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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22 (화)

"한국교회 신뢰 추락, 오히려 교회성장 도움될 수도"

기독일보 홍은혜 기자 (press@cdaily.co.kr)

입력 2016. 06. 27 05:50  |  수정 2016. 06. 27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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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순교자의 소리, 벨라루스 드미트리 라주타 목사 초청 기자회견

왼쪽이 벨라루스의 드미트리 라주타(Dmitry Lazuta) 목사. 한국순교자의소리 공동대표 폴리 현숙 목사가 통역하고 있다.
왼쪽이 벨라루스의 드미트리 라주타(Dmitry Lazuta) 목사. 한국순교자의소리 공동대표 폴리 현숙 목사가 통역하고 있다. ©한국순교자의소리 제공

[기독일보 홍은혜 기자] 최근 한국순교자의소리(공동대표 에릭 폴리)가 벨라루스의 드미트리 라주타(Dmitry Lazuta)목사를 초청, 기자회견을 가졌다. 한국교회를 향한 대중적 위상이 계속적으로 실추되고 있는 가운데, 라주타 목사는 이런 상황이 사실은 교회가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로 한국 기독교인들을 격려하기 위해 방한했다. 다음은 그가 말한 "적대적인 세상에서 살아가는 법" 전문이다.

적대적인 세상에서 살아가는 법

언젠가 한 미국인 형제와 대화를 나누던 중에 전 마음 깊이 감동을 받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말해 그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그날 대화의 주제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형제의 이름을 알란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알란은 북미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 때문에 속상해 하고 있었습니다. 개신교 그리스도인들이 사람들에게 예전만큼 존경받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기 때문입니다. 영향력이 큰 신문사들은 이따금씩 개신교 그리스도인들이 매우 나쁜 '빛'을 비추고 있다는 식의 기사를 싣기도 했습니다. 알란 형제는 그냥 속상했던 것이 아니라 놀란 상태였습니다. 약간은 좌절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이런 상황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사실 그가 놀랐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습니다.

역사적인 관점에서 이 상황을 보자면, 비기독교인들이 기독교인들을 향해 갖는 적대감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아주 오래 전에 그리스도를 따랐던 사람들 역시 이런 좌절감을 느꼈습니다. 그들은 유대사람들과 같은 일부 종교 집단들로부터 공공연하게 핍박을 당했습니다. 그들 또한 사랑하는 미국인 형제가 물었던 것과 같은 의문을 갖고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겁니까? 그리스도께서 진정한 주님이시라면, 왜 우리가 핍박을 받아야 합니까?"

사도 베드로는 초기 기독교인들의 이러한 좌절감을 알고 있었고 이 문제, 즉 압제과 핍박의 문제를 알리기 위한 편지를 쓰는 데 시간을 쏟았습니다. 그의 편지를 볼 때, 저는 그가 두 가지 목적을 갖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그는 그리스도인들을 격려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둘째로, 그리스도와 그를 따르는 이들을 향해 아주 적대적인 사회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전략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편지의 목적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 계속 주 안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격려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고난 당하는 이유가 신학적 오류 때문이거나 잘못된 생활 방식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겠지만, 베드로는 이는 절대 그런 문제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세상에서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 받는 것은 당연한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베드로전서 4:12)

당신의 인생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로 인해 놀라지 마십시오. 당신이 경험하고 있는 일은 정상적인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대신해 당신을 핍박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사람들이 그리스도 대신에 당신을 비방하고 있다면 그것도 정상적인 상황입니다.

저는 초대교회가 베드로의 가르침을 훌륭히 잘 따랐다고 믿습니다. 초대교인들은 베드로의 권면을 이해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삶 가운데 적용했습니다. 그들은 억압과 박해의 시간에 그저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매우 효과적으로 전파했습니다. 이후 250년 만에, 그들은 로마 제국 내 아주 강력한 사회적 영향력을 지닌 자들이 되었습니다.

베드로전서의 가르침이 당신과 연관이 있을까요? 북한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연관이 있겠지요. 그러나 전 세계 많은 그리스도인들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러시아나 벨라루스, 그 밖에 다른 나라들에 살고 있는 우리와 관린이 있는 말씀인 것입니다.

