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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22 (일)

[출애굽기 특강] 이선규 목사 "마라의 길목에서" (출15:22-27절)

기독일보 편집부 기자 (press@cdaily.co.kr)

입력 2017. 09. 22 09:20  |  수정 2017. 09. 22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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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연합교회 목요 기도회 설교

이선규 목사
▲이선규 목사(대림다문화센터 대표ㅣ대림중국교포교회 담임)

언제인가 처음으로 교회를 나온 초신자 가정에 심방을 가게 되었습니다. 예배를 마친 후 한 교우가 예수 믿기로 작정하고 교회를 나왔더니 가정에 우환이 오고 시련이 오는데 안 믿어도 좋을 것을 괜히 믿은 것 같더라는 생각을 했었노라는 말을 했습니다.

이에 예수를 믿기 시작하면 어려움도 올 수 있다는 말을 하면서 시험이 오더라도 참고 끝까지 신앙생활 잘 하라는 당부의 말을 하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신자의 가정에 우환이 있고 생활이 순조롭지 못할 때 신앙에 까지 타격을 입는 경우를 종종 경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러 할 때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하는 지를 오늘의 말씀에서 교훈을 받으며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우리 인생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마라의 쓴 물과 같은 곳을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는 광야와도 같습니다.

광야와 같은 세상에 살 동안 언제나 달콤하고 형통한 날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슬픈 일 ,괴로운 일도 만날 수 있습니다.

전도서 3장에 보면 우리가 살 동안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을 병행 시키셨다고 하였습니다.

이 모든 때를 주장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라고 하였습니다.

쓴 고통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위로와 은총을 체험케 하는 하나님의 역사인 것입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 날 때에는 누구나 울음으로 태어납니다.

왜 울까요? 어떤 철학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죽음과 함께 태어나는 인생이기에 그 울음소리는 축복의 소리가 아니라 어둠과 비탄에 찬 목소리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육지같이 건넌 감격이 채 가시지 않은 때 물 없는 사막을 지나가게 됩니다.

그들이 물 없는 곳을 헤매 이다가 웅덩이를 만났지만 안타깝게도 그 물은 쓴물 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흘 길을 행 하였으나 물을 발견하지 못하고 물을 발견 했을 때 써서 먹지 못할 때 그 괴로움이 어떠했겠습니까?

사람이 살아 갈 때에 제일 기본적이고 필요한 것이 물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 기본적인 것조차 제공하여 주지 못하는 것이고 또 준다고 하여도 그것 은 쓰디쓴 괴로움 뿐 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고 소원하고 찾는 것이 만족을 주고 기쁨을 줄 것으로 알았지만 사실은 실망뿐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는 곳은 어디든 마라의 쓴 괴로움이 있습니다.

영육간의 진정한 행복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둘째 우리 신앙인은 이러한 쓴물을 만날 때 어떠한 자세를 취해야 합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원망으로 시작하여 원망으로 마치다 결국 광야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왜 원망 하였을까요? 24절 본문 15:1-11절에서 하나님을 찬양 하던 그들 이 이제 모세에게 원망을 합니다.

왜 그들은 원망을 했습니까? 첫째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린 것이고 둘째는 현실만 보았기 때문이고 또한 백성들이 조급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앞으로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도록 훈련과 교육을 시키려고 마라로 인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조금만 기다려 보면 알 수 있는데 원망부터 하게 되는 것입니다. 디모데 후서3:4절 말씀에 보면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의 마음이 조급하여 진다고 했습니다 절제하지 못하고 사나우며 팔며 원통함을 가진다고 했습니다.

조금하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어떤 처지에 놓이더라도 내가 하려하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너희 행사를 다 여호와께 맡기라(잠언 55:22). 본문 25절에 백성들이 원망하고 있을 때 모세는 백성의 원망 소리를 들으면서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모세는 나무 가지를 물에 던지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그대로 물에 던졌더니 쓴물이 단물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쓴물이 단물로 바뀌는 것은 인간의 지혜나 사람의 힘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주님과 함께 걷는 삶은 언제나 쉽습니다. 나의 힘으로가 아니라 주님의 힘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를 자세히 보면 왜 하나님이 인도 하시는 길이 이처럼 어렵고 힘든 길입니까? 의심 할 만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 하시기를 이 길이 가장 지름길 이라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먹을 것이 다 떨어 졌을 때도 물이 나오지 않을 때에라도 하나님께서는 해결의 길을 마련해 놓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도 하신 길이라면 어떠한 경우라도 하나님이 해결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마라는 곧 고통과 고난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아 선지자도 쑥과 담즙 같은 쓴 고난을 체험 하였습니다.

이러한 쓴 경험을 한다 할 찌라도 마라를 극복하는 것이 더 필요 합니다.

원망은 문제를 얽히게 하는 요소 이지만 기도는 문제를 푸는 열쇠입니다.

원망은 저주와 징계의 조건이 되지만 기도는 용서와 축복의 요소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시 하신 십자가는 우리가 당하는 고난이 너무 심 할 때 그야말로 해결할 엄두 도 못 내고 속수무책이라면 기도 밖에는 아무것도 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지시한 나무를 던졌습니다.

아무 나무나 던진 다고 물이 고쳐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지시하신 나무를 던졌기 때문에 고쳐진 것입니다.

성경학자들은 장차 그리스도의 나무를 상징 한다고 말합니다. 내가 고침 받고 단물처럼 맛있는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십자가를 던져야 합니다.

십자가 외에는 다른 묘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지시하신 십자가는 우리의 죄와 고난과 질병 까지 고치는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셋째 마라를 극복한 후에 엘림의 축복이 기다립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는 마라만 항상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마라에서 쓴 물을 단물로 고쳐 마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100KM를 행진 하였습니다.

엘림 이란 곳에 진을 쳤습니다. 그곳에는 종려나무 70주나 우거져 있었습니다.

이곳에는 시원하게 솟아나는 샘이 열 두 개 나 있었습니다.

정말로 사막에서 샘이 솟아나고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하나님께서 준비하여 두신 축복의 샘이었습니다.

거기서 물을 실컷 마시고 짐승까지 마시게 했습니다. 그들은 물 곁에다 장막을 쳤습니다.

숲속의 그들은 거기서 하나님의 사랑과 행복을 만끽 하였습니다.

이런 것을 가리켜 고진 감내라고 합니다. 곤 고가 있으면 언제까지 계속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마라가 있으면 언제까지나 마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음에는 반드시 단물이 솟구쳐 나오는 엘림이 있기 마련입니다.

지금 마라와 같은 쓴물과 고난과 역경 중에 신음하는 분이 있습니까? 그러나 조금만 참고 가면 엘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엘림에 종려나무 70주가 있었다는 것은 번성의 상징이요 승리의 상징이요 거룩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걷는 인생길은 마라 같은 고통이 있습니다. 쓴 맛 같은 인생이 있고 쓴 결핍과 빈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고통과 근심과 절망 할 때도 있습니다. 질병도 죽음의 슬픔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 같이 원망은 하지 마십시다.

마라의 고통을 겪는 사람 일수록 엘림의 축복이 더 크고 값지고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마라의 고통의 사건이 있을수록 더 참고 엘림을 향하여 전진해 나아가는 여러분들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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