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한 박사
▲김영한 박사(기독교학술원장·샬롬나비 회장·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개혁신학에 근거한 성경적 영성신학적 입장에서 필자는 동성애를 반대하는 다음 10가지 근거를 제시하고자 한다.

1. 동성애는 남자와 여자 사이 이성애(異性愛)로 이루어지는 가정이라는 창조질서에 어긋난다.

결혼제도는 인간이 만든 문화가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이 제정하신 창조의 질서이다. 문화는 시대에 따라 변하나 창조질서는 보편적이며 영구적이다. 하나님은 창조질서로서 남자와 여자 둘이 한 몸이 되어 한 가정을 이루고 행복하게 살도록 하셨다(창 1:27-28; 2:18-24; 롬 1:26).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 1:27-28). 하나님은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고 가정을 통해서 인간이 번성하는 복을 주셨다. 그래서 가정이란 남자와 여자의 결혼으로 성립된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 2:24). 동성애 지지자들은 동성애 논의에서 창세기 1장과 2장을 생략하고 있다. 동성애는 창조의 원리에 역행한다. 동성애는 창조질서에 대한 위반이므로 허용될 수 없다. 가정이란 인간이 세운 문화질서가 아니라 창조질서라는 것이다. 가정과 결혼이라는 기본 질서가 각 종족에 따라 실행되는 것은 문화다. 결혼과 가정의 풍습은 각 나라와 민족에 따라서 다르다. 그러나 그 기본 질서에는 남자와 여자가 결혼하나다는 것은 문화가 아니라 창조질서다.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이 인간을 위하여 제정하신 것이다. 이것을 위반하게 되면 인간 사회는 더 이상 번식할 수 없고 지탱될 수 없다.

2. 성경 창세기의 소돔과 고모라 멸망 이야기는 동성애에 대한 하나님 심판의 본보기다.

성경 창세기는 소돔과 고모라(Sodom and Gomorrah) 및 그들과 함께 멸망당한 도시들인 아드마와 스보임(신 29:23)은 간음과 남색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분한의 징벌 심판(창 19:1-26)의 본보기라고 이야기 해준다. 창세기 19장 1-8절은 동성애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최초의 기록으로서 소돔과 고모라의 성적 타락의 전형인 동성애 행위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금기하시는 행위임을 드러내고 있다. 소돔의 죄란 극도의 이기주의와 동성애를 포함한 도덕적인 방종으로 대표되는 총체적인 타락이었다. 동성애가 유황과 불을 소나기처럼 부으심으로 인한 소돔 멸망의 원인이었다. 소돔과 고모라는 동성애로 멸망당하였다. 소돔과 고모라는 이스라엘의 사해(Dead Sea) 남서쪽에 위치한 인근 도시들이었다.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은 패역하고 음란하여 하나님께서 불과 유황으로 심판하셨다. 고대 도시 소돔과 고모라는 멸망하여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후세에 경건치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보여 주셨다.

사도 베드로는 소돔과 고모라 심판을 언급하고 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하지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베드로후서 2:6). 사도 유다도 소돔과 고모라 주민의 가증한 행위에 대하여 다음같이 해석한다: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그들과 같은 행동으로 음란하며 다른 육체를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유 1:7). 소도마이트(Sodomites)는 동성애자들을 가리킨다. 지금까지도 영어권 세계에서는 동성애자들을 이렇게 부른다. 로마 제국의 멸망 원인들 중 하나도 동성애자들(homo sexuals) 때문이었다. 한 개인과 가정과 사회와 국가에 동성애가 들어와서 장악하게 되면 그 개인, 가정, 사회, 국가는 망하게 된다는 것이 성경과 역사의 교훈이다.

3. 동성애 행위란 신성한 가정과 인간 영성의 파괴다

모세의 율법은 동성끼리의 성행위를 가증하다고 금하고 있다. 레위기의 두 구절은 동성애에 대한 분명한 금령이다: “너는 여자와 교합함같이 남자와 교합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일이니라”(레 18:22). “누구든지 여자와 교합하듯 남자와 교합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을지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레 20:13). 레위기의 기록은 도덕적 거룩함과 관련된 것으로 오늘날 우리에게도 그 원리가 그대로 적용된다.

