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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현대미술사를 대표하는 거장 김환기(1913~1974)의 대표작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김 화백이 미국 뉴욕 생활 당시 그리운 사람들이 생각날 때마다 한 점 한 점을 찍어 완성한 그림 제목이다. 별들이 가득한 밤하늘을 연상케 하는 이 그림은 소통에 대한 간절함이 느껴진다. 제목은 자신과 절친했던 시인 김광섭(1905~1977) 시 '저녁에'의 마지막 구절에서 따왔다.

연출가 이상우(53)는 연극 '한 때 사랑했던 여자에게 보내는 구소련 우주비행사의 마지막 메시지'(The Cosmonaut's last message to the woman he once loved in the former Soviet Union) 희곡을 보면서 이 그림을 떠올렸다. 힌두교의 '인드라망', 불교의 연기(緣起), 양자론의 다중우주도 함께 생각했다.

거대한 이야기가 아님에도 '한 때 사랑했던 여자에게 보내는 구소련 우주비행사의 마지막 메시지'는 이 모든 것을 품는다. 질긴 인연을 담담하면서도 산뜻한 통찰력으로 다룬다.

이번이 국내 초연으로 스코틀랜드 대표작가로 부상 중인 데이비드 그레이그(45)의 대표작이다. "저 밑에 사람들, 아무래도 우릴 잊어버린 것 같아"로 시작하는 연극은 소련 우주비행사 2명이 우주미아가 돼 떠돌고 있다는 설정으로 출발한다.

지구촌 인간들이 우연 또는 필연적으로 순간 접속을 경험한다는 내용이다. 사람들이 서로에게 가까워지기를 끊임없이 열망하면서도 접속하고 대화하는 데 계속 실패하는 모습을 우화적으로 그린다.

어디서 본 듯한 인물들을 표현하려는 데이비드의 의도다. 대본에서는 배우 6명이 13명의 인물을 연기하는데, 이번 명동예술극장 공연은 배우 7명이 13명의 인물을 맡는다.

무대 위에서 '나스타샤' 역의 김지현을 제외하고 1인2역을 연기하는 배우들을 보고 있노라면 얽히고설키는 인연에 대해 새삼 깨달음을 얻게 된다.

중년의 위기를 맞은 부부 '이언'과 '비비안'은 대화를 시도하지만, 그들 거실의 고장 난 TV 앞에서 둘의 관계 또한 고장 나 버린다. 이후 수수께끼를 남기고 떠난 남편의 흔적을 찾는 비비안은 엉뚱하게도 프랑스에서 외계 비행물체와 통신을 시도하는 '베르나르'를 만나게 된다.

비비안은 가장 가까운 관계였던 남편 이언 보다 오히려 낯선 곳에서 만나 언어도 통하지 않는 베르나르와 인간적인 소통을 경험한다.

이언과 베르나르를 연기하는 배우 최덕문(44)의 말과 같이 연극 자체가 퍼즐 같게 느껴진다. 이언과 베르나르는 다르지만, 결국은 같은 사람이고 사람의 인연은 질기다는 걸 그렇게 체감하게 된다.

통신이 끊긴 구소련의 두 우주인과 지상의 사람들은 서로 직접 연결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주비행사 '카시미르'가 지구에 남겨둔 딸, '나스타샤'가 '에릭'을 만나면서 인연이 이어진다. 개개인은 독립적이고 개별적이지만, 그 거리감은 의미가 없어진다는 걸 방증한다. 어디서 무엇이 돼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이다.

도시인들이 실컷 별을 구경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만들어낸 별이 가득한 영상은 환상적이고 몽환적이다. 국내 대표 컴퓨터그래픽(CG) 회사인 모팩 스튜디오의 장성호(44) 대표가 힘을 보탰다.

세계은행을 다니는 에릭과 술집 주인은 이희준, 비비안과 실비아는 김소진이 연기한다. 이창수, 공상아, 홍진일 등이 출연한다. 음악감독 장영규, 무대디자인 김용현, 조명디자인 구근회가 힘을 보탠다. 중력이 없는 우주에서의 움직임을 위해 마임 배우 남긍호 씨가 돕는다.

5월 11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볼 수 있다. 러닝타임 150분(중간휴식 15분 포함), 2~5만원. 명동예술극장 1644-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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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사랑했던여자에게보내는구소련우주비행사의마지막메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