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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5 (월)

"정치의 변화보다 한 개인의 의식 변화가 실질적으로 사회 윤리 증진시켜"

기독일보 노형구 기자 (press@cdaily.co.kr)

입력 2019. 03. 07 07:20  |  수정 2019. 03. 07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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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혁명 이후 새 생활 운동의 주역들, 한 자리에 모여 대담

서울대 문리대 새생활 운동 4인방
(왼쪽부터) 김상복 목사, 손봉호 교수, 김명혁 목사, 이형기 교수 ©기독일보 노형구 기자

[기독일보 노형구 기자] 4.19 운동 이후 새 생활 운동의 주역들이 6일 강변교회에서 오후 2시에 모였다. 당시 서울대 문리대 4인방이었던, 손봉호 전 서울대 교수, 김명혁 전 합신대 교수, 김상복 할렐루야 교회 원로 목사, 이형기 전 장신대 교수가 모여 새 생활 운동을 회고했다. 원로들의 말에 의하면, 4.19 혁명 이후 장면 내각으로 정권이 교체 됐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던 국민들의 윤리의식 때문에 새 생활 운동이 시작됐다고 한다.

먼저 김명혁 전 강변교회 원로는 “새 생활 운동은 4.19 운동의 여파로 일어난 운동”이라며 첫 말을 뗐다. 이어 그는 “4.19 운동 이후에도 여전히 사회 전반에 정치적·도덕적 부패가 만연했다”며 “카바레에는 유부녀들이 자유연애·불륜을 위해 춤추러 다녔고, 다방에서 마시던 커피의 100%는 모두 밀수품 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또 그는 “당시 담배 중 95%가 양담배, 5%가 아리랑 국산 담배일 정도로, 밀수가 횡행했다”고 덧붙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당시 에너지 상황도 좋지 않았는데, 민간인들은 불법 밀수 휘발유로 군대 지프차를 개조해 타고 다녔다”고 밝혔다.

게다가 그는 “4.19 혁명으로 정권은 바뀌었지만, 정치인들은 여전히 부패하고 사회는 여전히 무질서했다”며 “다방에는 밀수 커피와 양담배를 피우고, 곳곳 댄스홀에는 유부남녀들이 부둥켜안고 춤을 추었다”고 재차 전했다.

하여, 그는 새 생활 운동의 취지가 “나라가 진일보하기 위해서, 정치의 전환보다 사람들의 의식과 생각의 변화가 일어나야 함”에서 비롯했다고 밝혔다. 김명혁 목사에 의하면, 당시 합류했던 손봉호 전 서울대 교수가 “재무부에 가서 따져 물었더니 커피, 양담배 밀 입수 비용이 대전시 인구 1년 치 식량에 준했다”고 밝혔다. 이들이 문제 삼은 이유가 여기 있는 것이다.

이에 김명혁 목사는 “다방, 극장 등을 다니며 양담배, 밀수 커피 마실 때가 아니라고 항변했다”며 “당시 사람들은 적극 지지를 표명하며, 밀수 커피와 담배를 우리에게 줬다”고 밝혔다. 이윽고 그는 “양담배를 모아 광화문 광장에 산더미처럼 쌓아두고 불태워 버렸다”고 역설했다. 게다가 그는 “우리 4인방은 서울 문리대 학생들에게 호소해, 이런 운동을 규합해 갔다”며 “급기야 이런 새 생활 운동은 다른 대학들에게도 파급돼 갔다”고 전했다.

서울대 문리대 새생활 운동 4인방
김명혁 강변교회 원로목사 ©기독일보 노형구 기자

이를 놓고, 그는 “우리 새 생활 운동은 정치적 야심도 품지 않았고, 파괴를 자행하지도 않았다”며 “이 운동의 뿌리는 순수 기독교 윤리 정신에 있었다”고 술회했다. 특히 그는 “분노와 증오를 품는 인권 운동, 민주화는 자기와 다른 사람들에게 깊은 상처를 줄 수 있다”며 “긍휼과 자비가 없는 운동은 아무 소용없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그는 오늘날 젊은 세대들에게 쓴 소리를 던지며, “정의와 공의에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며 “이 무관심이 정당화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해서, 그는 “사회·윤리 향상을 위해 분노와 증오가 아닌, 긍휼과 자비에 기초한 순수 기독교 윤리 운동을 펼칠 것”을 당부했다.

