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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6 (화)

[이선규 칼럼] "민족 통일의 복을 누리는 비결" (롬4:1-17)

기독일보 편집부 기자 (press@cdaily.co.kr)

입력 2018. 10. 12 13:38  |  수정 2018. 10. 12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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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규 목사
▲이선규 목사(대림다문화센터 대표ㅣ대림중국교포교회 담임)

어느 회사가 큰 실패로 끝난 즉석 케이크 가루제품에 대한 기사를 잃은 적이 있다. 설명서에는 단지 물을 붓고 굽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물만 부으면 된다. 는 제품을 석연치 않게 여긴 기사에 소비자들이 석연치 않게 여긴 나머지 판매가 부진 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굽는 법을 바꾸고 설명서에 물뿐만 아니라 계란을 섞으라는 문구를 첨가 했다고 한다. 이 생각은 적중하여 판매는 급성장 하였고 회사는 발전 하였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구원의 계획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생각나게 하는 대목 이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엡2:8-9) 라고 성경이 분명히 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구원의 계획이 너무 쉽고 단순하여 사실로 받아들이기를 꺼려한다. 그들은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조리법에다 무언가를 더 가미해야 한다고 느낀다. 그들은 선한 일을 많이 해야 하나님의 마음에 들고 영생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 한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하게 우리가 “우리의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 하심을 받아 (딛3:5) 구원 받는다고 증거 한다. 케이크 가루 제조 회사와는 달리 하나님은 그의 구원이 좀 더 쉽게 그의 ”공식“을 바꾸지 않으신다. 너무 쉽다고 생각 될지 모르지만 우리가 선포하는 복음은 행위로 얻어 지는 것이 절대 아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산물이니
노력이나 승리로 얻을 수 없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자 들에게
하나님은 영생을 거저 주시네.

오늘 본문을 보자 “내 의로‘ 라면 이것은 행함으로 이루어지는 내가 의를 행해서 하나님 앞에 인정을 받는 것이라면 당연히 행해야 된다. 내가 일해서 정당하게 일해서 받는 보수라면 이것은 보상적인 것이다.

바울은 아브라함을 예로든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아브라함은 유대 사람들의 조상으로 그는 최고로 존경을 받는 분이다.

그래서 유태교, 이슬람교, 기독교의 3대 종교로부터 아브라함을 존경하고 하나님의 사람의 대표자로 생각 한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을 예로 드는 것은 당연하다.

복을 빌 때에는 아브라함에게 복 주시듯 복을 주시라고 구하고 기도 할 때에는 아브라함을 인도하신 하나님 나를 인도해 달라고 하고 그에게 주신 은혜를 나에게도 주세요. 라고 구하게 된다.

아브라함은 의인이 아니다. 의롭다 함을 얻은 ‘의인’이다. 그가 의롭다 함을 얻은 의는 율법에서 나온 의가 아니라 철저하게 믿음으로 얻은 것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예로 들고 증거로 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바울에게 있어서는 육신으로 말미암은 유대인 아브라함을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는 것 그것은 무슨 의미가 있느냐? 고 반문 한다.

오직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후손 되었다.고 하는 바로 이 점에 강조점이 있는 것이다. 갈디아서 3:20절을 보자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아브라함의 후손이 된다고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바울은 설명하고 잇는 것이다.

혈통으로 된 것은 별 의미가 없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을 받았음으로 구원을 받았다는 입장에서 아브라함의 후손 다시 말하면 영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된다고 하는 것이 중요함을 오늘의 본문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육신으로 우리 조상된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아브라함의 의는 오직 믿음으로 된 것이다.

그러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 믿음이 무엇을 말하는지 본문에서 찾아보자.

첫째는 고향을 떠나는 믿음이다.

히11:8절에 보면‘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 새 아지 못하고 나갔으며”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지명해서 고향을 떠나라.고 하실 때 아브라함의 모습은 어떤 모습의 사람이었나? 얼마 만 큼 의가 있었나, 그는 선한사람이었나? 하는 말은 전혀 없다. 지시 할 땅으로 가라 하는데 지적도를 주셨다. 거나 나침판을 주셨 다. 거나 어디로 가라한 것도 아니다. 그냥 덮어놓고 떠나라고만 하신다. 아브라함은 그냥 정처 없이 떠난다. 하나님께서 말씀 하신다. 이 땅을 너와 네 후손에게 주리라. 참 얼마나 막연한 모험인가? 이것이 신앙이다. 우리가 영적으로 고향을 떠나야한다. 이 세상에 애착 버려야 한다. 요즘도 고향을 떠나지 못하는 성도가 많다. 이래서 신앙에 발전이 없다.

둘째는 약속의 믿음이다.

약속은 곧 미래의 현실이다. 아직은 손에 쥔 것도 없고 눈에 보이는 것도 없다.

오직 약속만 해 주신다. 약속은 어음 같은 것 이지만 하나님께서 싸인을 해 주신 것이다. 그 약속을 믿는 믿음을 가지라는 것이다.

셋째는 말씀을 받아들이는 믿음이다.

