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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11 (일)

[건사연 논평] ‘정치적 올바름(PC)’의 강요는 끝났다

기독일보 편집부 기자 (press@cdaily.co.kr)

입력 2016. 11. 23 00:24  |  수정 2016. 11. 24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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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

[기독일보=오피니언] 제45대 미국 대통령 선거는 트럼프의 당선으로 막을 내렸다. 예상과는 사뭇 다른 결과 때문인지 선거가 끝난 지 2주 가까이 지났는데도 그 충격의 여파가 계속되는 모습이다.

눈에 띄는 것은, 이번 미 대선의 향방을 결정지은 주요 이슈로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이 거론된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는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개념이기에, 미국 유권자들이 어떤 대통령에 투표할지를 결정할 만큼 위력을 발휘했다는 점에 선뜻 수긍하기 어려울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치적 올바름’이 인종과 세대 및 성별 등을 넘어 미국 사회 전반에 걸친 갈등을 나타내는 용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번 미국 대선의 결과가 단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정치적 올바름’으로 대변되는 미국 사회의 특정 세력에 대한 미국 유권자의 심판인 것이다.

미국 대통령 선거 당선자 도날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선거 당선자 도날드 트럼프.

왜 그런지 알아보기 위해, ‘정치적 올바름’이 무엇인지 짚고 넘어가자. ‘정치적 올바름’이란 사회의 특정 집단이나 계층에 대하여 공격적이거나 부당한 표현 내지는 정책, 수단을 삼가자는 일련의 사회적 움직임을 말한다. 이 용어는 1970년대 미국의 신좌파(New Left)에 의하여 도입되었으나 90년대 문화전쟁(Culture War)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여기서 문화전쟁이란 1992년 미 대통령 선거에서 일어난 진보 대 보수의 대립을 가리킨다. 버지니아 대학의 사회학자인 제임스 헌터 교수에 따르면, 이러한 진보 대 보수의 대립은 이념적 세계관에 의하여 나뉘게 된다고 한다. 즉, 단순히 종교나 인종 내지는 사회적 계층 때문이 아니라 본질적으로는 낙태, 총기 사용, 약물 사용, 동성애 등의 가치관에 따라 대립이 형성된다는 사실이다.

이를 정치적 현장에서 언급한 이가 팻 뷰캐넌이다. 92년 미 대선 당시 공화당 경선에 출마한 그는 진보 대 보수의 대립은 과거 미-소 간 냉전(Cold War)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정신을 놓고 언젠가 맞닥뜨릴 장래로 규정하면서, 공공적 도덕(public morality)이 이러한 대립을 낳는 가치관의 기준이라고 역설한 바 있다.

당시 민주당은 빌 클린턴과 그의 부인 힐러리를 내세워 낙태, 동성애, 미션스쿨에 대한 차별 등 공공적 도덕 등에 있어서 공화당과의 가치관의 대립을 명확히 세웠었다. 뷰캐넌은 클린턴 부부가 내건 어젠다들이 미국이 원하지도 필요로 하지도 않는 변화라고 이들을 비판했지만, 결국 클린턴이 대선에서 부시를 누르고 당선되었으며 이후 미국 사회에서는 조지 W 부시를 제외한 클린턴 집권 8년과 현재 마무리 중인 오바마 집권 8년이라는 긴 시간에 거쳐 진보 집단의 어젠다가 하나씩 단계적으로 실행되어 나가게 된다.

다시 ‘정치적 올바름’으로 돌아와서, 1990년대 초반은 진보적 가치를 실현하는 방안에 대한 담론이 미국 사회에서 활발하게 전개되던 시점이었다. 진보적 사상이 이미 주류를 이룬 미국 대학들을 중심으로 이른바 ‘스피치 코드(speech code)’의 적합성 여부를 놓고 찬반이 거세게 맞서고 있었다. 민족과 인종, 출신국가나 종교 또는 나이 등을 이유로 차별적 괴롭힘(discriminatory harassment)을 방지하고자 하는 목적이었지만 이에는 성적 지향과 같은 동성애에 대한 소위 차별적 발언 금지도 은근슬쩍 포함되었으며, 발언의 자유를 보장하는 수정헌법 제1조에 위배된다며 연방지방법원에서 그 권리를 인정하지 않았었다.

‘정치적 올바름’은 이러한 진보적 가치관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거나 풍자를 하기 위한 용어로 보수에서 차용되었다. 미국의 문화전쟁에서 진보(liberalism)를 대변하기 위한 진보 진영의 움직임이 사실상 사상을 검열하는 수단으로 기능하거나 포스트모더니즘, 해체주의 또는 구조주의 등으로부터 바라보는 페미니즘이나 동성애 옹호적 사고관 등의 소위 좌파적 가치관을 두루 수용할 수 있는 이른바 좌파적 절충주의(left eclecticism)으로 기능하는 것에 대한 보수(conservative)의 위기감을 드러내는 용어였던 것이다.

