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통일에서 배운다' 세미나가 지난 12일 백범기념관 컨퍼런스홀에서 열렸다.   ©이지희 기자

[이지희 기독일보·선교신문 기자] 남북한이 통일된 이후 다음세대를 교육하는 교육과정의 통합은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 독일 통일과정에서의 성공과 실패, 특히 동독에서의 교육환경과 제도의 변화를 이해하고, 남북한 실정에 맞는 교육 통합과 통일 준비 방안을 모색하는 행사가 열렸다.

지난 12일 오후 1시 백범기념관 컨퍼런스홀에서는 독일 콘라드아데나워재단 한국지부가 주최하고 여명학교가 주관하는 '독일 통일에서 배운다' 세미나가 '통일학교 만들기'를 주제로 열렸다. 올해 세미나는 동독 출신의 교육 전문가의 강연 외에도 탈북 청소년을 가르치는 여명학교 교사들과 교육행정을 담당하는 교감이 지난 7월 구 동독 지역의 교육현장을 방문해 경험한 것을 소개하고, 독일 통일의 경험을 바탕으로 남북한 상황을 추론해 교육 통합 방안을 제시하는 순서도 마련됐다.

▲여명학교 이흥훈 교장(좌), 콘라드 아데나워 재단 한국사무소 노르베르트 에쉬보른 소장(우)   ©이지희 기자

개회사를 전한 여명학교 이흥훈 교장은 "대한민국에서 통일은 중요한 화두"라며 "여러 분과 중에서도 오늘은 교육 분야에서 현실적으로 중요한 분들이 모여 미래 통일을 준비하는 뜻깊은 세미나가 될 것"이라고 기대를 전했다.

축사를 전한 콘라드 아데나워 재단 한국사무소 소장 노르베르트 에쉬보른 박사는 "2012년부터 올해 세 번째 '독일 통일에서 배운다' 세미나를 진행하며 여명학교와 3년째 효율적이고 심도 깊게 협력하고 있다"며 "이런 뜻깊은 일을 하게 된 계기는 한국의 특별한 분단 상황과 통일을 향한 의지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현재 한국 젊은이들은 통일에 대해 무관심을 보이는 것이 사실"이라며 "통일된 독일을 보면서 수천 년 역사를 함께 한 남북한도 통일로 나아가는 의지와 신념을 가지고, 한반도 통일과 통일 후 사회통합 방안을 함께 찾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독일 작센안할트 주 막데부르크 공립기독교고등학교 공동설립자이자 독일 기민당 의원인 위르겐 샤프 의원이 '독일의 동서독 교육시스템 통합 경험'을 주제로 강연하고, 여명학교 김신동 사회과목 교사와 조명숙 교감이 '독일 교육 통합 과정의 이해와 남북한 통일에 대한 추론과 제언'에 대해 발표했다.

구 동독의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성장한 위르겐 샤프 의원은 40년의 공산주의 독재 기간, 시대에 따라 변화된 사회적 분위기와 동독의 학교교육 등을 소개한 후 "동독 평화혁명 당시 사람들이 가장 우선적으로 요구했던 것 중 하나가 학교의 민주화였다"며 동독지역 학교 교육과 행정 변화는 통일 과정에서 중요한 과제였다고 말했다.

샤프 의원은 "1989년에서 1990년대 초 사이 급격한 변화로 불안을 느낀 교사들은 좋은 학교를 만들기 위한 활발한 공적 논의를 했고, 통일 이후 동독의 공립학교들은 수년간에 걸쳐 현대적이고 민주적인 학교로 전환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동독 시절 학교와 정권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동독 출신 교사를 독일연방공화국의 새로운 학교제도 안에 재편입시키는 일은 가장 어려운 과제 중 하나였다고 설명했다.

▲위르겐 샤프 작센안할트주 의원이 독일의 동서독 교육시스템 통합 경험에 대해 강연하고 있다.   ©이지희 기자

그는 "공립학교 개혁의 또 다른 과제는 동독 출신 교사들의 전문지식 결핍을 재교육을 통해 가능한 빨리 극복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외국과 교류가 적어 어려움을 겪던 동독 출신 외국어 교사들은 해당 국가의 문화적 지식과 현대어 지식을 쌓았고, 새로 생긴 사회, 윤리, 종교 과목에 대해 완전히 새롭게 교과내용을 습득하거나 서독 출신 교사가 투입되기도 했다. 샤프 의원은 "독일 통일과 함께 서독 지역으로부터 수많은 재건 지원자들이 동독 지역으로 왔다"며 "문제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되었고,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친분관계도 생겼다"고 말했다.

