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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8 (수)

[이슬람 전문칼럼] 꾸란은 왜 아랍어로 기록되었을까

기독일보 편집부 기자 (press@cdaily.co.kr)

입력 2017. 05. 15 00:40  |  수정 2017. 05. 15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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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란인교회 이만석 선교사

한국이란인교회 이만석 목사

무슬림 학자들은 “기독교 유대교인들의 신구약 성경이 변질 타락했기 때문에 하늘에 있는 원본을 가지고 내려온 것이 꾸란이라”고 주장한다. 성경은 원본을 모두 분실하고 번역 과정에서 그 의미가 심각하게 왜곡됐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계시된 꾸란만이 지금까지, 계시될 때의 원본 그대로, 일점일획이라도 첨삭되지 않고 보존되고 있는 진짜 성서라고 주장한다.

그들이 무엇이라고 주장하는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사실이 무엇이냐가 가장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타끼야(Taqiya)라는 편리한 교리가 있어서 자신들에게 유익이 된다면 얼마든지 거짓말을 지어낼 수가 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그럴듯한 거짓말을 만들면 다른 사람이 그것을 인용하고 또 재인용하면서 그것이 무슬림들 사이에서 정설이 되고 진리처럼 되고 마는 것이다.

본 글에서 인용한 꾸란 내용이 한글로 출판 보급된 꾸란과 다른 이유는 미화된 것을 원문 아랍어의 의미대로 수정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한글 꾸란에서 “하나님”이라고 번역해 놓은 것은 원문대로 “알라”로 번역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꾸란의 ‘알라’와는 전혀 다른 신이기 때문이다. 무슬림학자들이 한글로 번역해 놓은 것은 가능한 한 고치지 않고 그대로 보존하되 심각하게 왜곡된 것은 바로잡지 않을 수 없었던 점을 양해해 주기 바란다.

이 글의 목적은 무슬림들의 경전을 인용하여 꾸란이 왜 아랍어로 기록되었는지 이유를 밝히려 하는 것이다. 이는 무슬림들을 공격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오히려 무슬림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진실을 깨닫고 진리로 돌아오게 하기 위한 것이다.

1. 알라는 각 민족마다 선지자를 일으키셨다

알라는 각 민족에 선지자를 보내어 알라를 섬기되 우상을 피하라 하였으니 그들 중 알라께서 인도한 자 있었으며 그들 가운데 방황케 하신 자도 있었으니 대지 위를 여행하며 진리를 부정하는 이들의 말로가 어떠했는가를 보라.(꾸란16:36)

이 구절을 보면 알라는 각 민족마다 선지자들을 보냈다고 한다. 그러나 선지자가 없는 민족도 많다는 것을 생각할 때 이는 꾸란의 주장의 신뢰도를 의심케 한다.

2. 무함마드 이전에는 아랍 조상 중에 선지자가 없었다

그대는 선지자들 가운데 한 선지자로 옳은 길을 가는 자라. 그것은 권능과 자비로 충만하신 알라께서 내리신 계시로써 이는 그들의 선조들이 경고 받지 아니한 백성들에게 그대로 하여금 경고케 하고자 함이라. 그러나 그들은 주의하지 않았노라.(꾸란36:2-6)

여기서 선조들이 경고 받지 않았던 백성에게 무함마드를 보냈다고 한다. 이는 꾸란의 다른 구절들에도 많이 나타난다.

알라는 그들에게 그들이 읽을 성서를 주지 아니했고 그대 이전에 그들에게 경고자를 보내지도 아니했노라.(꾸란34:44)

혹은 그가 그것을 날조하였다고 그들이 말할지 모르나 그러나 그것은 그대 주님으로부터의 계시된 진리이며 이는 그대 이전에 어떠한 경고자도 오지 아니한 백성에게 그대로 하여금 경고하여 그들이 인도 받도록 함이라.(꾸란32:3)

무슬림들은 이스마엘이 아랍 선지자라고 주장하지만 꾸란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무함마드 이전에 아랍권에는 어떤 선지자도 보낸 일이 없다고 꾸란의 여러 구절이 증거하고 있다.