저희 나라 사람들 대부분이 신실한 기독교인들을 광신도로 여깁니다. 함께 피를 나눠마시거나 집회에서 성적 유흥을 일삼는 그런 사람들 말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100% 모두 거짓입니다. 사람들은 삶을 헌신하는 기독교인들에 대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왜 이렇게 하는 것일까요?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에 대하여 사람들은 거짓말을 흘립니다. 왜 그들은 그렇게 할까요? 바로 그리스도께 했던 것을 우리에게도 똑같이 하는 것입니다.

저는 약 40년간을 기독교인으로 살아왔습니다. 교회가 박해 받던 바로 그 시절에 저는 세례를 받았습니다. 모임 중에 경찰이 들이닥쳐 '모임을 끝내고 여기서 다 나가!'하고 소리치던 때가 기억납니다. 우리 이름이 명단에 오르게 되었고, 우리는 법정에 소환되어 벌금형을 받았습니다. 하루는 우리 교회가 숲에서 모임을 갖던 중 경찰에게 발각되었습니다. 한 형제가 도망을 가기 시작했고 경찰은 총을 꺼내 그를 쐈습니다. 총알은 그의 폐를 관통했습니다.

저의 경험으로 비추어 볼 때, 극심한 박해는 교회가 성장하기에 가장 좋은 때라고 할 순 없습니다. 제자훈련 하기에도, 전도하기에도 좋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성숙하는 데 있어 완전한 자유가 꼭 좋은 것만도 아닙니다.

저는 공산주의 몰락 이후 완전한 자유를 맞이했던 때를 기억합니다. 우리가 합법적인 교회로 인정 받았을 때였습니다. 우리는 스스로가 아주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리고 그 때, 영리한 지도자들 다수는 복음을 전하는 대신 정치적 행보를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제게도 접근해서 정치를 해보라고 여러 번 권했습니다. 저의 지도력과 소통의 기술을 치켜 세우면서 밝은 정치적 미래를 보장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런 자유의 시간이 빨리 끝나게 하신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교회를 위한 가장 적절한 때는 자유와 핍박의 중간, 즉 압제의 시간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지금 그런 때에 살고 있습니다. 교회가 공식적으로 승인을 받기란 쉽지 않습니다. 장소를 대여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가능은 하지만 어렵다는 말입니다. 여전히 사람들은 삶을 헌신하는 기독교인들이 광신도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봅니다. 그러나 아마 이런 때가 교회를 위한 적절한 시간일 것입니다. 이러한 시간이 우리로 하여금 현실에 안주하지 않도록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영적으로 깨어 있도록 만들어 줍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기독교인으로 살면서, 저는 많은 거절을 경험했습니다. 벨라루스에선 우리가 복음대로 살아가는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학사 학위도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공산주의 시절, 이웃들은 우리에게 그리 친절하지 않았고 우리는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시간이 지난 뒤, 그들은 KGB라는 특수비밀경찰 조직이 우리를 감시하도록 시켰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KGB는 누가 우리를 방문하는지를 알고 싶어했고, 이웃들에게 우리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퍼뜨렸습니다. 우리가 국가의 적이라고 말입니다.

모두에게서 거부 당했던 그 시절 우리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된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우리가 사람들로부터 거절 당했을지라도 하나님께는 선택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특별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특별하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겸손한 정통주의란 말을 좋아합니다. 저는 우리 교회와 교회 개척 운동에서 겸손한 정통주의의 개념을 가르칩니다. 저는 가끔씩 복음대로 살아가는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이 옳다고 여길 때 화를 내는 것을 보곤 합니다. 그러면 저는 생각합니다. 자신이 옳다면 화를 내야 하는 걸까?

저는 삶 가운데 개인적으로 두 가지 실수를 범했습니다. 저는 정부를 존중했어야 함에도 그러지않았습니다. 경찰이 우리 집회를 저지하러 왔을 때, 저는 우리가 그들에 대해 겸손히 행동하지 않았던 것을 기억합니다. 우리는 그들과 싸우진 않았지만, 겸손하지도 않았습니다. 때로 우린 그들에게 무례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것에 대해 잘못했다고 생각합니다.