당시 새 생활 운동에 참여했던 4인방 중 한 명인 이형기 전 장신대 교수도 발언을 이어갔다. 그는 “우리가 벌였던 운동은 최근 일어난 촛불 시위, 4.19혁명, 5.18민주 항쟁과 다르다”며 “순수 기독교적 동기에서 나온 운동”이라고 강조했다. 또 그는 “사람들의 의식을 순수 기독교 윤리가 담지 하는 방향으로 변화시켜, ‘새 생활’로 이끌고 싶었다”고 역설했다.

특히 그는 “새 생활 운동은 비기독교인 들도 참여하는 등, 보편적 가치와 공명해 확산됐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기독 시민사회 운동이 일반 시민들도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가치를 제시해 가는 것”을 당부하며, 가령 “생명 운동, 정의, 평화 등 시민사회운동 섹터와 연대해, 함께 아파하고 동시에 사회 윤리 향상에 앞장서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런 면에서, 그는 “새 생활운동은 단순 기독교적 특수가치에 국한되는 게 아닌, 비기독교 학생들의 가치와 상응했다”고 회고했다.

서울대 문리대 새생활 운동 4인방
이형기 전 장신대 교수 ©기독일보 노형구 기자

그렇다면 이형기 교수가 말하는 기독교 윤리와 일반윤리 사이의 접촉점은 무얼까? 그는 “바로 사랑”이라며 “새 생활 운동에 있어 많은 비 기독교인들도 참여했던 중요한 접촉점 이었다”고 회상했다. 이 지점에서 그는 “이웃사랑과 갈라디아서 5장에 나온 8가지 성령의 열매는 일반윤리와 중첩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결국 그는 “모든 종교들의 공동 관심사인 ‘생명’, ‘환경’, ‘땅의 분배 정의’ 등 공동선의 차원에서 좋은 세상 곧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가는 일로 확장돼야 한다”고 역설하며, “새 생활 운동은 어쩌면 그런 가능성을 배태한 첫 출발 아니었을까”라고 평가했다.

나아가 그는 “바울은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를 희망하는 가운데, 지금 여기서 그 나라의 현존을 성령 안에서 경험했다”며 “이런 ‘하나님 나라’라는 종말론적 비전에 걸 맞는 삶을 살라고 그는 권면했다”고 덧붙였다. 다만, 그는 “새 생활 운동은 이상과 같은 신앙에 근거한 종말론적 비전을 향했어야 했다”며, “새로운 신학적 정의가 부여돼 진전되지 못한 결과"로 끝난 걸 안타까워했다.

손봉호 전 서울대 교수도 발언을 이어갔다. 그는 “시민사회는 결국 보상을 바라지 않은 시민들의 자발성에 의해 추동된다”고 전했다. 또 그는 “한국은 특별히 시민사회가 활발한 국가”라며 “어쩌면 3.1운동이 지금까지 뿌리내려, 시민사회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고 전했다. 바로 “3.1운동은 기독교인들의 의해 주도 됐다”는 점에서, 손 교수는 “당시 새 생활 운동도 4.19 혁명 이후에도, 여전히 부패했던 시민 윤리를 촉진시키고자 했던 기독교적 시민운동이 아니었을까”라고 술회했다.

“독재 정권에 대한 반대”로서 4.19 혁명과 차이를 설명하며, 그는 “새 생활 운동은 정부가 올바른 시민 윤리를 위해, 나아가야 할 지침을 제시했다”는 점을 평가했다. 바꿔 말해, 그는 “4.19 혁명은 권력을 가진 정부를 감시하는 ‘반대’ 운동인 반면, 새 생활 운동은 정부가 올바로 나아가도록 ‘긍정’하는 운동이었다”고 설명했다.

서울대 문리대 새생활 운동 4인방
손봉호 전 서울대 교수 ©기독일보 노형구 기자

특히 그는 “오늘날 한국 교회는 상당히 후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그는 “한국 교회가 적극 사회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며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건, 오직 교회 성장에만 몰두했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게다가 그는 “새 생활 운동은 당시 반공주의, 사회주의와 무관하게 사회 윤리 개선에 앞장섰다”고 술회하면서, “지금 사회 참여에 있어 교회는 이념에 매몰된 측면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그는 “이념이 성경의 자리를 대신 차지했다”면서 “이념이 앞세워진 교회의 사회참여는 결국 한계”라고 비판했다.