즉,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용어의 태생에는 애초부터 미국 사회를 이끌어 온 전통적 가치관과 그와 상치되는 새로운 가치관, 즉 진보(liberalism)와의 대립이 자리잡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문제는 경제야(Economy, Stupid!)’라는 캐치프레이즈로 당시 현직 대통령이던 조지 허버트 부시를 누르고 당선된 빌 클린턴 집권 동안만 하더라도 ‘정치적 올바름’이 직접적으로 이슈화되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기껏해야 동성애자들의 미군 복무를 동성애자임을 발설하지 않는 조건부로 허용하는 Don’t Ask, Don’t Tell (DADT)의 입법 정도에서 그쳤을 뿐이다.

그러나 최근까지 이어진 오바마 정부에서는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과 개편이 이어져 왔다. 그 자신이 무슬림과 백인 간의 혼혈인데다 출생지가 조작되었다는 의혹을 강하게 받는 등 출신에 있어 진보적 가치관을 실천적으로 구현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오바마였기에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열망은 어쩌면 당연하였을는지도 모르겠다. 어찌되었든, 오바마 집권 동안 앞서 언급한 Don’t Ask, Don’t Tell이 연방대법원으로 위헌 판결을 받아 전격 폐지되었고, 동성결혼을 합헌화하는 연방대법원의 결정이 이어지면서 동성애자들에 대한 법적 지위 보장은 미국 역사상 유례없을 만큼 극대화되었다. 이미 여러 차례 지적되었듯, 동성애에 반대한다는 발언을 한 시민들에 대하여 동성애 옹호집단과 극단적인 동성애자들이 파시즘적인 행태를 보이면서 이들을 괴롭히고 심지어는 이들을 ‘혐오세력’으로 규정하는 극언을 서슴치 않았다.

가치관의 대립이 미국 사회를 분열시키는 대치선이 될 것이라는 뷰캐넌의 예언은 트럼프와 힐러리 간의 제45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정치적 올바름’을 놓고 이러한 대립이 일어났음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미국 대선이 있기 1년 전인 2015년 10월 뉴저지의 페어레이 디킨슨 대학(Fairleigh Dickinson University)에 의하여 조사된 설문 결과가 바로 그것이다.

위 설문 결과는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견해가 실제 문제 인식과는 별개로 정치적 노선에 의하여 좌우될 수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정치적 올바름’이 미국이 처한 중대한 문제라는 명제에 동의하는지 여부를 묻는 질문에 공화당 81% 및 민주당원 68%가 동의하였지만 같은 질문에 대하여 도널드 트럼프가 ‘정치적 올바름’이 미국이 처한 중대한 문제라고 말했다고 전제를 한 뒤, 이에 동의하는지를 묻자 공화당원은 80%가 동의한 반면 민주당원의 36%만 동의하는 모습을 보였다.

흥미로운 것은, ‘정치적 올바름’에 있어 정당 지지 성향과는 무관하게 대체로 이를 문제라고 여기는 인식이 이미 미국 사회에서 만연해 있다는 점이다. 같은 질문을 공화당이나 민주당 성향이 아닌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하더라도, ‘트럼프 현상’을 전제로 할 때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문제 인식은 47%로, 트럼프를 전제로 하지 않을 때인 68%과는 두드러지게 차이가 난다.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사회적 피로 현상이 이미 널리 퍼져 있음에도 ‘트럼프 현상’에 대한 반발심에 의한 진보적 성향이 문제 인식조차 왜곡시킨다는 점에서,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가 드러난다. ‘정치적 올바름’이 보수 진보 할 것 없이 문제임을 알면서도 여전히 진보적 어젠다의 사용에 유용하게 쓰이는 현실을 반영하는 대목이다.

