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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5 (월)

"3.1운동과 한국교회의 과제"

기독일보 기독일보편집국 기자 (press@cdaily.co.kr)

입력 2019. 03. 12 06:50  |  수정 2019. 03. 12 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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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복음주의협의회 3월 월례회, 3.1운동, 임시정부, 그리고 기독교를 주제로 박명수 교수 발표 전문

한국복음주의협의회 3월 발표회
박명수 서울신학대 교수 ©기독일보 노형구 기자

3.1운동과 국제정세
올해는 널리 알려진 대로 3.1운동 100주년, 임시정부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우리는 3.1운동이 일어나는 과정에서 우리 기독교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사실 3.1운동은 제 1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사회가 개편되는 과정에서 일어난 운동입니다. 미국의 윌슨대통령이 민족자결주의를 내세웠고, 이것을 제일 먼저 알고, 여기에 제일 먼저 반응한 것이 바로 미국 교포들이었습니다.

1910년 한일병합 이후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을 보면 국제정세에 따라서 그 내용이 달라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러시아를 의지해서 독립운동을 하려고 했습니다. 1907년 이상설이 네델란드 헤이그에 간 것은 바로 러시아 황제가 도와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러시아는 다음에 일본과 관계를 회복했고, 제 1차 세계대전 때는 일본과 같이 연합국에 속했습니다.

그 다음 우리나라는 중국에 의지해서 독립운동을 하려고 했습니다. 당시 중국의 실권자는 원세개였습니다. 원세개는 오래 동안 조선에 있던 사람입니다. 제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일본은 독일과 전쟁을 선포하고, 독일이 갖고 있던 중국 산동반도를 차지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니 이제 중국과 일본이 싸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원세개는 일본과 싸우지 않았고, 얼마가지 않아서 죽고 말았습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이 제 1차 세계대전에 개입하게 되었고, 결국 이것은 연합국의 승리로 끝나게 되었습니다. 미국이 세계의 중심국가로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누가 독립운동의 주역이 될 수 있습니까? 그것은 미국의 교포들입니다. 미국 대통령 윌슨이 민족자결주의를 말했을 때 이것을 제일 먼저 안 사람들이 바로 미국의 교포들이었습니다.

우리가 1919년 3월 1일 독립만세를 부른 이유는 무엇입니까? 나라가 있어야 한다는 것 아닙니까? 세계를 향하여 우리가 독립국이라는 것을 외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당시 파리에서 열리는 연합국에게 알리고자 한 것입니다. 독립국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정부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민족과 국가는 다릅니다. 정부가 없어도 민족은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가 없으면 국가를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독립만세를 부른 다음에 생각한 것은 정부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3.1운동 직후 정부를 세우는 운동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임시정부의 형성과정과 기독교
 3/1운동의 뿌리는 누구입니까? 미국의 교포들입니다. 이들은 국제정세를 알고 있었고, 따라서 제일먼저 여기에 반응을 했습니다. 이 단체가 대한인국민회입니다. 그런데 이 단체는 일찍이 임시정부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대한제국이 망했을 때, 미국에 있는 우리 교포들은 이제 과거에 연연하지 말고, 새로운 국가를 세우자, 그리고 새로운 국가는 전재국가가 아니라 민주국가여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런 새로운 국가에 대한 꿈이 미국의 교포들을 중심으로 강하게 일어났습니다.

그러면 미국 민주주의의 뿌리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기독교입니다. 기독교는 하나님 앞에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동양에서는 天子는 한 사람 뿐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에는 모든 사람이 다 같이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이것이 민주주의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민주주의와 기독교는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을 합하여 기독교민주주의라고 합니다. 1919년 4월 7일, 이승만은 연합통신 기자에게 새로운 국가는 예수교국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1919년 4월 중순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한인대회가 열렸는데, 그 결의문이 우리는 기독교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기를 원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임시정부는 어디에서 만들어 졌습니까? 그것은 중국 상해입니다. 3.1운동이 일어난 것은 서울입니다. 그래서 서울에서 임시정부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박해 때문에 임시정부가 유지될 수 없습니다. 당시 해외에서 한국 사람들이 어디에서 가장 많이 살고 있습니까? 러시아입니다. 그래서 그곳에서 정부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이곳에도 일본세력이 강했습니다. 그래서 정부가 유지되기 힘들었습니다. 일부에서는 미국 워싱턴에 임시정부를 만들자는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 멉니다. 결국 국내에서도 가깝고, 일본의 박해도 피하면서, 미국과도 연락하기 좋은 장소가 어디입니까? 그곳은 바로 상해입니다. 그래서 상해에 임시정부가 세워진 것입니다.