자기 부족을 알면서도 하나님의 은혜가 더 크다는 것을 믿기 때문에 그 은혜를 그대로 수용 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의인 이라고 인정 하시면 나는 ‘의인’ 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의인으로 받아 주시면 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곧 순종하는 믿음이다. 야고보서에도 아브라함이 순종함으로 그 순종이 의롭다함을 얻은 것이 아니냐? 하고 말한다. 그것도 즐거운 마음으로 순종 하였다. 그리하여 이 믿음을 보시고 의로 인정해 주셨다.

자기 ‘;의’가 아닌 하나님의 의를 받아들이는 자세를 의로 ‘인’ 쳐 주신 것이다.

아브라함의 실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창조적이고 효과적인 능력을 나타내신다. 아브라함의 그 믿음을 가진 자가 복이 있다고 하신다. 그동안 우리민족은 많은 세월동안 어려움을 겪어 왔다. 나라를 빼앗기는 고통도 겪었으며 되찾기는 했으나 반으로 짤 리는 아픔 그 반들이 서로 피 흘리며 싸우는 불행을 겪어 왔다. 이런 비극에서 우리는 결코 체념 하거나 좌절해서는 안 되겠다.

아브라함이 받은 복의 근원은 몰라도 복의 체험자는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복을 받되 조국이 평화 통일되는 그런 복을 받고 민족이 하나 되는 축복을 받아야 한다. 복은 풍부한 물질이 가져다주는 것만이 아니다. 잠언 27장 24절에 “대저 재물은 영원히 잊지 못하니 면류관이 어찌 대대에 있으랴? 물질은 만족함을 주지 못한다. 왜냐하면 물질은 갑자기 날아가 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복이란 무엇인가? 현세의 경제 산업적인 것과 육신 건강의도부인 할 수 없다. 그러나 영적인 복을 추구해야 하고 무엇보다도 나라가 평안하고 안전 할 때 우리는 그러한 복을 누릴 수 있다. 이대로 나가다가 핵. 폭탄이 터지는 그런 전쟁의 쓰라림을 기대 할 사림이 있겠는가?

다시 한반도에서 그런 전쟁의 쓰라림이 없는 통일의 축복을 받아야 겠다. 그런데 그런 축복을 어떻게 받을 수 있나? 오늘 본문 7-8절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 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 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고 제시한 복 받는 길을 따라야 한다.

예를 들면 시카고 대는 뛰어난 업적을 지닌 명문으로 급성장한 대학 이라고 한다. 동문과 교수들 중 노벨 수상자가 70명이나 되기 때문에 노벨상 왕이라는 자랑 스러운 별명도 갖게 될 만도 하다. 이렇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1929년에 부임한 로버트 허버트 총장의 리더십 때문 이라고 한다. 그는 교양 교육 일환으로 각 분야의 고전 100권을 읽도록 했다. 학생들은 고전을 읽으면서 위대한 인물 등을 만나 자신들의 역할 모델로 삼았다고 한다. 그런 결과가 일어난 것이다. 모델이 중요하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성도의 모델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약속의 축복은 복의 근원 자가 되는 것이었다. . 그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믿음으로 가능하다. 아브라함이 의인이 되고 믿는 자의 조상이 되는 놀라운 영광을 차지 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공로가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약속으로 주신 그 말씀에 대한 믿음 때문에 그는 복의 근원이 된 것이다. 본문 18절에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는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몸이 죽은 것 같은 것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 지지 아니하고. 라고 하였다. 아브라함이 믿은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하나님 이었다. (롬4:17)이런 믿음을 가지고 그는 하나뿐인 외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제물로 바칠 수가 있었다.

우리가 아브라함으로 부터 본 받아야 할 믿음의 핵심이 여기에 있다.

그의 믿음은 끝까지 흔들리지 확신하는 신앙이었다. 우리민족의 통일도 그냥 판문점에 가고 남북의 지도자 가 만난다고 해서 다 되는 것이 아니다.

그 보다 앞서야 하는 일은 바울의 말씀같이 남과 북에서 다같이 과거에 지은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새로운 마음을 갖는데 있다.

바로 평화의 길은 회개 하는데 있다.

사함을 받은 자들이 그리스도 안에 새 시선을 가지고 이웃과 역사를 보는데 있다. 이웃이 한, 피 받은 형제임과 역사는 하나님이 주관자심을 바로 보는 시선과 시각을 갖는데 평화 통일의 길이 있음을 잊지 말자. 그리고 새로운 시선을 가지고 그리스도와 함께 새 목표를 향해 새 걸음으로 새 일을 시작하는데 평화 통일과 민족의 부흥 발전은 오게 되리라 확신 한다.

문제는 내가 할일은 별로 없다. 그 은혜를 은혜로 받아들이고 감사하자. 그리스도 은혜 안에서 기뻐하자. 사랑 받는 자의 자아의식을 소유하자 하나님께서 나를 이렇게 사랑 하신다.

그런고로 나는 소중한 존재이다. 하나님의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다. 고 결심과 각오로 하루, 하루를 살아가자. 믿음과 순종은 우리의 의무인 동시에 복, 받는 비결임을 잊지 말자. 더욱 힘쓰고 더욱 실천에 옮기므로 영과 육의 복을 누리는 자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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