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CK 총무 김영주 목사
前 NCCK 총무, 現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원장 김영주 목사 ⓒ 자료사진

(사무엘서) 나단선지자를 통해 다윗은 하나님의 질책을 듣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한 결과로 " 이제부터는 영영 네 집안에서 칼부림이 떠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너의 집안에 재앙을 일으키고, 네가 보는 앞에서, 내가 너의 아내들도 빼앗아, 너와 가까운 사람에게 주어서, 그가 대낮에 너의 아내들을 욕보이게 하겠다. 너는 비록 몰래 그러한 일을 하였지만, 나는 대낮에 온 이스라엘이 바라보는 앞에서 이 일을 하겠다.' " 밧세바와 임금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은 죽을 것입니다(삼하10-14)." 라는 준엄한 말씀을 듣습니다. 이 지점에서 저는 다윗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흔히들 다윗은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이고 신앙이 깊은 성군이라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런 다윗이라면 '그리하지 마십시오, 저를 죽이고 아이는 살려 주십시오.'라고 탄원해야 하는 것이 옳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근 손자를 가슴에 안아본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저로서는 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물론 16절 이후에 다윗이 아이를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고 금식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나단의 질책에 이어 즉시 다윗은 '하나님께 저를 죽여주시고 내 아내들의 수치를 면해주시고 아이의 생명을 구해 달라고 요청해야 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최근 정의당의 노회찬 전대표의 죽음을 접하고는 저의 다윗의 태도에 대한 의문은 더 깊어졌습니다. 노회찬 전대표의 죽음은 우리 모두를 매우 당황하게 했습니다. '그 분은 무엇을 지키려고 자기 목숨을 버렸는가?' 라는 생각은 한동안 저의 화두가 되었습니다. 다윗의 죄를 생각하면 그의 혐의는 매우 사소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는 목숨을 거두었습니다. 주변의 사람들과 많은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우리들은 그분은 자식과 같은 진보정치의 생명을 가꾸기 위해 자신을 바친 것이라고 매우 조심스럽게 결론 내렸습니다. 물론 우리들의 짧은 생각들이 그분의 삶과 죽음을 욕되게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만약 우리들의 결론이 옳다고 한다면 자기를 대신해서 아들이 죽는 것을 용인한(?) 다윗의 처신은 더욱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다윗의 이야기를 더 읽어 봅니다. 다윗의 삶은 아들 암논의 일탈과 아들 압살롬의 복수, 압살롬과 밧세바의 할아버지인 아히도벨의 반역 등으로 피의 역사로 점철되고 있습니다. 비록 그가 이스라엘을 일으킨 큰 왕으로 칭송받기도 하지만, 참으로 구차한 삶을 살았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노회찬은 죽었지만, 그분의 삶과 진보정치에 대한 꿈은 오늘 우리 사회에 깊은 감동으로 살아나고 있습니다. 다윗은 빵을 택했고, 노회찬은 가치를 택했던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저는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서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열매를 많이 맺는다."(요12:24) 는 말씀의 신비를 느낍니다.

(요한복음) 우리는 오늘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의 세상은 매우 복잡합니다. 그 속에 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삶은 실타래처럼 엉켜있기도 합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혼돈스럽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한 무리들이 바다 건너편에서 예수를 만나서 말하였다. "선생님, 언제 여기에 오셨습니까?" 예수는 그들을 향해 " 너희가 나를 찾아온 것은 2)표적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먹고 배가 불렀기 때문이다. 너희는 썩을 양식을 얻으려고 일하지 말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는 양식을 위해 일하여라. 그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줄 것이다. 그것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자를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요 6: 25-26)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무리들이 예수에게 다시 묻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됩니까?" 그들은 세상을 구원하려 오신 주님을 앞에 놓고 더 큰 표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모습에서 오늘의 우리 교회의 모습을 봅니다. 아니 저의 모습을 봅니다.