그러면 상해에는 누가 있었습니까? 여기에는 기독교인 청년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신한청년당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다 같이 상해한인교회의 신자들이었습니다. 신한청년당 창립멤버 가운데 두 사람이 전도사(여운형, 선우혁), 한사람이 회계집사(한진교), 한사람은 새신자(김철), 정덕수, 조동호등 모두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당시 각처에도 몰려드는 사람들과 함께 임시정부를 만든 것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한국에서 온 현순목사였습니다. 현순은 서울에서 33인이 파송한 사람입니다. 현순과 이들이 임시정부를 만드는 작업을 한 것입니다. 이들의 꿈은 무엇이었습니까? 당시 기독교인이었던 여운형은 임시정부가 기독교, 민주주의, 그리고 개인의 권리를 강조하는 정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임시정부의 헌법과 기독교
 새로운 나라가 어떤 나라가 되어야 하는가 하는 것은 새로운 나라의 지도자가 누구인가와 그 다음에 새로운 나라의 헌법이 무엇인가를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1919년 4월 11일 만들어진 나라의 국무총리(당시에는 최고 지도자)는 바로 이승만박사였습니다. 이승만은 이미 1918년 대한인국민회에서 민족대표로 선출되었습니다. 내무총장은 안창호, 외무총장은 김규식이었습니다. 안창호는 나중에 미국교포들의 헌금을 가지고 임시정부 건물을 얻고, 월급을 주었습니다. 김규식은 파리에 가서 우리의 대표로 활동했습니다. 이들은 기독교인들입니다. 임시정부는 기독교가 주도하는 정부였습니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상해에서 만들어진 임시정부의 헌장의 내용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1919년 4월 11일에 만들어진 임시헌장은 전문, 10조, 선포문으로 되어 있습니다.

먼저 이 헌장에 나타난 기독교적 의미를 살펴봅시다. 첫째, 전문에 대한민국은 하나님과 인간의 뜻이 하나가 되어서 만들어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전문의 제일 처음에 나오는 문장이 “神人一致”라는 단어입니다. 이것은 신한민보는 6월 20일 신문에 하나님의 뜻으로 세워진 나라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둘째, 헌장 7조에 “大韓民國은 神의 意思에 依하야 建國한 精神을 世界에 發揮하며 進하야 人類의 文化及 平和에 貢獻하기 爲하야 國際聯盟에 加入함.” 여기에 의하면 대한민국은 하나님의 뜻으로 인류의 문화와 평화에 공헌하기 위해서 세워진 나라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대한민국은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택하신 나라라는 것입니다.

셋째, 선포문에 우리민족이 바로 “神의 國의 建設의 貴한 基礎이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앞으로 하나님이 건설하실 하나님의 나라의 건설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대한민국은 단지 지상의 한 국가가 아니라 앞으로 하나님이 세우실 우주의 하나님의 나라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대한민국의 헌법은 대한민국을 어떤 국가로 만들기를 원했을까요? 과거에는 국가를 세우려면 어떤 종교를 국교로 삼을 것인가를 정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근대사회에서는 국가를 세우려면 어떤 정치이념을 국가의 기본으로 삼을 것인가를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이데올로기는 국가의 성립의 필수요건입니다. 이것이 없이는 국가를 세울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어떤 나라를 모델로 삼아서 정부를 수립하려고 했을까요? 먼저 우리는 과거 전제정치로 돌아가고자 원하지는 않았습니다. 고종의 죽음은 슬픈 것이지만 죽은 자는 죽은 자로 장례식을 하도록 해야 합니다. 새로운 나라는 공화국으로 가야 합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두 종류의 공화국이 있습니다. 하나는 민주공화국이고, 다른 하나는 인민공화국입니다. 민주공화국은 이미 오래 동안 서양에서 실시되던 정치제도입니다. 독립협회 때부터 들어왔습니다. 인민공화국은 1917년 소련의 볼셰비키 혁명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의 지식인들은 볼셰비키 혁명이 진행되고 있는 것을 잘 알았습니다. 하지만 우리 민족이 택한 것은 인민공화국이 아닌 민주공화국입니다.