3. 꾸란은 아랍인들만을 위한 것이다

아래 꾸란 구절을 보면 꾸란은 아랍인들만을 위한 책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듯 알라는 그대에게 아랍어로 꾸란을 계시하나니 이로 하여 그대가 어머니의 도시의 주민들과 그 주변의 모든 백성들에게 경고하고 일부는 천국에 있게 될 것이요 일부는 타오르는 불지옥에 있게 될 의심할 바 없는 그 날을 경고하라(꾸란42:7 최영길역)

최영길 역을 읽어보면 아랍어로 꾸란을 계시했으니 그것으로 메카(어머니의 도시)와 주변의 모든 백성 즉 온 세상 사람들에게 경고하라는 뜻으로 풀이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백성”이라는 말은 꾸란 아랍어 원문에는 없는 말이다. 꾸란 아랍어 원문에 “옴마 알꾸라(omma alqura)”는 어머니의 도시 즉 메카를 가리키는 말이며 “와만 하울라하(waman hawlaha)”는 “그 주변 사람들”이라는 말이다. 즉 메카와 그 주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꾸란을 아랍어로 계시 한다는 것이다. 이 구절을 정직하게 번역한다면 아래와 같다.

이렇듯 알라는 그대가 어머니의 도시의 주민들과 그 주변 사람들에게 경고하도록 하기 위해서 아랍어로 꾸란을 계시하나니 일부는 천국에 있게 될 것이요 일부는 타오르는 불지옥에 있게될 의심할 바 없는 그 날을 경고하라.(꾸란42:7)

알라는 처음으로 아랍인들에게도 경고자를 보내기로 하고 무함마드를 택했다는 것이다. 메카와 그 주변 사람들은 아랍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경고하기 위해서는 아랍어로 말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꾸란을 아랍어로 계시한 목적은 메카와 주변 사람들에게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아랍어로 경고하기 위해서 라고 말하는 것이 정직한 해석일 것이다. 그러나 어떤 꾸란 학자도 이 구절을 그렇게 정직하게 해석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

아직도 분명하지 않다면 더 분명하게 말하는 구절도 있다.

하나님이 꾸란을 아랍어로 계시하사 너희는 깨달을 것이라(꾸란12:2 최영길 역)

그러나 이것도 번역자가 의도적으로 미화시킨 오역이다.

영어 번역본을 보자. Indeed, We have sent it down as an Arabic Qur'an that you might understand. 즉 너희가 이해할 수 있도록 그것을 아랍어 꾸란으로 내려 보냈다는 말이다. 아랍어를 사용하는 아랍인들을 제외하고 누가 그것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꾸란의 아랍인들에게만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 꾸란의 솔직한 내용이다.

4. 꾸란을 아랍인들에게만 보낸 이유

꾸란의 아래 내용을 보면 아랍인들에게 꾸란을 보낸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즉 기독교인들에게는 신약 성경이 있고 유대인들에게는 구약 성경이 있는데 아랍인들에게는 왜 성경을 안 보내주셨느냐는 아랍인들의 불만을 해소시켜 주기 위해서 아랍어로 경전을 보내주셨다고 설명하는 장면이다.

이것은 알라의 축복으로 계시한 성서이거늘 이것을 따르라 그리고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은혜를 받으리라. 그 성서는 우리 이전 두 백성에게만 계시되었으니 우리는 실로 그들이 읽은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도다라고 말하지 아니하도록 함이라.(꾸란6:156-156)

이전 두 백성이란 기독교인과 유대교인들을 말하는 것이라고 꾸란의 모든 주석이 인정한다. 영어권에서 가장 인기 있는 꾸란 번역인 무신 칸(Muhsin Khan) 번역본은 본문에 괄호를 삽입하여 이전의 두 백성은 기독교인과 유대교인들이라고 번역해 이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니까 아랍 사람들이 왜 기독교 유대교인들에게는 경전을 내려주시고 우리에게는 안 내려 주셨냐고 불평하니 이를 해소시켜 주시기 위해서 아랍어로 경전을 내려주셨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꾸란은 오직 아랍인들을 위한 책이라는 것을 여기서도 확인해 볼 수 있다.

5. 꾸란은 성경이 진리라는 것을 확증한다고?

꾸란은 신구약 성경이 진리라는 것을 확증하는 책이라는 것은 어떤 학자의 사견이 아니라 꾸란 자체의 증언이다. 꾸란의 여러 곳에서 그런 증언은 이어진다.