신약성경 로마서 1장 26-27절에서 말씀하기를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버려 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을 불일 듯 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롬 1:26-27). 이 구절은 ‘창조 질서의 왜곡’이라는 관점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바울은 동성애를 창조질서의 타락이며 왜곡이라고 규정하였다. 동성애 행위란 하나님 금지명령에 대한 인간의 반역이라고 보고 정죄한 말씀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창조질서의 타락이며 왜곡인 동성애를 방조해서는 결코 안 된다. 그것은 하나님의 금지에 대한 인간의 반역행위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엄성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인간에게만 부여하신 영성(靈性, spirituality)에 있다. 인간에 있어서 영과 몸은 분리되지 않고 하나요, 하나님이 진흙으로 인간을 만드시고 인간에게 생기(하나님의 호흡)를 불어 넣으셔서 인간이 산 존재(a living being)가 되었다. 이 영성은 성적 신성함으로도 표현된다. 성적 신성함이란 독신이든지, 이성(異性)인 짝인 반려자와의 한 몸을 통하여 가정을 통하여 표현된다. 동성과 한 몸이 된다는 것은 가정의 신성함이 무너지는 것이요 창조질서를 파괴하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가증스럽게 여기시는 것이다. 신약성경 고린도전서 6장 9절의 교훈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자 가운데 ‘동성애자’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디모데전서 1장 9-10절은 율법의 정죄 대상이 되는 불의한 사람들 중 한가지로 동성애를 언급하고 있다.

4. 사도 바울은 동성애 행위를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어긋난다(역리, 逆理)고 정죄했다.

사도 바울은 로마시대에 있었던 동성애에 관하여 창조질서에 어긋나는 행위라고 정죄하고 있다: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 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롬 1:26-27). 바울이 이 구절에서 성(性)질서에 관하여 언급하는데 순리(順理)란 이성간의 관계를 말하며 역리란 동성간의 성관계를 말한다.

로마서 1장에서 바울이 말하는 “순리”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신 질서를 말한다. 동성애자들은 자기들의 성향이 타고 난 것이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순리라고 말한다. “정상성이나 자연스러움을 정하는 영원한 기준이란 없다”는 영국의 성공회 신학위원장 노르만 피텐저(Norman Pittenger)의 동성애 옹호 주장은 성경의 기준에 맞지 않다. 로마서 1장에서 말하는 “순리”란 이성애자들의 성도착 행위가 아니라 “자연, 즉 창조 질서에 대립되는 모든 인간의 행동”이다.

5. 동성 부부 가정은 입양 자녀들에게 진정한 마음의 안식처가 될 수 없다.

동성 가정은 입양된 자녀들에게 낳은 부모가 주는 진정한 사랑과 안식을 줄 수 없다. 이는 낳은 부모와 태어난 자녀들이 주고 받는 사랑 관계 속에서 가정이란 존재하도록 창조주 하나님이 지으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동성 커플에게서 자란 아이 헤더 바윅(Heather Barwick)의 증언에서 확인할 수 있다. 헤더는 동성 커플도 아이들을 잘 양육할 수 있다는 선전으로 쓰여진 책 『두 엄마를 가진 헤더』(Hether has two Mommies)의 주인공이다. 헤더는 2015년 3월 17일 동성편지에 반대하는 편지를 기고하였다: “지금 나는 동성 결혼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여러분이 게이여서가 아니라 동성관계 자체의 특성 때문입니다. 난 이제야 전통결혼 및 양육의 아름다움과 슬기로움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동성애자들은 아빠나 엄마가 있든 없든 다 마찬가지라고 말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엄마의 파트너는 잃어버린 아빠를 결코 대신해 주지 못했습니다. 동성 가정의 자녀들은 솔직할 수 없습니다. 동성결혼은 결혼과 양육까지도 재정의해 버립니다. 우리가 자연스럽게 갈망하는 것(아버지, 어머니)을 필요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동성애합법화반대국민연합, 2015. 7. 28. 조선일보 A32 전면광고) 헤더와 같이 동성 커플 가정에서 성장한 다수의 청소년들이 동성결혼은 아이들에게 유해하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것은 가정을 이루는 천부적인 이성(異性) 부모를 동성(同性) 부모로 변질시켰기 때문이다.

6. 동성애는 새 도덕(new morality) 혹은 상황윤리(situation ethics)와 다를 것 없다.

동성애자들도 동성 간의 사랑을 말하고 있다. 이들은 “동성간의 사랑도 이성간의 사랑과 다를바 없다”고 주장한다. “더 이상 ‘왼손잡이’에 대한 비난 이상으로 ‘동성애’를 비난해서는 않된다”(The Friends report towards a Quaker View of Sex, 1963, 21.) “관계의 성격과 질이 중요하다”(상동, 36). “남성 및 여성 동성애자들이 가지는 영구적 관계는 자신의 성을 표현하는 적절하고도 기독교적인 방식일 수 있다”(Methodist Church's Division of Social Responsibility. A Christian Understanding of Human Sexuality, 1979, chapter 9.)고 주장한다. 이러한 동성애 옹호자들의 주장은 동성애를 명확하게 거부하는 하나님의 창조질서의 뜻을 인본주의적으로 왜곡하고 있다. 동성애자들이 말하는 사랑이란 존 라빈슨(John Robinson)이나 조셉 플레처(Joseph Fletcher)가 말한 “새 도덕”이나 “상황윤리”와 다를 것이 없다. “새 도덕”(new morality)이나 “상황윤리”(situation ethic)는 1960년대 결혼 외적 성관계를 정당화하는 용어였다. 이제는 이러한 용어들이 “동성 간의 사랑”(homosexual love)으로 왜곡되고 있다.

