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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6 (월)

[출애굽기 특강] 이선규 목사 "영광을 체험한자" (출34:1-35)

기독일보 편집부 기자 (press@cdaily.co.kr)

입력 2018. 04. 02 16:48  |  수정 2018. 04. 02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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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규 목사
▲이선규 목사(대림다문화센터 대표ㅣ대림중국교포교회 담임)

본문은 모세가 시내 산에서 처음 받은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두 번째 받는 장 면에서 시작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처음 것과 같은 두 돌 판을 준비하게 하셨습니다. 모세는 시내 산에서 사십 주야를 있으면서 우상숭배 금지에 관한 명령과 반드시 지켜야 할 것과 절기 계명들을 하나님께 받게 됩니다. 그리고 돌 판에 새겨진 계명을 받게 됩니다.

첫 번째 돌 판이 깨어진 것은 백성들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돌판은 깨뜨리지 않고 거룩한 법궤 속에 안치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첫 사람 아담이 깨뜨린 하나님의 법을 마지막 아담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예표로 보 여 주신 것입니다.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 라고 하셨습니다. (마5:17-18) 예수님은 사람들이 이루지 못한 율법을 온전히 이루러 오셨습니다.

아담이 율법의 대표이라고 하면 예수님께서는 의의 대표자가 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두 번째 율법은 깨어 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또한 율법 판을 법궤 속에 넣어둔 것은 (산 6:19)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공의와 사랑이 공존하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1,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가자.

“은혜라는 단어는 우리의 심령에 진정한 평안을 줍니다. 비록 법궤 속에 공 포의 율법이 들어 있을지라도 ‘속죄 소 ’위에 피가 있으면 우리의 심령은 진정한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속죄소를 시은 좌 (施恩佐)라고 하는데 말 그대로 은혜를 베푸시는 보좌라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이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가기를 원하는 이유는(히4:16)율법의 정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의 거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고 그들의 단들을 헐고 그들의 주상을 깨드릴 것을 명령 하셨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 기브온 족속들의 속임수에 속아 그들과 언 약을 체결함으로 두고, 두고 이스라엘의 올무가 되었던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가나안 땅의 거민들은 우리의 본성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무엇 보다 먼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놓인 죄와 허물의 장벽을 제거하는 일이 가 장 시급 합니다.

그러나 이 일은 우리 인간이 해결 할 수 없기에 예수께서 인간의 죄와 허물을 제 거 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던 것입니다.

2, 광채 난 얼굴

오늘 본문을 보면 십계명을 받기 위해서 시내 산에서 사십 주야를 금식하며 하나님과 함께 있었던 모세의 얼굴에 광채가 났다고 기록 되어 있습니다.

모세가 40일 동안 하나님과 교제하는 동안 하나님의 영광이 모세에게 전달되어진 것입니다.

모세에게 40년 동안 지치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향해가는 길에 지도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영광의 체험이 있었기 때문 입니다. 모세가 주와 함께 사십일 밤을 그곳에 있었으나 빵도 먹지 않고 물도 마 시지 않았더라.28절)가 증명 합니다

모세는 지고하신분의 은밀하신 곳에서 전능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였습니다.

대 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곳에서 영광을 찾으려고 합니다.

영광이 무엇인지 알고자 하는 자에게는 영광을 얻을 수 있는 곳으로 가야합니다. 여러분은 어디에서 영광의 광채를 누리기를 원하십니까? 모세는 영광을 얻은 자 였습니다. 그는 용사들과 정치가들과 문인들 사이에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엇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영광은 곧 사라질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디에서 영광을 구하시고계십니까?

만일 참된 영광을 구한다면 ‘담대하게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하면 우리 주님께서 주시는 영광을 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요17:22) 주님께 주신 영광을 우리도 누리게 되어 질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성령의 감동으로 이를 가리켜 ‘그리스도의 영광의 광채 (고후4:4)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약에도 광채가 있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약 시대는 수건으로 가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수건이 주님이 오심으로 벗어 졌다는 말씀입니다.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 서 없어질 것이라 (고후 3:14)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 부터 감취 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다 (골 1:260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까지도 구약을 읽을 때에

아직도 유대인의 ,안목으로 그 수건이 오히려 벗어지지 않고 있어서 참 그리스도를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지듯 (행 9:18)‘내 눈을 열어서 주의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 (시119:18) 하고 간구해야 할 것입니다.

3, 가려진 영광

모세가 산에서 내려 올 때에 얼굴에 광채가 났는데 그 광채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이 세상 피조물의 빛과 다릅니다. 성소에는 등대 불빛이 있지만 지성소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친히 임재 하였기 때문에 빛이 필요 없습니다. (출40:34-35)

백성들은 모세의 얼굴에서 나는 광채를 보고 두려워하여 나중에 수건으로 가렸습니다. 그런데 그 광채는 속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얼굴 꺼풀에 나타났던 것입니다. 율법의 영광도 영광 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율법도 선하고 거룩하기 때문입니다.

율법이 선하고 거룩하다는 뜻은 죄인들이 율법을 통해서 죄를 알고 예수님의 은 혜를 깨닫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롬 5:20) 그러나 불행하게도 오늘날 까지 유대인들은 그 가려진 영광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과 마찬 가지로 진리가 아닌 다른 교훈이나 인본주의 사상이나 인간의 유전 등이 마음에 덮혀 있으면 결코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에 이르지 못합니다.

모세의 얼굴에 발한 광채는 없어질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는 그림자로 주어 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된 우 리에게 주어진 영광은 영원히 없어지지 아니 할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 하십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 타 나지 아니 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 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요 3:2)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광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고후 3:18) 현재의 영광에서 미래의 영광으로 그리스도께서 재림 하실 때 영광의 모습을 (*고전15:51-52)

말 하였습니다. 또한 약한 본성의 사람은 보다 강한 본성의 사람의 방식이나 사물을 보는 관점, 분위기나 체질, 심지어는 얼굴 모습까지도 마침내 서로 담게 되는 법입니다. 예를 들면 강한 본성의 사람은 보다 약한 본성을 닮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들은 성령 안에서 새롭게 되는 것은 이 신비스러운 성령의 역사에 의한 것입니다.

사실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되는 것은 이 신비스러운 성령의 역사에 의한 것입니다.

해가지면 황금의 영광이 언덕에서 사라지듯이 사라질 것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무리바 물가에서 하나님께 범죄 하였기 때문에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지도 못 하였을 뿐 아니라 비스가산에서 외로이 죽음을 맞이해야만 했습니다.(신 32:48-52)

하나님의 빛 가운데로 걷는 사람들은 때대로 세속적인 신자들의 눈에는 가리워져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심오한 영적인 것들에 대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바울은 “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고후 12:4)라고 영적 체험을 간증 하였습니다. 이러한 영광의 체험이 있을 때 우리는 이 세상의 시험과 환란을 능히 이기고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감당 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승리하며 살아가느냐? 아니면 전전긍긍 하며 힘들게 살아가느냐 하는 것은 바로 이 영광의 체험이 얼마나 하였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이 영광의 주인공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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