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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5 (토)

[출애굽기 강해] 이선규 목사 "언약궤의 의미와 떡 상이 주는 교훈" (출25:23-30)

기독일보 편집부 기자 (press@cdaily.co.kr)

입력 2018. 01. 02 07:01  |  수정 2018. 01. 02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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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규 목사
▲이선규 목사(대림다문화센터 대표ㅣ대림중국교포교회 담임)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생활 40년은 성막을 중심으로 하는 생활이었습니다. 어느 곳에서든 행진이 멈출 때는 성막을 중심으로 진을 쳤고 다시 행진 할 때는 역시 성막이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12지파가 무리를 지어 움직였습니다.

그 성막은 하나님이 임재 하시는 곳이었고 백성들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장소였습니다. 그 성막의 문은 동쪽으로 나있습니다.

그 동쪽으로 들어가면 먼저 번제단이 나오고 이어서 물두멍이 있고 물두멍을 지나면 성소 성소를 지나 지성소가 나오는데 바로 그 지성소에 언약궤가 안치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성소에는 오른편에 떡 상이 놓여있고 금 촛, 대가 있습니다.

그리고 맞은편에는 향단이 위치합니다. 이들 세 가지 떡 상과 금 촛대와 분향 단은 우리성도들이 반드시 지녀야 할 신앙생활의 세 가지 요소가 담겨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 법궤에 대해 좀 더 말씀 드리겠습니다.

법궤는 언제든지 이동 할 수 있도록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결코 하나님의 영원한 집이 아니며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나그네임을 보여 주기 위함입니다.

이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궤를 메고 올라가려 하여 몸을 성결케 하고 모세가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명한대로 레위 자손이 채로 하나님의 궤를 어께에 메니라 (역대상15:2)

그런데 다윗에 의해 언약궤를 메던 중 어께에 메야 할 법궤를 손에 잡아 옴 기려다가 웃사가 즉사 당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삼하6:6-7) 그 후로 다윗은 법궤를 어께에 메게 하여 하나님의 징계를 피할 수 있었고 드디어 찬송과 영광을 돌린 일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 육신의 편리함을 도모하다가 받는 징계의 그림자입니다.

광야의 법궤는 가나안 땅에 솔로몬의 성전이 건축되고 그 안에 안치 될 때까지 이스라엘과 함께 했습니다.

마찬 가지로 오늘의 교회는 광야교회 (행7:38)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 어디에도 안주 할 곳이 없습니다.

이 세상은 잠시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은 것(고후4:16-18)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영원한 도성인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법궤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이동한 것 처럼 성도들이 저 하늘나라에 안주하는 그날까지 하나님께서는 우리들과 함께 하시며 보호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나의 갈길 다 가도록 예수인도 하시니 내주 안에 있는 긍휼 어찌 의심하리요” 라는 찬송을 우리는 자신 있게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1. 생명의 떡 상

12개의 떡은 12지파를 의미 하며 이것은 생명의 떡인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에게 허락하신 약속을 그대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약속은 오늘날 영적 이스라엘인 우리에게도 동등하게 주어 졌습니다.

이 두 약속은 동일 하지만 차이점이 있다면 구약에 약속된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초림 예수에 대한 약속이며 우리에게 주어진 약속은 온 인류를 심판 하실 재림 예수에 대한 약속이라는 것입니다.

‘너희 가운데 하늘로 올리 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행1:11)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주의 약속을 의지하고 그의 재림을 기대 하십시오. 그분은 자신의 약속대로 기필코 다시 오실 것이며 여러분의 마음속에 살아 역사 하실 것입니다.

요단강을 건널 대에도 12지파의 12명의 대표들이 법궤를 메었습니다. (수4:7) 이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궤를 메고 올라가려 하여 몸을 성결케 하고 모세가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명한대로 레위 자손이 채로 하나님의 궤를 꿰어 어께에 메니라 (역대상15:2)

그런데 다윗에 의해 법궤를 메던 중 어께에 메야 할 법궤를 손에 잡아 옴 기려다가 웃사가 즉사 당하는 불행한 일도일어 났습니다. (삼하6:6-7) 그 후로 다윗은 법궤를 어께에 메게 하여 하나님의 징계는 멈추었으며 찬송과 영광을 돌린 일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 육신의 편리함을 도모하다가 받는 징계의 그림자 입니다.

우리는 그 분의 말씀을 멘 제사장들로서 이 세상의 영혼들을 구원하시는 증인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광야의 법궤는 가나안 땅에 솔로몬의 성전이 건축되고 그 안에 안치 될 때까지 광야를 날마다 이동 했습니다 마찬 가지로 오늘의 교회는 광야 교회 (행7:38)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 어디에도 안주 할 곳이 없습니다.

2. 떡의 용도

상 위에는 두 줄로 6개씩 12개의 떡이 놓여있습니다.

이 떡은 아래 위를 잘 구운 떡입니다.

