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권정 박사

개신교계를 중심으로 '건국절'을 제정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8.15가 '광복절'로는 잘 알려져 있지만, 1948년 같은 날 남한 단독정부 수립일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유독 개신교계가 '건국'에 대한 목소리를 내는 것은, 교회가 건국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서울신대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소장 박명수)가 "대한민국의 건국과 기독교"라는 주제로 영익기념강좌를 개최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26일(수) 세미나 김권정 교수(대한민국 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는 "해방 후 기독교 세력의 동향과 대한민국 건국운동"이란 주제로 발표했다.

김권정 교수는 "해방 정국에서 기독교인들도 안으로는 일제 탄압으로 무너진 교회조직을 재건하고, 밖으로는 국가건설운동에 적극 나서기 시작했다"고 말하고, "19세기말 이래 한국사회의 정치세력으로 등장한 기독교인들은 한말 독립협회운동과 국권회복운동을 주도하며 서구의 근대문명과 민족주의 의식을 고취했다"고 설명했다. 또 "해방 이후 기독교세력은 국가건설운동을 통해 대한민국 건국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고 평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민족의 염원과 달리 해방과 함께 시작된 남북 분단과 미소군정의 실시는 한국교회의 재건과정에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고 평한 김 교수는 "북한교회 기독교인들이 소군정과 공산세력의 압박과 탄압에 맞서 충돌, 저항하다 대거 월남했는데, 이에 비해 남한교회는 기독교에 대해 우호적인 미군정 아래서 실질적 지원을 받았고, 다양한 방면에서 어떤 종교공동체 보다 사회의 높은 참여를 보였다"고 했다.

미군정에 참여한 기독교인들은 이후 전개될 다양한 정치사회적 격동기에 기독교세력의 정치사회적 활동에 분위기를 조성했다. 해방직후 다양한 정치집단들과 세력들이 갈등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교회와 기독교인들이 정치사회적 영향력을 적극 행사하는 배경이 됐고, 이와 함께 해방직후 기독교세력은 당시 정치사회단체 결성을 통해 조직적으로 대응하며 국가건설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했는데, 그 방식은 일반 정치사회단체에 기독교인들이 참여해 주도하거나 기독교 사회단체를 공개적으로 표방하며 결성하는 것이었다.

김 교수는 "당시 한국교회와 기독교인들은 적대적 소련과 공산주의에 맞서 자유 민주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시대적 소명이며, 민족을 구원하는 지름길로 인식했다"고 말하고, "이렇게 해방정국 건국과정에서 기독교세력의 반소 반공주의는 국제정세와 맞물린 국내정세 변동, 그리고 기독교적 국가건설론이 결합되어 형성됐고, 기독교세력의 실천적 논리로 자리 잡게 됐다"고 했다.

특히 기독교 세력은 해방정국에 큰 충격을 준 신탁통치를 둘러싼 논쟁과 활동에 우익세력의 주요 구성원으로 참여했다. 반탁총동원위원회, 비상정치회의와 독촉중협, 비상정치국민회 등 크고 작은 반탁운동을 내세운 단체들에 목회자들을 비롯한 많은 기독교인들이 참여했고, 교회 및 학교 내 기독청년학생들이 다른 청년 학생단체들과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참가했다. 월남한 기독청년 학생들의 활약은 두드러졌다. 그리고 기독교 여성지도자들의 주도로 결성된 한국애국부인회와 여자국민당은 조직적이고 강력한 반탁운동을 전개를 위해 '독립촉성중앙부인단'을 결성하여 활동했다.

김 교수는 "한편 중간파 기독교세력은 '좌우합작'이란 큰 흐름 속에서 좌우합작운동과 남북협상을 통해 통일민족국가의 수립을 목표로 했는데, 이것은 '민족 주체성'이란 차원에서 너무도 당연한 명제였고, 미군정의 지원을 받으며 좌우합작운동을 전개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주어진 역사현실을 좌시하지 않고 능동적으로 이를 헤쳐 나아가려고 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으나, 해방 후 냉전의 각축장이자 변화무쌍한 한반도를 둘러싼 복잡한 국내외 정치의 역학관계에 대한 대응책으로 삼기에는 어쩔 수 없는 한계를 노출시킨 정치운동이기도 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 김 교수는 "제2차 미소공동위원회의 완전 결렬 이후, 한반도 문제가 유엔총회로 이관되자, 기독교 세력은 '가능한 지역에서 총선거'라는 입장에서 정부수립운동을 전개했다"고 말하고, "이들은 유엔 한국위원단에 가능한 지역에서 총선거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동의를 이끌어내는 활동을 펼쳤는데, 결국 유엔총회의 결의로 5.10총선거가 실시되자 기독교인들이 총선거에 적극 참여했다"고 설명했다. 이 결과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선출과 함께 드디어 1945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출범하게 됐고, 기독교인들 상당수가 내각과 함께 정치권력의 중심에 포진하게 됐다.

박명수 교수(서울신대)는 "해방 후 건국준비위원회(이하 건준)와 기독교의 역할"을 주제로 발표하면서, 아직 미군이 진주하기 이전의 건국준비위원회에서 기독교가 어떤 역할을 했는가를 살펴봤다. 박 교수는 "해방 직후 한국사회는 좌익이 대세였다는 기존의 주장은 재고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해방 직후 한국사회에서 기독교의 영향력은 매우 중요했다"고 평가했다.

한편 행사에서는 김명구 교수(해위학술연구원 운영위원)와 이은선 교수(안양대 교회사)가 논찬자로 수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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