이미 끝난 미 대선이지만, 미국 내 주요 사회적 안건에 있어서 선거 기간 내내 도널드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은 뚜렷한 입장 차이를 보여 왔음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특히 생명윤리와 전통적 가족관 그리고 성윤리 문제에서 극명하게 엇갈린 행보를 나타냈다. 낙태와 관련하여 트럼프가 낙태를 반대하는 판사를 지명하겠다고 한 반면, 클린턴은 그럴 수 없다며 강경한 자세를 취했다. 트럼프가 전통적 결혼의 가치를 보호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과는 정반대로, 클린턴의 경우 이에 무심하거나 오히려 이를 폐기하여야 한다는 뜻을 수 차례 내비쳤었다. 급기야는 공립학교에서 남자가 여자 화장실을 사용하는 풍기문란에 대해서도 트럼프가 반대를 외칠 때 클린턴은 이를 지지한다고 하며 대다수 미국인들의 사회적 가치관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러한 가치관의 대립에 있어 전통적 가치관에 대하여 옹호하는 발언을 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할 경우 편견이나 혐오 세력으로 낙인을 찍는 행위가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미명 하에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선거 기간 내내 진보적 가치관에 경도된 주류 언론은 선거가 끝났는데도 여전히 트럼프에 반(反)하는 비난 세력을 ‘저항 운동’으로 규정하는 편파적 모습을 여전히 보이고 있다. 힐리러가 선거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였는데도, 여전히 이를 두고 ‘시민불복종’을 언급하거나 트럼프를 조롱하는 미국 셀러브리티들의 언행이 계속되는 모습이다. ‘정치적 올바름’이 사실상 상대방을 공격하는 문화적 홍위병의 재현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만큼 극단적이고 폭력적임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반면, 미국의 대중은 이미 미국 주류 언론에 대한 신뢰를 잃은 지 오래이며 일부 진보 인사들의 엘리트주의에 반기를 들고 있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백인 하층민’의 트럼프 지지는 근거 없는 낭설에 지나지 않는다. 연소득 5만 달러 이상 고소득 계층의 경우 조사된 전 구간에서 클린턴에 비하여 더 많은 지지를 트럼프에 보낸 것으로 조사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또, 트럼프 당선 직후 국내의 한 언론사는 동성결혼 허용 등 미국 사회의 급진적인 진보화를 우려하는 보수진영에서 민주당 정부를 더 이상 용인할 수 없었고 이로 인한 결기가 반(反) 클린턴 및 트럼프 지지로 이어졌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하였다. 이번 미국 대선이 사실상 미국의 도덕적 가치 회복을 위한 유권자들의 열망으로 해석될 수 있는 심증적인 근거가 충분히 있음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이번 미국 대선의 트럼프 현상이 한국 정치에 미치는 함의는 무엇인가? 1년 뒤에는 한국에서 대통령선거가 열린다.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으로 인하여 많은 국민들의 실망과 분노가 봇물 터지듯 하는 현 시점에서, 트럼프의 승리로 끝난 이번 미국 대선이 시사하는 바는 단연코 이것이다. 어느 정당이든 국민 다수가 지지하는 가치를 구현하지 못한다면 침묵하는 다수에 의하여 투표로 심판받게 된다는 자명한 사실이다.

미국에서조차 ‘정치적 올바름’을 내세워 대다수 국민 성원의 가치관을 얕은 수로 호도하려고 할 때, 그에 대한 피로감 호소가 트럼프의 압도적 지지라는 ‘대이변’을 낳았다. 한국 정치의 그 어느 때보다도 국민의 처지에서 어떠한 도덕적 가치가 구현되어야 하는지를 고민할 때, 비로소 올바른 정치적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정강과 공약을 내세우고 국민에 호소하는 정당과 후보만이 차기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적 지지와 선택을 받을 수 있음은 너무나도 명확하다.

시류에 편승하여 인기를 얻고자 국민 정서에 맞지 않는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인 가치를 내세운다면 반드시 투표에서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당선으로 미국에서조차 이미 수정될 것이 분명한 미국 내 친(親)동성애적 정책이 내년도 대선에서 혹 당과 후보의 주요 정책으로 거론된다면 이번 미국 대선에서 미국 유권자들이 클린턴과 민주당에게 그러하였듯이, 우리나라 유권자들의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더군다나, 우리나라는 남북이 이념을 두고 대립하는 지역적 특수성을 가지고 있다. 미국과는 달리, 분단국가로서의 정치적 및 군사적 대결 상황이 언제든지 재개될 수 있는 한국적 상황에서 ‘정치적 올바름’이 자칫 특정 이념을 암암리에 주입하는 도구로 쓰일 수 있는 위험에 놓여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미국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올바름’적 현상을 이미 우리는 겪고 있다. 모양새는 미국의 그것과 다르지만, 휴머니즘과 나르시시즘 및 사상적 자유의 결합이 도리어 건전한 비판에 재갈 물리는 것을 목격한다. 언제부터인가 동성애 담론은 마치 동성애자들에 대한 ‘억압’이니 ‘폭력’이니 규정하는 것이나 심지어는 할랄단지와 같이 이슬람에 대한 무분별한 수용에도 이를 비판하는 발언들을 모두 ‘혐오’로 규정하는 모습들이 우리 사회가 처한 ‘정치적 올바름’의 실상이 아니던가?

‘정치적 올바름’은 사실상 끝났다. 차기 대선 주자들은 이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정강과 공약에 반영하기를 바란다. 국민의 입장에서 국민이 바라는 도덕적 가치가 무엇인지, 그것을 어떻게 구현할는지를 깊이 고민하고 이를 실현할 방안을 제시하여야 할 것이다. 트럼프의 당선이 한국 정치계에 있어 침묵하는 다수(silent majority)에 귀를 기울이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 본다.

/글·사진=건강한사회를위한국민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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