뿐
교회생활과
특히 믿음생활 좋았다.
그래서 숨 한 번만 크게 쉬면 돌아갈 수 있다.
지금도.

11.
어떤 페북 친구가 내 글에 댓글을 달면서 '목사님은 이미 많은 부분에서 힘 있는 사람입니다'라는 표현을 하였다. 많은 부분에서 이미 힘 있는 나의 생각없이 하는 이런 저런 말들이 아직도 많은 부분에서 힘이 없는 사람들에게 상처가 된다는 뜻에서 쓴 글이었다.
매우 중요한 지적과 비판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12.
그런데도
자꾸 한 마디 하고 싶어졌다.
꼭 한 마디 묻고 싶은 말이 있었다.
그건
'힘? 뭐가 힘인데?...!!!'

13.
돈이 힘인 사람도 있고
랭킹(국내 3위)이 힘인 사람도 있고
권력(최순0)이 힘인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이 다 그렇지만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의 힘은
예수에게서,
믿음으로부터 오는 게 아닌가?
예수가 힘이라면
믿음이 힘이라면
돈은
랭킹은
권력은
있어도 좋고 없어도 별 큰 상관없는 거 아닌가?
그래서 사도바울도
부한데도 처할 줄 알고 비천한데도 처할 줄 안다고 한거 아닌가?
바울의 능력은
힘은
돈도 아니고
랭킹도 아니고
권력도 아닌
예수 그리스도였기 때문이 아닌가?

14.
대형교회라고 으싯댈것도 없고.
개척교회라고 기죽을 것도 없고.
상처 받을 것도 없고.
정말 예수가 힘이라면.
항상 기쁘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지.

15.
힘?
뭐가 힘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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