7. 동성애 문제는 결혼과 같이 근본적인 문제이지 문화적 문제가 아니다.

여성안수 문제는 문화적 문제이지만 동성애 문제는 결혼제도에 관한 것이므로 교리적이고 근본적인 문제이다. 사도행전 15장에 있는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우상숭배는 당연히 금지된 신학적 문제이지만 우상에게 바친 고기를 먹는 문제는 문화적 문제이므로 기독교인의 자유에 맡겼다. 동성애 문제는 사회를 존속케 하는 가정의 질서에 관한 근본적인 문제이다. 기독교인의 아디아포라(adiaphora, 비본질적인 것들)로서 개인의 자유에 맡길 문제가 아니다.

1996년 11월 미국의 Christianity Today와의 인터뷰에서 독일의 신학자 판넨베르크(Wohlfahrt Pannenberg)도 동성애에 관하여 아주 보수적 입장을 취했다: “성경은 동성애 행위를 명백하게 거부해야할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동성애 결합을 결혼과 대등한 것으로 인정하는 교회는 “더 이상 하나의, 거룩한, 보편적, 사도적 교회가 아니다.”(Christianity Today, November, 1996.). 교회는 성경의 가르침에 근거해야 하는데 성경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교회는 더 이상 그리스도의 교회일 수 없다.

8. 억압, 해방, 권리, 정의, 평등 개념을 성경의 가르침에 기반하여 바르게 정의해야 한다.

인간의 권리는 하나님의 법 안에서 주장되어야 한다. 남아연방의 주교 데스먼트 투투(Desmond Tutu)는 성적 기호에 따라서 사람을 차별해서는 않된다고 말한다. 동성애자들이 동성애 공포증의 희생자라면, 그들이 멸시받고 거부당한다면 그들의 억압, 해방, 권리, 정의 주장은 이유가 있다. 그러나 이들이 주장하는 부당함과 불의가 동성애 관계를 이성애(異性愛) 결혼과 동등하게 합법적인 양자택일 사항으로 인정해주지 않는 것에 대한 것이라면, 이들의 주장은 부적절하다. 영국의 복음주의 신학자 존 스타트(John Stott)는 “인간은 하나님이 주시지 않는 것을 ‘권리’로 주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John Stott, Issues facing Christians Today, Grand Rapids: Zondervann, 2006); 정옥배 역, 『현대사회 문제와 그리스도인의 책임』, IVP, 2011, 224.)라고 말했다. 동성애자를 노예, 흑인, 여성해방과 유비(類比)관계로 보는 것은 성경적이 아니다. 노예제도, 흑인차별, 여성차별 등은 창조의 질서가 아니라 인간의 죄악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게이 내지 레즈비언 해방이란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대한 인간의 의지적 반항(게이와 레즈비언 행위)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NSW)주 교회협의회 의장이며, 몰링칼리지 신학대학원 학장으로 재직하고 있로스 클리포드(Rev. Dr Ross Clifford) 목사가 피력하는 것처럼, 동성애 결혼 찬성론자들은 그들이 외치고 있는 ‘결혼의 평등성’(Marriage equality)만 부여된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고 우리를 확신시키려 하고 있다. 하지만 현행 결혼법이 일단 수정된다면 집단 혼인을 비롯 하여 전통적 결혼의 참 의미와 가치를 훼손할 많은 법들의 제정이 요구될 것이다. 학교에서 동성애 성향에 대해 교육하는 것을 의무로 하라는 압력이 있을 것이고, 종교인들은 동성애 커플의 결혼을 집례하도록 강요받을 것이며, 결국에는 사회전체가 동성애 자체를 정상적인 것으로 인식케 하는 데까지 이르고 말 것이다.(Ross Clifford, Five good reasons to oppose same-sex marriage, 동성결혼을 반대하는 다섯 가지 이유, 크리스천투데이, 입력: 2012.09.20. 06:54).

9. 용납과 복음이라는 논거는 그대로 동성애자에게 적용될 수 없다.