어린 시절에 교회에 다녔던 저 자신을 생각해 봅니다. 제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저는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어린이에게 나눠주던 빵을 받아먹기 위해 교회에 처음 나갔습니다. 어릴 때였지만, 교회선생이 교회에 다니지 않았던 저에게 빵을 주는 것을 내켜 하지 않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떳떳하게 빵을 받으려고 교회에 열심히 다녔습니다. 그 과정에서 신앙이 생기게 되었고(?) 목사가 되어 있습니다. 목사로서의 저는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부름 받은 사람이라는 자의식을 가지고 살아가지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다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기에는 공부가 부족하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세상을 잘 알지도 못했고, 하나님의 뜻도 잘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성경과 신학, 인문학과 사회과학 등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탐욕스럽게(?) 읽었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배가 고팠습니다. 오늘의 저는 더 큰 표적을 구하는 무리들 중 하나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세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빵을 주었다는 사실은 알았고, 앞에 있는 분이 요셉의 아들인 예수인 것은 알았지만.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이라는 사실은 몰랐습니다. '그 분이 바로 생명의 빵이다. 그분에게 가는 사람은 결코 주리지 않을 것이요, 그 분을 믿는 사람은 다시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다시 노회찬을 생각합니다. 그는 가난한 민중의 편에 서는 것이 하늘의 뜻으로 알고 그 자리에 섰고, 자신의 작은 실수가 그동안 소중히 키워왔던 소중한 가치가 훼손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았습니다. 목사인 저는 여전히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일이 무엇인지 이리저리 살피면서 좌고우면하고 있었습니다.

노회찬은 아는 것을 실천했고, 저는 알고 있는 것을 실천하지 않고 있습니다. 더 알아야한다는 핑계를 대면서 비겁하게 우리의 실천을 미루고 있지 않은가?

 예수께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인자의 살을 먹지 않고, 또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 속에는 생명이 없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에게는 영생이 있을 것이요,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살릴 것이다. (6: 53-54)"

(에베소서)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가 머리이신 교회공동체로 불림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교회공동체는 여러 부분이 결합되고 서로 연결되어서, 각 부분이 그 맡은 분량대로 활동함을 따라 각 마디로 영양을 공급받고, 그 몸을 자라게 하여, 사랑 안에서 스스로를 세워 가야 합니다(엡4:16).'

사도바울은 간곡하게 에베소교회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불러 주셨으니, 그 불러 주신 뜻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1) 우리는 이 이상 더 어린 아이로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인간의 속임수나 간교한 술수에 빠져서, 온갖 교훈의 풍조에 흔들리거나 이리저리 밀려 다니거나 하지 말아야 합니다.(14)' 오늘의 교회에 주는 말씀입니다. 인정하기 싫지만, 오늘의 교회는 아직 어린아이의 그것에 머물려 있고 세상풍조에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교회는 더 이상 세상의 희망이 되질 못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교회는 빵을 찾아다니는 어린아이의 신앙에 머물러 있습니다. 오늘의 교회는 각성하여 하나님께서 부르신 뜻을 온전히 알아야 합니다. 오늘의 교회는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면서, 모든 면에서 자라나서, 머리이신 그리스도에게까지 이르러야 합니다.(13)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하늘나라에 합당한 자는 ' 내가 주렸을 때에 내게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 감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 준 사람들(마25:35-36)' 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몸소 실천하셨습니다. 그 말씀 따라 살아가는 길이야말로 오늘의 교회가 구원을 받는 길이요 세상을 구원하는 길입니다.. 무척 쉬운 일 같지만 매우 어려운 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의 교회는 그 길을 겸손과 온유와 사랑으로 그리고 인내로 가야 합니다(2). 그 길 외에는 다른 길은 없기 때문입니다.

* 설교는 지난 2018년 8월 5일 '함께 하는 예배' 공동체 주일예배 설교문을 수정·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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