그는 독일 통일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로, 동독 대부분 지역에서 서독의 라디오 청취 및 텔레비전 시청이 가능했던 것과 동독 주민들의 서독 친지 방문 등 지속적인 인적 교류와 정보 및 의견 교환 등을 들었다. 샤프 의원은 "서독은 동독 주민들에게 낯선 세계가 아니었다"며 "하지만 실제로 서독에 편입되면서 전혀 다른 법체계에 적응하거나 모든 기업과 기관에서 엘리트 교체가 일어나지 않은 점, 1990년대 초 동일 업무에 대한 동서독 임금 격차, 서독 출신의 재건 지원자들의 우선 승진 등은 문제를 낳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샤프 의원은 "이 시절을 통해 배운 것은 현지 사람들에게 재건 지원자들이 진심에서 도움을 주려는 사람으로 받아들여질 때 지속적이고 성공적인 지원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며 "그러기 위해 재건 지원자들은 그곳 사람들의 삶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건 지원자들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새로운 지역으로 이사 갈 용의가 있어야 하고, 현지 사람들과 같은 단체와 협회서 활동하며 같은 교회의 회원이 되는 등 적응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현재 동서독 임금격차의 평준화는 2020년에 완전히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며 "작센안할트 주는 서독 지역 연방주의 평균 GDP의 약 65%를 달성했으며, 주 예산 중 자체 세수로 충당되는 비율은 약 55%를 이루는 등 경제적 평준화는 여전히 어려운 과제로 남아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공립학교제도를 보완하는 대체학교제도, 곧 사립학교를 성공적으로 설립, 운영한 경험을 소개한 그는 "전환기, 또는 혁명기에 고무적인 분위기를 잘 이용해야 한다"며 "오로지 좋은 학교를 만들고 싶어 관심을 보인 부모, 교사, 공공부문 종사자, 학교 설립과 운영 경험이 있는 분들의 열정이 학교 설립의 성공 비결이었다"고 말했다. 곧 현지에서 자라고, 그곳에서 살고 있으면서 직접적인 당사자인 시민들의 참여와 자문을 제공하되 감독관 행세를 하지 않는 실력 있는 조력자들의 지원이 사립학교의 성공 비결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물론 당시 정부가 민간 학교 설립을 장려하는 등 제 기능을 다하는 대체학교를 통해 교육주체의 다원화를 추구하고 있었다"며 "어떻게 보면 경쟁관계에 있는 사립학교와 공립학교의 경쟁이 질서 있게 유지되면, 경쟁을 통해 학교의 혁신력도 장려될 것"이라고 말했다.

샤프 의원은 마지막으로 "오늘날 독일은 자유가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에, 자유의 가치를 계속 일깨워주지 않으면 그 가치를 잊어버리게 될 정도"라며 "25년 전보다 물질적으로 거의 모든 독일인의 삶이 나아졌고, 예전 사회주의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사람도 거의 없으며, 이는 동독 간부 출신 사람들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는 "물론 동독 지역의 경제회복은 비관적인 시각을 가졌던 사람들이 예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오래 걸리고 있다"며 "그러나 종합적으로 통일은 독일 현대사에서 가장 행복한 사건 중 하나였다"고 평가했다.

▲콘라드 아데나워 재단이 주최하고 여명학교가 주관하는 세 번째 '독일 통일에서 배운다' 세미나 참석자들이 강연을 듣고 있다.   ©이지희 기자

이날 김신동 교사와 조명숙 교감은 동서독 통일 과정에서 정치 지도자들의 적극적인 외교정책과 정부 차원의 동서독 간 교류 확대, 문화와 사회 관련 분야의 협력 증진 노력 등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또 서독의 잘 갖춰진 복지제도로 인해 동독을 탈출한 탈동자(1949년~1961년 까지 약 273만 명, 1961년~1988년 까지 약 60만 명)가 일반 국민과 동등하게 대우받으며 정착할 수 있었지만, 여전히 타문화권자인 탈동자들의 어려움을 세심하게 살피진 않으면서 통일 이후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남한이 북한이탈주민에 대해 특별법을 만들고 특별대우를 해주며 계속 주시하는 것은 북한이탈주민들의 어려움을 더 도드라져 보이게 하는 부작용이 있다"며 "하지만 이를 통해 북한이탈주민들이 겪는 어려움을 '사회적 노동'으로 파악해, 통일 이후 있을 혼란과 어려움을 미연에 방지하고 극복하도록 미리 준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또 "구 동독지역에서는 통일 직후 5년이 가장 혼란한 시기였다"며 "동서독 보다 더 큰 경제규모의 차이와 훨씬 긴 분단 기간을 감안할 때, 한국은 5년보다 더 긴 시간 혼란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며 "그나마 북한이탈주민을 통해 미리 준비할 수 있다는 사실이 희망적"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한편, 김신동 교사와 조명숙 교감은 10년 이상 탈북자 지원과 북한이탈청소년 교육, 이번 독일 연수 과정을 통해 배운 것은 "가장 혼란스러울 체제 전환기에 바로 적용될 수 있는 시스템을 통일 전에 미리 구축하고, 통일을 성장과 발전의 계기로 삼아 교육시스템을 정비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준비 없는 통일은 트라우마가 될 수 있으며 ▲통일 전 북한과의 접촉점을 넓히고 ▲북한이탈주민을 통해 통일준비를 하고 ▲통일을 교육제도를 개선할 절호의 기회로 삼고 ▲통일학교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들은 "동독 사람들 중에는 갑자기 닥친 통일이 트라우마가 되기도 했다"며 "북한이 준비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남한 사람들이 북한 사람들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통일은 남한 사람들에게 경제적 대박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자칫 북한 사람들을 소외시켜 불만을 갖게 할 수 있다"며 준비되지 않은 통일은 통합을 저해하고, 북한 사람들에게 트라우마가 되어 통일사회를 긴장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발표자들은 "통일이 트라우마가 아닌 남북 모두 상생하는 대박이 되려면 '사전준비'가 필요하다"며 심리적 지원 시스템 등 여러 차원에서의 통일 준비를 요청했다. 이들은 "특히 교육 차원에서 통일 준비는 북한 가정에 안정과 희망을 가져다 주는 동시에, 다음세대 통합을 촉진하는 가장 안정적이며 대안적인 통일 준비"라고 주장했다.