그래서 임시정부 헌장 제 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것은 2.8선언에서도 나오는 것입니다. 이 선언서의 제일 마지막 부분에는 우리나라가 독립된 다음에 “정의와 자유를 기초로 한 민주주의 선진국의 범(範)을 수(隨)하여 신국가를 건설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새로운 나라는 서구민주주의 국가를 따라 만들어 진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임시헌장을 기초한 조소앙은 1조에 “조선공화국은 북미합중국의 헌법을 모방하여 민주제도로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미국식민주주의를 따른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당시 세계는 미국이 지배하고 있었고, 우리나라는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질서를 이용하여 독립을 얻으려고 한 것입니다. 따라서 대한민국이 따르고자 하는 나라는 바로 미국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임시정부 헌법이 말하는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일까요? 몇 가지만 말하겠습니다. 첫째, 대한민국은 모든 국민이 주권을 가진 나라입니다. 여기에는 남녀, 귀천, 빈부의 차별이 없습니다. 이것은 정말로 혁명적인 생각입니다. 조선사회의 주권은 왕에게 있고, 그 다음에는 양반이 다스리는 나라입니다. 양반은 남자요 귀한 신분입니다. 여기에 여자와 상놈은 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유럽의 시민사회는 일정한 경제적인 능력이 있는 사람만 주권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공산주의에서는 노동자와 농민이 주권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대한민국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혁명적인 국가입니다. 당시 미국에도 여성들에게는 참정권을 주지 않았습니다. 일본도 일정한 세금을 내는 사람에게만 투표권을 주었습니다. 러시아에서는 인민계급만 국민입니다. 그런데 대한민국 헌법은 모든 국민이 차별이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둘째, 대한민국은 삼권분립이 이루어진 나라입니다. 삼권분립은 미국에서 만들어진 제도입니다. 미국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다시 왕제도가 부활되지 않을까’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권력을 분산시켜 놓았던 것입니다.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이 서로 견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공산주의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들은 인민위원회가 모든 것을 장악합니다. 그래서 권력의 분립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 대한민국에서도 삼권분립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셋째, 개인의 기본권이 제대로 보장된 나라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헌법은 신앙, 표현, 소유, 영업의 자유를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종교선택의 자유는 자유의 기본입니다. 표현의 자유를 부정하면 민주주의는 어렵습니다. 소유권을 부정하는 것은 개인의 가장 중요한 권리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영업의 자유는 시장경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형식의 민주주의가 어떤 민주주의입니까? 이것이 바로 자유민주주의인 것입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헌법은 미국의 헌법을 따라서 자유민주주의 헌법이었던 것입니다. 1945년 8월 말, 조소앙은 북경에 있는 미국 대사관을 찾아가서 우리는 지금까지 바로 이런 의회민주주의, 혹은 미국식민주주의를 위해 싸워왔다고 증언했습니다.

임시정부의 법통성과 기독교
 1919년 임시정부가 수립되었습니다. 이 정부는 자유민주주의 정부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갖고 국제사회에서 인정을 받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정작 미국에서는 윌슨이 물러나고, 새로운 대통령이 등장했습니다. 의회는 국제연맹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실망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민족에게 접근한 사람들이 바로 소련입니다. 이들은 미국을 믿지 말고, 소련을 의지하라고 했습니다. 소련은 극동피압박민족대회라는 것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약소민족의 지도자들을 초청해서 잔치를 벌이고, 막대한 자금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곳으로 몰려들었습니다. 대부분의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이제 소련의 공산주의를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 가운데 임시정부를 지킨 사람이 바로 김구선생입니다. 그는 이승만, 안창호, 그리고 조소앙과 같은 사람들과 함께 임시정부가 공산주의에 넘어가지 않도록 지킨 것입니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도움을 준 사람들이 기독교인들입니다. 중국에 있던 피치선교사, 상해한인교회의 한진교장로, 미국의 교포들이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1943년 김규식은 미주동포들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임시정부가 존재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만일 이 때 임시정부가 공산주의로 넘어갔더라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존재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성립과 기독교
 1945년 8월 15일 해방되었을 때, 우리나라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어떤 나라를 세울 것인가? 라는 것입니다. 사실 그 이전까지는 새로 세워지는 나라는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일본과 싸우고 있는 나라는 미국, 중국, 그리고 영국 등 민주주의 국가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해방 직후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소련이었습니다. 그러자 소련의 지원을 받는 공산주의자들이 갑자기 세력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8월 9일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인민위원회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 마음 속에는 우리의 정부는 임시정부입니다. 그래서 해방 후 3년 동안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하는 민주공화국을 세울 것인가? 아니면 인민위원회를 중심으로하는 인민공화국을 세울 것인가를 놓고 싸웠습니다. 그 결과 북한은 소련을 등에 업고, 인민위원회를 만들어서 인민공화국을 만들었습니다. 남한은 미국의 도움을 받아 삼권분립에 기초한 민주공화국을 만들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 기독교인들은 민주공화국을 만드는데 기여한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오래 동안 민주국가를 만들고자 꿈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공산주의가 기독교를 박해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적극적으로 나선 것입니다. 여기에서 월남 기독교인들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현재 한반도에는 두 개의 나라가 있습니다. 하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고, 다른 하나는 대한민국입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김일성의 빨치산 운동에 기초한 나라입니다. 이것은 인민의 공화국입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임시정부에 기초한 나라입니다. 이것은 민주공화국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이런 민주공화국을 만드는데 기여했습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을 때, 이것을 분명히 했습니다.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만들어진 임시정부에 기초해서 세워진 국가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밑바닥에는 기독교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1948년 5월 제헌국회는 기도로 시작했습니다. 이윤영목사가 대표기도를 했습니다. 1948년 7월 초대 대통령 취임식이 있었습니다. 이 때 이승만박사는 “하나님과 국민 앞에서 올바로 나라를 이끌어 가겠다”고 취임선서를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대한민국은 탄생한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1919년 임시정부의 선포문과 비슷합니다. 대한민국은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만들어진 나라이며, 그 사명은 인류의 문화와 평화를 증진시키는데 있고,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의 기초가 될 나라라는 것입니다.

/자료제공 = 한국복음주의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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