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로교회 담임, 전 파이디온선교회 대표 양승헌 목사   ©세대로교회

부모는 다음세대 양육의 1번지 책임과 특권과 기회를 가진 사람들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따로 놀기를 하고 있다. 주일이면 가족들이 차를 타고 교회 주차장에 도착하지만 각자 다른 공간으로 흩어져, 각자 다른 메시지와 다른 찬양으로 예배하고는 정해진 시간 안에 주차장을 비워주고 빨리 집으로 간다. 가족 간에 함께 나눌 영적인 화두도, 관심사도 없는 영적 이산가족이 되어 돌아가, 뿔뿔이 제 삶을 살다 주일에 또 다시 교회로 돌아 온다. 이것이 우리의 스토리가 끊어지게 된 가장 심각한 문제 중에 하나다. 교회는 언젠가부터 부모들을 설득했다. 교회에 데려오면 아이를 믿음의 사람으로 확실하게 키워주겠다고. 교회는 아이들의 믿음을 키워주는 능력과 책임을 가진 기관으로 자임하면서 부모들로부터 영적 양육의 책임을 떠 맡았다. 문제는 이러한 교회의 생각이 가정과 부모 사이의 단절을 초래했다는데 있다. 이 단절은 단지 자녀 양육의 문제만 초래한 것이 아니다. 이 단절은 자녀를 양육함으로 부모가 서고, 부모가 섬으로 가정을 하나님 나라 대사관으로 세우는 하나님의 계획을 방해하기에 이르렀다.

교회에서의 교육은 가정에서의 교육과 통합되어야만 한다. 부모가 동원되지 않는 한 교회의 교육은 한 손으로 손뼉치기 하는 것과 같다. 교회에서의 교육은 매우 중요하다. 교회는 믿지 않는 가정이나 믿음이 제대로 서지 못한 가정들의 자녀들에게 제2의 가정이며 제2의 부모 역할을 감당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교회에서 가르쳐지는 바른 진리라는 에너지와 가정에서의 부모의 사랑이라는 에너지가 합성될 때 우리의 다음세대는 건강한 믿음의 세대로 자랄 수 있다.

이것에 대해 레기 조이너(Reggie Joiner; 싱크 오렌지. 디모데 p.89)는 이렇게 말한다.

* 한 사람에게 하나님과의 관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 부모만큼 아이와 하나님과의 관계에 더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 교회 보다 부모에게 더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기관은 없다

* 교회가 부모와 손잡을 때 아이에게 영향을 미치는 교회의 잠재력은 극대화된다

* 부모가 교회와 손잡을 때 아이에게 영향을 미치는 부모의 잠재력은 극대화된다

구약이든 신약이든 그 다음세대에게 믿음을 물려주는 1번지 통로는 가정이다. 모세는 그 원리와 전략을 신명기 6:4-9에서 명백하게 제시하고 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신명기 6:4-9)

나는 이 귀절을 다음세대 사역의 중심축으로 여긴다. 이 본문은 L자로 시작하는 네 동사의 기둥 위에 서 있다. 부모가 먼저 말씀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시는 참 하나님을 알고(Learn), 그 하나님을 모든 것을 다해 사랑하고(Love),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여 살아감으로써(Live),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고, 말씀대로 살아가는 믿음을 그 다음세대에게 물려주는(Leave) 것이었다. 이 네 개의 동사는 단지 자녀 양육의 지혜나 기술만 제공하지 않는다. 이 네 동사들은 가정을 하나님 나라의 대사관으로 세우는 원리도 제공한다. 이 재생산의 과정이 지속될 때만 이스라엘은 온 세상을 축복할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로서 존속할 수가 있었다.

알라 (Learn)

내가 가진 것이 있어야 남에게 줄 수 있다. 내가 먼저 하나님을 알아야 다음세대들이 하나님을 알게해 줄 수 있다. 거의 모든 언어 장애는 청각장애로부터 온다고 한다. 들어야 말할 수 있다. 문제는 어떤 하나님을 알게 해주냐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을 모르면, 내가 경험한 나의 하나님을 알게 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모세는 말했다.

"이는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가르치라고 명하신 명령과 규례와 법도라 너희가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서 행할 것이니 곧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들이 평생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내가 너희에게 명한 그 모든 규례와 명령을 지키게 하기 위한 것이며 또 네 날을 장구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 (신명기 6:1-2)

우리가 성경이 말하는 그 하나님, 그 예수님을 우리 다음세대에게 알게 하려면, 먼저 우리가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배워야 한다. 우리가 끊임 없이 성경을 읽고 듣고 배우고 암송하고 묵상하여야 하는 이유는 성경의 정보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바로 알기 위해서다.

사랑하라 (Love)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 다음세대들이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우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우리가 먼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여야 한다. 왜 그래야하는가? 하나님은 유일한 참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많은 신들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두 종류 밖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이 인간의 형상대로 창조한 신들과,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신 참 하나님. 그러나 하나님을 잃어버린 인간들을 구하시기 위해 그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셨다. 우리 크리스천의 가치는 그가 모신 예수님께 그가 부여하는 가치로 결정된다. 예수님을 시시하게 사랑하는 사람은 시시한 크리스천이 되고, 예수님을 존귀하게 사랑하는 사람은 존귀한 크리스천이 된다. 사무엘상 2:30절b 은 말한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살라 (Live)

왜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손목에 매어 기호로 삼고, 미간에 붙여 표로삼고,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하라고 하셨을까?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기 위해서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법을 가르치게 하기 위해서다.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 기준음이다. 그 기준음에 맞추어 삶을 연주할 때, 수평적으로는 주변의 이방인들이, 수직적으로는 가정의 자녀들이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심을 보고 그의 영광의 나라 안으로 이끌려 들어올 수 있게 된다. 부모가 되었던 교사가 되었던 목사가 되었든 기독교 교육가에게 가장 중요한 교육방법은 모델링이다. 믿음은 가르쳐지는 것이 아니라 붙잡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유치부에서 아이들에게 간식으로 멸치를 준 적이 있다. 모든 아이들은 받자 마자 입으로 집어넣는데, 한 아이만은 손에 꼭 쥔 채 먹지를 않고 있었다. 그것을 본 교사가 물었다, "왜 그러는데?" 아이가 말했다, "아빠 갖다주려구요" "아빠? 왜?" 아이가 대답했다. "맥주 먹을 때 멸치하고 먹으라구요". 아이는 맥주를 멸치와 먹어야 하는 맛의 조합(?)을 어떻게 배우게 되었을까? 봄으로써다. 우리의 매일의 삶은 아이들이 배우는 교과서다. 바로 살아야 한다.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말씀을 삶으로 통역해 주어야 한다. 그것은 아이들을 세우기 전에 자신을 세우는 축복이 된다.

물려주라 (Leave)

우리 인생은 계주다. 우리는 이 믿음의 스토리를 전달해 주기 위해 이 땅에 남겨져 있다. 이 생명의 스토리를 다음세대에게 넘겨주지 못한 채 그라운드를 떠난다면 우리 경주는 실격이다. 가정은 하늘 나라의 대사관이다. 하늘을 비치는 거울이다.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심을 수평적으로 수직적으로 전달하는 증거 기관이다. 우리 자신이 바른 가정을 세우는 것, 우리 자녀들이 바른 가정을 세우도록 준비시키는 것이 우리의 가장 중요한 사역의 전략이어야 한다.

/글=한국복음주의협의회 제공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한국복음주의협의회 #양승헌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