하나님이 우리의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신다는 말은 동성애를 그대로 받아주신다는 것이 아니다. 계속 동성애를 행하는 죄인을 용납하신다는 뜻은 아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의 친구”였다. 그러나 그는 우리를 죄 가운데 그대로 있어라고 하지 않고 “나도 너를 정죄치 아니하노라 다시는 죄를 범치말라”(요 8:11)고 말씀하신다. 그는 우리를 구원하시고 변화시키기 위하여 우리를 환대하신다.

티모시 데일리는 결혼한 부부와 동성 커플의 차이를 다음같이 보고했다. 결혼한 부부의 경우, 관계 유지기간이 10년 이상이 66%, 20년 이상이 50%인데 반해서 게이커플의 경우에는 12년 이상이 15%, 20년 이상이 5%, 외도 안하기는 전자가 남편 75.5%, 아내 85%, 후자는 4.5%, 생애파트너는 전자경우 이혼율이 높은 미국도 3명 이상 배우자도 드문 반면, 후자 경우 1997년: 평균 100명 이상, 501-1천명이 10.2-15.7%이며, 1천명 이상이 10.2-15.7%였다.(Dimothy Dailey, Comparing the Lifestyles of Homosexual Couples, 2004; 동성애합법화반대국민연합, 2015. 7. 28. 조선일보 A32에서 재인용.) 1990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국내 동성애자의 81.9%가 연간 성관계 파트너를 1-10명까지 교체하는데, 연간 1백명을 교체하는 동성애자들도 있는 것으로 보고하였다.(연합뉴스 1990. 7.20.). 동성애자는 동성애의 잘못된 관습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래야만 하나님 앞에 용납될 수 있다. 동성애라는 죄의 관습에서 벗어나야 한다. 동성애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복음의 능력은 동성애의 관습과 굴레를 깨뜨릴 수 있다. 인간은 불가능하나 하나님은 하나님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 동성애를 치유하신다.

10. 동성애자들에게 진정한 인권 회복이란 탈동성애다.

세계적으로 동성애 논란이 커져가고 있는 만큼 동성애에 대한 단순한 반대는 시대에 역행하는 것이라는 논란도 있다. 한국교회는 그동안 사회적 이슈에 대해 침묵하거나 극단적인 반대로 오히려 사회적 반감을 얻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청년시절 동성애자로 살았다가 탈동성애자로서 회복을 경험한 홀리라이프 대표 이요나는 ‘복음’이 탈동성애를 위한 유일한 방법이라고 밝혔다: “교회가 단순히 동성애 문제를 이슈화시키기보다, 동성애자를 회복하는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단순한 맞불집회식의 부차별적 반대가 아니라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를 고민하며 이들이 회복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 합리적”이다. “교회가 신학적 이유로 ‘죄’라고 정죄하기보다 주님 품으로 이들이 돌아올 수 있도록 복음을 전하고, 이들의 회복을 위해 나서야 한다.” “동성애자들을 위한 진정한 인권은 동성애로부터의 탈출이다.”“동성애 문제에 대해 한국교회가 침묵하며 시대적 조류에 휘말려서는 안 된다.” 한국교회는 선한 사마리인의 심정을 가지고 동성애 행위는 죄라고 지적하되 동성애자의 인격에 대해서는 깊은 동정과 긍휼의 마음을 지니고 저들이 탐닉된 관습에서 치유되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퀴어 축제로 인한 동성애 이슈에 교계는 단결하여 크게 반발하였으나 이에 대한 사회적 논란은 아직도 한국 사회에는 크지 않다. 유럽에서처럼 동성애자들끼리의 결합이 정상적인 결혼의 조건이 된다고 주장하는 사회적 흐름도 약하다. 그러나 언제라도 잘못된 문화가 흘러들어올 가능성이 있기에 정신을 바짝 차리고 한국교회는 하나님 말씀의 기준을 지켜나가야 한다. 동성애를 더 이상 비정상(죄)이라고 말할 수조차 없게 만드는 법안(차별 금지법 그리고 동성애 허용의 서울시민헌장)이 두 번이나 통과될뻔한 것을 겨우 막았는데 이제야 말로 깨어 기도하며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낼 그리스도인들이 일어나야 할 때이다.

교회의 과제는 동성애자들에 대하여 편견과 차별을 하는 “동성애 혐오증”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교회는 이들을 소외된 인간으로서 인격적으로 대면하고 공감과 위로와 격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 이들이 변화된 인격과 새로운 삶과 세계관을 갖도록 해주어야 한다. 교회는 이들을 외면하거나 배척하지 말고 이들을 우리 가운데 있는 타자(비정상인)로 대해야 할 것이다. 교회는 이들을 위한 고도의 의학적 지식과 심리학적 소양을 가진 전문상담가를 양성해야 할 것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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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