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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3 (목)

[이효상 기고] 한국교회 미래를 위한 보수와 진보의 역할

기독일보 조은식 기자 (press@cdaily.co.kr)

입력 2018. 04. 24 15:04  |  수정 2018. 04. 24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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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상 미래목회포럼 사무총장
▲이효상 목사(교회건강연구원장)

한국에 개신교 복음이 전해진지 134년이 되었다. 그 동안 한국교회는 한국역사와 함께 영욕을 경험해 왔다. 한국교회는 한국사회의 개화와 근대화에 중요한 역할을 했는가 하면 일제 치하에서 일제의 식민정책에 순응하는 오점을 남기기도 했다. 사회변동의 주체로서 예언자적 사명을 감당했는가 하면 체제에 순응하면서 변화의 걸림돌이 되기도 했다.

현재의 한국교회는 양적으로는 성장이 멈춰버렸고 최근에는 쇠퇴의 조짐이 드러나고 있고, 질적으로는 사회적 공신력과 신뢰감을 상실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한국교회에 대한 객관적이고 반성적인 평가가 절실히 요청되고 있다.

한국교회는 선교 초기에 한국사회의 근대화 혹은 개화에 중심적인 역할을 함으로 사회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한편으로는 기독교 사회운동의 형태로 사회적 변형을 주도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신앙 부흥운동의 형태로 개인들의 심리적 회심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일제 치하에서는 일제의 식민정책에 일부가 동화되어 신앙적 순수성과 사회적 책임성을 상실하는 불운을 겪음으로 걸림돌이 되기도 하였다.

해방을 맞이하고서도 한동안 한국교회는 교회적으로는 내적인 교파분열과 갈등으로, 사회적으로는 독재정권을 비호함으로 사회발전에 기여하지 못했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한국교회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보수그룹은 새로운 신앙운동, 부흥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함으로 교회는 오랜 군부독재 체제 아래서의 불안과 공포, 그리고 급격한 산업화 과정에서 파생된 박탈감과 소외감의 문제를 종교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이것은 사회치유와 통합의 역할이라 할 수 있다.

한편 같은 기간동안 진보그룹은 정치적 민주화, 경제적 평등화, 사회적 복지화, 문화적 성숙화, 창조 환경의 보존 이라는 시대적 역할을 수행함으로 한국사회의 발전에 크게 공헌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대부분의 교회가 개인의 영혼구원과 양적인 교회성장에만 지나치게 집착하면서, 그리고 많은 교회가 인적, 물적, 시설 자원에 있어서 점점 풍요로워지면서 사회적 책임을 점차 외면하게 되었고, 이것은 사회적 신뢰도를 크게 떨어뜨렸다. 그리하여 오늘날 한국교회는 교회성장의 둔화, 사회적 공신력의 약화라는 양적, 질적 위기를 초래하게 되었다.

한국사회는 놀랍게 발전해 왔다. 특히 1960년대 이후의 산업화 과정은 눈부신 사회발전을 가져왔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파생된 수많은 사회문제들에 대하여 한국교회가 어느 정도 수준이고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해야 하는지 주목하게 된다.

한국교회는 이제 앞으로 10년을 내다보며 새로운 시대적, 사회적 과제에 눈을 돌려야 한다. 한국교회의 보수와 진보가 모두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발전에 크게 기여했던 자랑스러운 전통을 회복해야 한다.

현재 보수그룹에는 한기총, 한기연(구,한교연), 한교총 등이 있고, 진보그룹에는 교회협이 있으나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2007년 평양대부흥 100주년을 전후로 ‘한지붕 두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만드는 기구 ‘통합’의 최고 기회였다. 명분이 절정을 이루었고 한기총과 교회협의 통합논의가 양측의 합의하에 정관과 단체명을 만들었다. 그러나 일부의 ‘제 밥그릇 챙기기’의 벽에 가로막혀 결국 통합의 문앞에서 깨어져 10년을 허송세월하다 한기총은 분열 하며 보수그룹은 그새 두서너개로 늘어났다. 그래서인지 ‘연합기관’의 정체성이나 성격규명과 더불어 정책적 방향성을 제시하지 하지 못하다보니 때론 극우나 극좌로 치우쳐 한국교회의 보편적 가치나 상식에 반하는 일들을 아무 거리낌없이 하곤 한다. ‘연합’기관이라고 해도 자기 업무가 뮌지도, 자기 책임이 뮌지도 모르는데 기인한다. 종로 5가 바닥에서 전직 총회장, 총무라고 명함들고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은 많은데 정작 브레인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알 수 없다. 정신 똑바르게 차린 열사람만 있어도 이 지경까진 오지 않았을 것이다. 존재감 제로, 거의 투명기관이다.

한기총과 한교총 등 연합기관의 통합논의가 또 다시 시작됐다. 기구통합, 좋다. 합의서에 사인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양측이 상호 공감대를 형성하는 기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책적으로 우리는 어떤 기관을 만들고자 하는가? 하는 ‘정체성’과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는 무엇인가? 하는 ‘방향성’, 그리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하는 ‘사역성’, 이 세가지에 대한 공통분모는 진지하게 논의하고 가야 한다.

또 혹 서로 다른 기관으로 간다 하더라도 한국교회가 부딪히는 아젠다에 대해 정책적 연대 혹은 협의는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기능도 마비된 것으로 보인다. 기관은 많은데 어느 기관도 그런 기능, 제 구실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남과 북도 대화의 테이블로 나오는 상황에서 이렇게 긴박하게 돌아가는데 한국교회내 보수그룹과 진보그룹은 언제까지 각자도생 할 것인가? 그리고 한국사회와 한국교회의 미래를 위하여 머리를 맞대고 정책협의를 하는 자리는 요원한 것일까?

지금이 상대의 다름을 이해하고 보수와 진보가 상생의 길을 모색할 때다. 그래야 미래사회에 한국교회의 새로운 역할이 기대될 수 있다. 무엇보다 과학기술문명이 가져올 수 있는 생명파괴와 환경파괴의 문제, 정보화 시대에 생겨날 수 있는 통제와 비인간화의 문제, 점 점 더 벌어지는 양극화의 문제, 민족주의의 강화로 인한 국제적 갈등의 문제,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로 인한 공동체성 파괴의 문제, 맘모니즘에 빠져드는 도덕성 붕괴의 문제, 통일시대 복음통일의 문제 등 여러 가지 현안이 쌓여 있다.

한국교회는 이제 새로운 변신을 통해 사회발전을 위해 요구되는 사회적 역할을 감당할 수 있도록 정책협의의 장을 마련하는데 상호 노력해야 한다. 이것은 미래에 한국교회가 생존할 수 있는 길이며, 교회가 그 본질과 목회생태계를 회복하는 데로 나가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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