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승 팀장(대한적십자사 네팔지진 긴급구호팀)

[기독일보] 본격적인 현장조사가 있는 4월 30일 아침. 일어나니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통상 이곳의 우기는 5월말인데 요즈음은 비가 많이 온다고 한다.

국가적인 위기가 오면 하늘도 슬퍼서 비가 많이 온다고 하는데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집을 잃은 이재민들이 비가 오면 더 생활이 어려워 질 수 있고 복구도 더 힘들어 질 것이다.

오늘은 가장 큰 피해지역 중에 하나인 신두팔촉으로 향했다. 카트만두에서 서쪽 진앙지인 고르카 주변에 대한 피해도 크지만 동쪽으로 이어지는 산간지역의 피해가 극심하다고 한다. 태풍도 발생지의 오른쪽이 피해가 큰 것과 유사하다.

차가 카트만두를 벗어나 외곽지역으로 속도를 냈다. 카트만두 외곽지역에도 가옥들이 많이 무너져 있었다. 외곽지역에는 빈민가들이 모여 있어 집도 오래되고 낡아 더 피해가 심하다고 한다. 왜 비참한 삶을 살고 있는 이들에게 더 아픔이 계속돼야 하는지 안타깝다.

해발 1000m에서 1500m 이상되는 고산지에 사는 주민들은 우리나라에서 보는 다랭이 논처럼 산비탈에 밭농사를 지으면서 산다. 이들은 과거에 선조들이 했던 방식 그대로 그 지역에 살면서 농사를 짓는다. 그렇게 물려받은 집과 밭이 순식간에 폐허가 됐다면 그들이 느끼는 슬픔은 어느 정도일까?

카트만두에서 3시간이 넘게 산비탈을 거슬러 차량으로 들어가자, 본격적인 피해상황이 눈에 보였다.

신두팔촉의 중심으로 들어가자 산비탈에 위치한 가옥은 물론 도로주변과 마을, 상가들이 대부분 무너져 있었다.

이곳에서는 우선적으로 임시 거처를 마련해야 하기 때문에 텐트나 천막이 가장 필요할 것으로 보였다. 그 다음은 식수가 필요한데, 이곳은 모두 석회질의 물이라서 마실 수가 없었고, 지진피해로 공동으로 사용하던 물길마저 끊어져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지진 피해가 있기 전 대한적십자사는 네팔 북동쪽 돌락하 지방을 중심으로 상하수도와 화장실 건설을 통해 안전한 식수를 제공해 왔다. 지진 복구를 하며 이곳에도 깨끗한 물과 위생시설 지원이 필요해보였다.

이재민들은 집을 떠날 수 없어 간이 천막으로 집이 무너진 옆에 거처를 옮겨 살고 있었고, 무너진 가옥 사이로 건질 수 있는 가재도구들을 건지고 있었다. 대부분 가정은 남편들이 도시로 혹은 다른 국가로 돈을 벌러 간 사람들이 많아 노인이나 여자들이 일을 하고 있었다.

제대로 된 건설장비가 없어 복구를 하는 데에는 기약이 없어 보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군을 중심으로 구호물자가 조금씩 들어오고 있었는데, 이것마저도 산골 깊숙한 곳까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차량약탈이나 폭동의 조짐이 있어 조심스러웠다.

군과 경찰이 치안을 담당하고 있었고 UN도 들어와 있는 것이 보였다. 신두팔촉 쪽에 가장 큰 피해지역 중 하나인 초우따루 마을로 들어서니 광장에 이재민 천막이 많이 보였다. 이 지역 적십자사와 보건소에서 마련한 작은 진료소들이었다.

초우따루 지역은 병원과 보건소의 90%이상이 지진으로 파괴돼 진료활동을 할 수 없다고 한다. 지역 적십자사 관계자를 만나 진료활동 지역과 진료진들이 지낼 숙영지를 추천받았다. 무엇보다도 안전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특히 진료소보다는 숙영지를 독립적이고 약탈이나 도난 등이 없는 곳을 물색해야 했다.

1차 후보지로 선정된 몇 곳을 살펴보고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카트만두로 돌아가야 했다. 가는 도중 피해가 심각한 몇 가구에 우리가 샘플로 준비한 구호키트를 몇 개 전달하고 그들을 위로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들의 아픔이 가슴에 진하게 전해져 왔다. 구호품을 받고 눈물을 글썽이며 연일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는 그들이 안타까웠다. 생경한 외국인의 모습에 미소 짓는 네팔 어린이들의 선한 눈망울이 가슴에 와 닿았다.

이들은 자신의 조상들이 그랬던 것처럼 자연에 순응하며 자연이 자신들에게 주는 풍요로움은 물론 그들에게 주는 큰 아픔까지도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산다. 숙명이기 때문에 특별한 슬픔이 없다. 단지, 전 국민의 대부분이 힌두교인 이 나라에서 내세에서의 불행보다는 영원한 행복을 꿈꾸며 살고 있는 것이다.

글ㅣ이재승 팀장(대한적십자사 네팔지진 긴급구호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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