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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7 (일)

[창조신학칼럼] 식물에게도 영성이 있는가?

기독일보 편집부 기자 (press@cdaily.co.kr)

입력 2017. 11. 25 03:05  |  수정 2017. 11. 25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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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덕영 박사(창조신학연구소 소장)
▲조덕영 박사(창조신학연구소 소장)

식물은 동물 못지않게 그 종류가 다양하다. 식물 종의 다양성은 어쩌면 오히려 동물을 훨씬 능가한다 할 수 있다. 동물과 달리 식물은 접붙이기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생명이 우연한 존재라면 이들 식물도 생명체이므로 동물이나 사람과 유사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미 텍사스 주에 있는 에이 엔 엠 대학의 딜론(L.S.Dillon) 교수는 과거 “사람은 동물이 아니고 식물이다”라고 참으로 엉뚱한 주장을 한 적이 있는 데, 사람의 염색체 수가 동물과 달리 일부 식물과 오히려 유사하다는 점이 그렇게 오해를 불러 올 수 있다. 생명이라는 면에서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인간이 식물에 가깝다는 이 같은 주장은 진화론자들 사이에서도 검증된 이론은 물론 아니다. 그런데 식물도 광합성을 하는 데 필요한 빛에 포함되어 있는 정보를 기억하고 대응한다는 학설이 나왔다고 BBC가 인터넷 판에 보도한 적이 있다.

폴란드 바르샤바 생명대학의 스타니슬라우 카르핀스키 교수 연구팀은 프라하에서 열린 실험생물학회 연례 총회에서 식물들이 빛의 강도와 질을 잎에서 잎으로 전달하는 메카니즘은 인간의 신경조직과 흡사하다고 주장했다. 한 잎이 빛을 흡수하면서 생성된 '전기-화학 신호'는 식물에서 신경조직 역할을 하는 세포들에 의해 전달되어 식물 전체가 반응을 한다는 것이다. 잎에서 빛을 받으면서 시작된 화학작용은 주위가 어두워진 후에도 계속되는 데, 이것을 근거로 식물이 빛에 숨겨져 있는 암호를 기억하고 있다는 이론을 제시했다. 카르핀스키 교수는 "식물 아래 부분에 제한적으로 빛을 비췄을 때, 윗부분에서 화학작용이 진행되는 것을 확인했으며 빛을 제거했는 데도 반응은 계속됐다"면서 이는 뜻밖의 발견이었다고 했다. 이를 근거로 한 잎 세포에서 화학적 반응이 발생하면 일련의 연쇄반응이 일어나고 '뭉치엽초 세포'를 통해 식물 전체로 전달된다는 이론을 확립했다. 빛의 색깔에 따라 잎의 반응이 다르다는 점도 밝혀냈고, 식물의 면역 기능도 조사했다. 카르핀스키 교수는 "식물은 각기 다른 절기에 빛의 질을 분석, 각 절기에 따라 나타나는 질병에 대한 면역체계를 갖추게 된다"는 설명이다.

영국 리즈대학의 크리스틴 포이어 교수는 "이번 연구는 우리 사고를 일보 전진하게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평가하고 "식물도 가뭄, 혹한 등 스트레스를 극복하고 생존해야 하는 만큼 상황을 판단하고 대응하는 지능이 필요하다는 것을 확인한 연구"라고 했다. 포이어 교수는 "식물에서 전기신호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빨라 강렬한 빛에는 식물 전체가 즉각적으로 반응한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 이번연구의 주요 업적이라 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필자는 이들의 주장을 마치 식물이 사람과 유사한 사유 기능을 가진다고 보는 것은 조심해야 된다고 본다. 성경은 생물학에 있어서의 생물의 분류 체계와는 달리 동물과 식물을 좀더 명확히 구분하고 있다. 성경에서 말하는 생물학적인 생명은 네페쉬(nephesh, 헬라어 프쉬케, 우리 성경에 혼으로 번역된 단어)를 소유하는 것으로 표현되는데, 이 단어는 구약에서 영혼을 뜻하는 단어로 때로는 생명으로 번역되기도 하고 문맥에 따라서 성경 가운데 100개 가 넘는 다양한 단어로 번역되어 있다. 노아 홍수 당시 육지에 있어 코로 생물의 기식을 호흡하는 것은 다 죽었더라(창 6:22)고 한 말씀은 바로 이 네페쉬를 소유한 생물의 멸망을 표현한 것이다.

이 네페쉬는 하등 동물이나 식물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사람과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 모든 푸른 풀을 식물로 주셨다고(창1:29-30) 하신 의미는 바로 네페쉬를 소유한 생물과 그렇지 않은 식물 사이에는 구분이 존재함을 말해준다.

사람은 그 중에서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만드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했다(창2:7). 네페쉬를 소유한 생물 가운데서도 사람은 영적인 존재로 분명히 다르게 창조하셨음을 알려주고 있다. 진화론자들은 식물도 동물과 한 뿌리의 조상으로부터 진화하였다고 주장하지만 이렇게 성경은 동물과 식물을 분명하게 구별하고 있다. 이것을 통하여 볼 때 ,식물에게도 정령이 존재한다는 등 식물도 영적 존재라고 주장하는 일부 신비주의자들의 주장은 성경적이라 볼 수 없다.

동물과 식물의 구별에 관하여는 여러 가지 이론이 많지만 성경적으로 보면 식물은 동물들처럼 혼이나 영을 소유하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창1:29-30). 성경은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다(창 9:3-6,레 17:11)고 했다. 식물은 생명을 뜻하는 피를 소유하지 못했다. 물론 식물체에 존재하는 물관, 체관 등의 통도 요소에 있는 체액을 동물의 피에 비유하여 이견을 제시하는 사람도 일부 있다. 그리고 단순한 무척추 동물의 경우도 흔적만 남아있는 순환계를 가지고 있으므로 성경적인 의미의 생명을 나타내는 피를 가지지 못한다고 할 수도 있다. 이런 쉽지 않은 문제들은 좀 더 연구되어야 하겠지만 분명한 것은, 성경은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말하는 동물과 식물 사이에 명확한 구별을 하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생명에 있어 이와 같이 구별된 위치에 관하여 성경 레위기 19장 19절은 네 육축을 다른 종류와 교합시키지 말며 네 밭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러한 지혜를 깨달은 랍비들은 말과 나귀를 다른 종류로 간주하여 교배를 금지하였다. 잡종 노새를 만들지 않은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이 질서의 하나님이심을 말해주는 구절이다.

식물도 생명인 것은 분명하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지구라는 단일 환경 가운데서 살아가야하는 모든 생물에게 동일한 사랑의 배려를 하셨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성경은 창세기 1장부터 사람과 동물과 식물을 분명 뚜렷하게 구분한다.

식물이 정말 영성을 가졌을까? 이것을 증거하려는 시도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일부 크리스천 과학자들도 관심과 호기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식물이 영성을 가졌다기 보다는 '네페쉬'는 없으나 하나님이 주신 생명으로서의 독특한 정보력(식물 특유의 질서와 조화)은 가졌다고 보는 것이 타당한 성경적 해석이라고 본다. 앞으로 더욱 많은 연구가 거듭되겠지만 하나님의 창조 섭리가 피조물인 우리 사람이 생각하는 일반적 논리와 때론 다르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사 55: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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