끝으로 김상복 할렐루야 교회 원로 목사가 발언했다. 그는 “4.19 정권이 바뀌어도 시민들의 도덕의식은 여전히 타락했던 실상을 보았다”며 “그저 정권이 바뀌고 장관이 교체되는 것으로, 4.19 혁명 때 무고한 학생들의 희생이 끝나는 것인가”라고 되물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당시 우리는 국민이 바닥에서부터 의식과 생활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4.19 혁명 및 학생들의 희생은 그저 헛것일 뿐”이라는 당시 생각을 밝혔다.

하여, 그는 “우리를 포함한 8명의 순수 기독교 학생들은 당시 실태 조사를 벌였다”고 술회했다. 가령 실태조사 결과, 그는 “고위 공직자들은 뇌물수수가 당연했고, 당시 쉬운 뇌물은 바로 양담배였다”고 밝혔다. 심지어 그는 “신문기자, 경찰, 교통순경, 소방서까지 부패는 끝이 없었다”고 덧붙였다.

재차, 김상복 목사는 앞서 “유흥 장소, 댄스홀, 카바레, 요정들 또한 자유부인들의 외도가 많았다”는 사실을 인용했다. 그에 의하면, 이 장소들은 또한 정치인들이 모여 유흥을 하던 장소였다. 때문에 그는 “우리를 포함한 서울대 문리대 학생들은 가난하던 시대에 떵떵거리며, 호의호식하던 정치인들에 분노했다”며 “해서 4.19혁명에도 우리 사회는 또 다른 운동이 필요함을 느꼈다”며 당시 새 생활 운동의 취지를 밝혔다.

이런 새 생활 운동으로 인해, 그는 “당시 장면 총리는 신문 인터뷰에서, ‘새 생활 운동을 정책 표본으로 삼고 싶다’고 했다”며 “당시 국회의장도 ‘새 생활 운동을 입법화하고 싶음’을 밝혔다”고 술회했다.

서울대 문리대 새생활 운동 4인방
김상복 할렐루야 교회 원로 목사 ©기독일보 노형구 기자

기자 질의 응답시간이 이어졌다. 한 교계 기자는 “4.19 혁명이 이후에, 여전히 부정부패가 있었던 이유”를 물었다. 이에 김명혁 강변교회 원로목사는 “정치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며 “정치나 대통령의 변화와 우리 도덕·윤리의 개선은 무관함을 그 때 목도했다”고 전했다.

김상복 할렐루야 원로 목사도 “당시 60년대와 지금을 비교하면, 한국 사회 전반 곧 교육, 스포츠, 예술, 경제, 기술 등은 진보했다”며 “그러나 여전히 정치인들의 부정부패가 횡행하고, 나아가 윤리와 도덕은 변화가 없다”고 지적했다. 하여, 그는 “사람 내면에 변화가 없다면 이런 기술 진보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꼬집었다. 결국 그는 “한국 사회는 구조 변화도 중요하지만, 개인 윤리 특히 정직함의 회복이 급선무”라며 “예수 복음만이 개인을 변화시켜, 변화된 한 사람으로 사회 윤리는 향상될 것”이라 역설했다.

추가로 한 교계 기자는 “젊은이들이 이런 새 생활 운동을 계승해, 오늘날 한국 사회 현안을 개혁할 새로운 운동”에 대한 조언을 물었다.

이에 손봉호 교수는 “우리나라를 후진국으로 만드는 건 실상 부정직”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그는 “부정직 문제가 개선된다면 우리나라는 선진국 반열에 올라설 것”이라며 “도산 안창호 선생은 일제 강탈의 첫 째 원인을 거짓말로 뽑았다”고 전했다. 때문에 그는 “적어도 기독교가 3.1정신의 중심이었다면, 기독교는 정직함을 회복하는 정신”이라며 “3.1정신을 이어받아 한 개인의 정직함이 회복되는 새로운 운동이 펼쳐졌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또 이형기 교수도 “새 생활 운동이 당시 개인윤리에 매몰된 측면도 있었다”며 “기독교인들의 개인윤리 곧 성화에 매몰되지 않고, 기독교 윤리를 사회 공동선 기여로 확장시켰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그는 “생명, 땅, 환경 특히 미세먼지 해결에 있어 새로운 하나님 나라 운동으로 확장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김명혁 목사는 “나의 이기심을 부정하고, 주변 이웃을 돌봐 희생하는 운동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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