간혹 저는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거나 저와 언쟁을 벌인 사람들을 존중하지 않았습니다. 때론 그들에게 짜증을 내기도 했습니다. 왜 당신은 그렇게 멍청하게도 하나님을 믿지 않는 거죠? 저는 그랬던 것을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의로움으로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분노로도 그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단지 우리의 사랑을 통해서만 그들을 주님께 인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들을 겸손하게 섬김으로써 그들은 주께 돌아올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초대교회의 전략은 무엇이었을까요? 담대함, 일관된 겸손, 교회와 그 밖에 있는 사람들을 서로 사랑하는 것으로써 그들은 그리스도를 알렸습니다. 그들은 정치에 참여하지도 않았고, 다른 종류의 문화적 충돌에도 관여하지 않은 듯 하지만,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선교에는 깊이 참여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성공했습니다. 그들은 그 나라를 변화시켰고 어떤 관점으로 보자면 온 세상을 바꾼 것입니다.

우리는 초대 교인들이 했던 것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처럼 성공하진 않았지만, 우리는최선을 다해 노력 중입니다.

정치와 관련해서, 우리는 어떤 말도 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정부에 반하는 어떤 발언을 할 경우, 우리 교회는 그 즉시 문을 닫게 될 것입니다. 문화적 문제에 대해서도, 우리는 문화적 충돌에 관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교회를 개척함으로써 복음을 전하는 데 온 힘을 쏟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한 조사 결과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조사는 복음을 전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새 교회를 세우는 것이란 사실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25년 전 일이었습니다. 여러 사람들과 새로운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그 당시, 우리에겐 아무 것도없었습니다. 우리에겐 건물도 없었습니다. 우리 중 누구도 학사 학위 하나 없었습니다. 우리 나라 정부가 우리 같은 사람들이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허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학 학위를 가진 사람도 전혀 없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등록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진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믿음의 영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그리스도께 올 수 있도록 우리를 사용하고 계신다고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용하셨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방 네 개짜리 작은 집을 샀었는데, 교회가 성장하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한 벽을 허물고, 그 후엔 또 다른 벽을 차례로 허물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건물 전체를 허물었습니다. 우리는 예배를 한 번 드리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다른 예배 시간을 만들고 또 다른 예배도 더 드리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예배 시간을 추가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우리는 새 교회를 개척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교회로부터 우리는 네 개의 새로운 교회를 더 세우게 되었습니다. 그 후, 우리는 영감을 받아 13개 이상의 교회가 벨라루스 주변에 세워지는 것을 도왔습니다. 현재 우리는 러시아에서 새 교회를 개척하는 이들을 도우려고 합니다.

한 가지 이야기를 더 나누겠습니다. 3달 전, 한 남자가 제게 면담을 요청했습니다. 그는 제 사무실에 왔고, 그를 만났을 때 저는 그가 우리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다가 1년 후 돌연 사라졌던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12년 전 KGB 요원이 자신에게 접근해서 우리 교회에 참석하여 세례를 받고 우리를 염탐하라고 요구했던 사실을 털어놓았습니다. 그 당시, 우리는 벨라루스에서 가장 급격히 성장하고 있는 교회 중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KGB가 우리를 살펴보기로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내는 그대로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제가 그에게 세례를 베풀던 그 순간 어떤 특별한 일이 자신에게 일어났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그 경험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염탐하고 있던 그가 떠났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후 12년 동안 그는 세 명의 가족을 잃었고, 이제 망가진 사람이 되어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삶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는 복음을 좇아 살아가는 교회의 일원이 되고 싶어 어느 교회 목사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놨습니다. 다른 도시의 그 목사는 이 남자를 제게 돌려보냈습니다. 우리는 두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리고 최근 저는 그에게서 긴 문자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제가 그리스도 안에서 마음의 평안을 찾았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어요. 당신은 제 첫 교회였습니다. 당신에 대해 거짓말을 했던 것 또한 미안합니다. 저는 정말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교회가 당신의 교회처럼 사랑과 지혜 가운데 있다면, 누구도 당신에 대해 나쁘게 말하지 않으리란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리스도 안에서 깊은 사랑을 전하며, 드미트리 형제가.'

그의 문자 메시지를 보면서, 저는 베드로가 그의 서신에 쓴 말들이 생각났습니다.

15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이것이 바로 베드로와 초대교회의 전략이었습니다.

/한국 순교자의 소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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