알라는 구약과 신약을 내리셨고 앞서 온 것을 진리로 확증하면서 그대에게 그 책을 계시하노라(꾸란3:3)

이것 이전에 모세의 성서가 안내서로써 그리고 은혜로 있었으며 아랍어로 된 이 성서가 그것을 확증하며 죄인들에게 경고하고 의로운 자들에게는 기쁨의 복음을 전하고 있노라(꾸란46:12)

6. 꾸란은 성경의 핵심을 부정한다

꾸란이 신구약 성경을 확증하는 책이라면서 성경의 핵심을 부인하고 있다. 만일 꾸란이 정말 신구약 성경이 진리라는 것을 확증하는 책이라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보혈로 인류를 구원하러 오신 분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데 실제로 그렇지 않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마리아의 아들이며 알라의 선지자의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살해하였다라고 그들이 주장하더라 그러나 그들은 그를 살해하지 아니하였고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했으며 그와 같은 형상을 만들었을 뿐이라 이에 의견을 달리하는 자들은 의심이며 그들이 알지 못하고 그렇게 추측을 할 뿐 그를 살해하지 아니했노라(꾸란4:157)

꾸란은 예수의 십자가 사건을 부인한다.(꾸란4:157) 죽음을 보지 않고 승천했다고 함으로 부활도 부인한다.(꾸란4:158) 예수의 신성도 부인한다.(꾸란5:116)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도 부인한다.(꾸란19:88-91) 그리고 삼위일체도 부인한다.(꾸란5:73) 예수를 알라의 선지자(꾸란19:30)라고 하고 예수는 무함마드가 올 것을 미리 알려주기 위해서 왔다(꾸란61:6)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성경의 핵심 사상을 모두 부인하면서 꾸란이 신구약 성경을 진리로 확증하는 책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꾸란의 자체 모순이다.

물론 무슬림 학자들은 꾸란이 말하는 신구약 성경은 변질되기 이전에 진짜 신구약 성경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지금 기독교인이 가지고 있는 성경은 변질되었다고 주장한다.

충성된 무슬림 학자들은 성경에 무함마드에 대한 예언이 많이 있었는데 모두 지워버렸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언제 누가 변질시켰는지를 말하는 사람은 없다.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이 변질되지 않았다고 하는 증거는 너무 많다. 주전 2세기에서 주후1세기 까지 기록된 것으로 증명된 성경의 쿰란 사본과 사해 사본의 판독에 의하면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이 변질되지 않았다는 것을 학문적으로 과학적으로 고고학적으로 명백히 증명하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7세기에 나타난 무함마드가 신구약 성경이 진리라고 말하다가 상황이 바뀌자 돌변하여 변질되었다고 주장했다고 해서 성경이 진짜 변질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란에서 성경과 성경에 등장하는 선지자들의 이름을 들먹이는 것은, 그들을 무슬림 선지자로 만들어 놓고 그들의 말을 통해서 이슬람의 영향력을 키워보려는 얄팍한 속임수에 불과하다고 보인다. 그러나 사실 꾸란에 나오는 성경의 인물들은 이름만 도용했지 성경의 인물들과는 전혀 다른 인물들임을 성경과 꾸란을 비교해보면 간단하게 확인할 수 있다.

7. 맺는 말

결론적으로 꾸란은 성경과는 전혀 관계가 없으며 온 인류에게 필요한 메시지가 아니라 아랍인들에게만 주어진 메시지이다. 그래서 꾸란은 아랍어로만 읽어야 하며 번역도 하지 말라고 한다. 왜냐하면 아랍어가 모국어인 아랍인에게는 꾸란 번역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랍인도 아니며 아랍어를 이해하지도 못하면서도 꾸란을 인류를 위한 경전으로 생각하고 따르는 사람이 있다면 속히 깨닫고 돌이킬 수 있기를 원한다. 꾸란은 일관된 메시지가 아니라 무함마드의 입장 변화에 따라 수시로 계시를 빙자하여 정반대 이야기를 하는 모순의 책이다. 그래서 메카 계시와 메디나 계시는 내용과 입장이 전혀 다르다.

순진한 한국인들이 무슬림 학자들의 조작에 의해 만들어진 타끼야에 속아서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우리가 무슬림들을 미워할 것이 아니라 그들도 악한 거짓 가르침에 속고 있는 불쌍한 피해자라는 사실을 직시하고 불쌍히 여기며 사랑하여 얼어붙은 마음이 녹아내리고 눈을 뜨게 해서 참 진리를 만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할 것이다.

* 위 글은 한국이란인교회 홈페이지(4him.or.kr)에서 가져온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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