뒤 집어 주며 잘 구워야만 합니다. 호세아서 7:8절 에서는 뒤집지 않은 떡이란 말이 나옵니다.

그릇된 신앙의 길로 들어선 백성들을 나무라는 말씀입니다.

겉은 바짝 구워진 성도의 모습인데 뒤집어 보면 옛 생활 그대로 이고 옛 풍습과 삶은 그대로 지닌 채로 구워지지 않은 이중적인 성도를 의미 하는 것입니다. 상은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을 말씀 하는데 시편 23편 5절에는 ‘주께서 내게 상을 베푸시며’ 하신 말씀과 사무엘상 9:12절에는 므비보셋 (요 나다단의 아들)와 다윗은 ‘왕자 중 한 사람’처럼 왕의 상에서 함께 먹으라고 하였습니다.

상은 교제와 나눔을 의미 합니다 서로가 마주 않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상입니다.

이스라엘 제사장들을 대신하여 이 성소의 상에서 하나님과 깊은 교제와 사랑을 나누었습니다. 여기 떡은 예수님 자신을 가리킨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요한복음 6장 48절에서는 내가 곧 생명의 떡 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리고 떡은 말씀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성소의 떡 상에 진설된 떡은 예수님을 나타내주는 동시에 성도들이 날마다 양식으로 삼아야 할 말씀이기도 합니다.

이 생명의 떡 되신 예수님은 유대인들에 의해 내박쳐 버린바 셨습니다.

그러나 부스러기라도 감사 하게 받고자 하는 헬라 여인과 같은 (막7:27) 우리들이 바로 그 생명의 떡을 먹고 우리가 살게 되었습니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10:10)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요일 5:12) 이제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풍성한 생명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3. 떡의 사용 목적

떡은 고운 가루로 만들어야 하고 떡의 제조 방법은 불에 구워 만들도록 했습니다. (호4:5)

이것은 주님이 당하신 극한 고통과 고난을 의미 합니다. 주님은 결코 죄가 없으나 모든 인류의 죄를 담당하여 십자가의 처절한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그는 여호와의 뜨겁게 달아 오른 진노의 솥 속에서 구워졌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시련이 주님을 변화 시 키거나 상하게 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러한 시련은 주님을 온 인류의 구세주로 승화 시켰으며 영원한 생명의 떡으로 만들어 주었을 뿐 입니다 이처럼 성도들 역시 하나님께 제공되는 떡이 되기 위해서는 불과 같은 시련을 통과 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불의 시련이 닥칠 때 자신의 교만과 오만함으로 인해 잘 구워지지 않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시련이 닥칠 때 우리는 자신의 심령을 살피고 완악함과 교만함을 깨뜨리고 다음과 같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여 내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 하시고 내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시51:10) 라고 말입니다

떡 상은 반드시 꼭 떡을 진설 하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만약 떡이 없는 빈상은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 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말씀이 없는 교회는 죽은 교회입니다 성도들은 목회자의 입을 통해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먹고 사는 것입니다 하지만 목회자는 성도들의 기도를 먹고사는 것입니다.

오늘 날에는 생명의 떡인 하나님의 말씀이 기근을 당하고 있습니다. 세상 문학이나 철학이나 예화는 풍성한데 참 영혼을 살찌우고 배불리는 생명의 꼴인 하나님의 말씀이 심히 부족한 기근의 때라는 것입니다. (아모스8:11절) 이하에 보면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 찌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라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갈함이라 바로 교회는 이 생명의 떡을 바로 충분 하게 공급하는 사명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교회라는 간판만 붙였다고 다 참된 교회가 아니고 생명의 떡을 충분히 공급하는 교회가 참 교회인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떡은 항상 신선 합니다 그것을 받아먹는 자로 하여금 항상 새로운 맛을 나게 하며 풍 성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가 주님으로 부터 받은 떡은 생명의 떡이며 항상 새로운 충만감을 느끼게 하는 떡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전하는 떡은 지루하고 진부한 떡으로 변합니까? 그것은 우리가 새로워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원인은 수자원에서는 항상 맑고 신선한 물은 보내지만 수도관이 부식되었기 때문에 소비자는 오염된 물을 마시는 것과 같습니다.

진설병은 고운 가루로 만들어 졌습니다. 고운 가루가 되기 위해서는 완전히 부수듯이 우리는 우리의 모 든 것을 부숴야만 합니다. 욕심도 부수고 정욕도, 악한 행실도 부수어야 합니다.

이러한 완전한 복종은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며 오직 주 예수님만 자랑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역시 자신을 비어 온전히 종의 형체를 가지셨습니다. (빌 2:7) 그렇다면 그 은혜로 사는 우리가 비우지 못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나 자신을 깨뜨리지 못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이 시간 내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무엇인지 헤아려 보면서 나를 하나님께 어떻게 드릴 것인지 자신을 돌아보는 여러분들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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