또 통일 이전부터 북한 당국이 수용하고, 북한 주민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창의적이고 다양한 교류를 모색하고 추진할 것을 제안했다. 특히 통일의 실질적인 세대가 될 남북의 청소년들이 서로 만나고 협력하여 거부감을 줄이고, 이해를 증진시키는 등 교육분야에서 다양한 교류프로그램을 만들 것을 강조했다.

국경을 넘어 남한에 먼저 온 북한이탈주민들에게 체계적인 교육을 시행해 통일을 준비시키는 방안도 제안했다. 발표자들은 통일 전 북한이탈주민의 남한에서의 성공과 실패 경험은 모두 통일 시대 자본이 될 사회적 노동으로, 이를 통해 통일 이후를 예측하고 대안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북한이탈주민들을 교육하고, 현장 경험의 기회를 주어, 사회 각 영역에서 실무 경험과 전문성, 성공 경험을 갖추고 겸손한 인성을 겸비하게 하여 통일시대 북한에서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성장시킬 것을 강조했다. 특히 학교 조직에서 북한이탈주민을 고용하는 것은 남한교사들의 전문성 신장과 북한교사의 직무역량 강화, 북한과 북한 사람에 대한 이해 증진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이 통일을 계기로 서독의 교육체제를 개선할 절호의 기회를 놓쳐버린 것을 교훈 삼아 통일 전 남한의 교육시스템을 점검하고 통일을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도 펼쳤다. 발표자들은 "교육이 공공재가 아닌 사적 자본이 되어 부모의 경제 능력에 따라 사교육과 학교교육에까지 영향을 주는 것은 지양돼야 한다" 며 "이런 상태에서 통일이 되면 교육으로 통합에 원동력을 얻은 독일과 달리 교육으로 인해 남북 간 차별이 심화되고, 북한 내부의 심각한 차별을 조장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발표자들은 이어 체제전환기를 대비해 새로운 교과목과 교과서 개발, 교육방법을 개발하는 등 전환기 교육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통일학교의 기획 단계에서부터 북한 사람들이 필요로 하고 북한이탈주민이 함께 참여하는 교육 모델, 학교 모델을 만들고, 북한 출신 교사, 북한이탈청소년 출신 청년, 일반 공교육 교사, 북한이탈청소년 대안학교 교사 등 교육 주체들이 교육통합과 발전을 모색하는 통일교육 연구모임을 만들 것을 제안했다.

발표자들은 마지막으로 통일학교를 만드는 데 장소, 건물, 형태, 제도 이전에 철학과 마인드가 중요하다며 "인내력과 인성을 갖춘 실력 있는 교사들이 현장의 사람을 섬기면 그곳은 이미 통일학교가 된다"고 강조했다. 준비된 철학과 마인드를 지닌 사람들이 북한 주민으로 살면서, 그 곳에서 결국 통일을 이뤄낼 수 있다는 것이다. 발표자들은 "지금도 많은 사람이 통일을 준비하기 위해 독일의 통일 제도, 기술, 방법을 익히러 독일에 간다"며 "그러나 진정한 통일연수는 통일 기술이 아니라 동독지역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마인드와 철학을 집중적으로 보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콘라드 아데나워재단(KAS)은 독일에 본부를 둔 정당재단으로 국제 협력과 이해증진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독일 초대수상이자 기독교민주당(CDU)의 공동설립자인 콘라드 아데나워(1876~1967)의 이름을 따서 1962년 설립됐으며, 민주주의, 법치주의, 사회적 시장경제 발전 지원을 위해 120개국 70여 개 이상의 해외 사무소에서 프로젝트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또 평화와 자유 보장을 위한 국외 안보정치 간담회와 문화, 종교 교류를 후원하고 있다. 특히 남북한 화해, 협력을 위해 다른 NGO, 연구기관들과 함께 정보교류와 통일정책 등을 논의하는 심포지엄을 열고, 새터민의 한국 사회 적응을 돕기 위한 교육사업 등을 진행해 왔다.

여명학교는 통일을 준비하며 북한 이탈 청소년들을 교육하고, 통일 인재를 양성하는 최초의 교육부 인가 북한이탈 청소년 대안학교다. 특히 통일 전 북한 이탈 청소년들의 교육, 치유, 보호를 지원하여 남한 적응을 돕고 이러한 경험을 축적해 통일 후 북한지역에 적용할 수 있는 교육모델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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