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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0 (목)

[이선규 칼럼] "너도 이와 같이 하라" (누가복음 10장 25-37절)

기독일보 조은식 기자 (press@cdaily.co.kr)

입력 2018. 05. 08 07:06  |  수정 2018. 05. 08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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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다문화 센터 대표 이선규 목사

이선규 목사
▲이선규 목사(대림다문화센터 대표ㅣ대림중국교포교회 담임)

오늘 본문에 보면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 있는 것 다 빼앗기고 거의 죽어가고 있는 순간 막상 돌봐 주어야 할 레위인과 제사장은 그 광경을 보고도 모른척하고 그냥 가버렸고 오직 아무 상관도 없는 사마리아 사람만 그 신음 소리를 듣고 그에게 다가가서 그를 돌보아 주고 치료해주며 온갖 조치를 다해 주었다는 내용입니다.

그냥 가버린 레위인과 제사장이 잘 못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이겠습니까?.

그들은 강도와 같이 남에게 폭행을 하지 않았고 남의 것을 빼앗거나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끼치지도 아니 했습니다.

그러나 당연히 자기가 할일을 하지 않고 자기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회피한데 그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왜 그는 피했습니까.?

1, 강도 만난 자를 돌보기에는 힘들고 귀찮다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먼저 상처를 소독하려면 기름과 포도주를 구해야 할 것이고 자기가 타고 가야하는 나귀에 환자를 태우면 자신은 걸어가야 할 처지인 것도 생각했을 것입니다.

오늘 현대인들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상대가 내에게 어떤 유익하냐? 저에게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그러다 보니 나에게 유익이 될 듯 하면 가까이 하고 받아 주지만 그렇지 못할 것 같으면 귀찮은 존재로 여기고 아예 무관심해 버립니다. 이 제사장과 레위인도 마찬가지로 강도를 만나 상처투성이인 저자에게 가까이해 보았자 자기에게 유익이 없다는 판단을 했을 것입니다.

이 사람이 자기에게 유익이 될 것 같았으면 옷에 피가 묻는 정도나 돈을 쓸 정도는 문제도 안 되었을 것입니다.

2, 상처 받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볼 줄 알아야 합니다.

본다는 것은 관심을 갖는다는 말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사랑하는 것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마련입니다.

물질계의 탐구에 현미경 망원경의 힘을 빌어야하듯 생명의 신비나 진리의 세계를 보고자 할 때는 신앙의 안경을 사용하여야 합니다. 신앙을 무시하고 인생을 살고자 하는 사람은 현미경이나 망원경을 무시하고 자연을 연구 하려는 사람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을 바로 살아가려면 믿음의 안경을 사용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레미아는 내가 땅을 본즉 혼돈하고 공허하며 하늘을 우러러 본즉 거기 빛이 없도다 (렘4:23) 세상이 겉으로는 호화롭고 행복한 것 같아 보여도 신앙의 렌즈를 끼고 보니 빛이 없는 세상 이라는 것입니다 .

노아 시대의 사람들은 문명을 자랑하고 향락에 도취 되어 노래와 춤을 구가하고 있었지만 노아는 신앙의 눈으로 홍수의 심판을 예견하고 방주를 준비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누구나 현미경이나 망원경을 썼다고 해서 세포의 내용을 다 아는 것은 아닙니다.

안경에 다른 이 물질이 끼어 있으면 사물을 바로 볼 수 없는 것과 같이 신앙의 안경에도 욕심의 찌꺼기가 끼면 바로 볼 수가 없습니다.

아담 하와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의심의 눈 겁이 끼니 지혜롭게 보였다고 했습니다.

아나니아 부부의 눈에도, 가룟 유다의 눈에도 욕심과 탐심이 눈을 가리워 선악과를 따먹고 말았습니다.

인생을 바로보고 사물을 바로 판단하기 위해 신앙의 안경을 착용합시다. 그리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합시다 (계3;18)

아마 이 사마리아 사람도 강도만난 자를 돌아보기에는 힘들고 귀찮다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우리를 무시하고 사람 취급도 하지 않는 사람들 경멸하고 지나 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 겼습니다.

사람은 마음에 따라 인생이 달라집니다.

마음으로 사람이 미워지면 살인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12:2절에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으로 목사님 말씀이 은혜롭다 생각하면 오늘 말씀 이 은혜가 됩니다.

과거에 은혜가 충만 했을 때는 말씀이 꿀 송이 같이 들려 지는데 은혜가 떨어지면 마음의 평안도 기쁨도 헌신도 충성도 사라졌다고 하면 이 사람도 영적으로 강도 만난 자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던 신앙은 간데없고 범사에 불평과 불만만 있다고 하면 영혼이 강도에게 타격을 입은 것입니다.

3, 왜 강도를 만났습니까?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 가다가 그 원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도성 말씀과 은혜의 중심에서 세상으로 타락해간 성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사탄 마귀는 우리의 귀한 것들을 다 빼앗아 가고 상처만 주는 존재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 하고 죽이고 멸망하는 것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더 불어 생명을 얻되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니라.

우리의 영혼은 마귀에게 납치당하지 않아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사탄에게 납치는 당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탄에게 영혼이 납치당하면 어떻게 됩니까?

마귀의 명령을 따르게 되고 사탄의 학교에서 배우게 되는데 거짓말과 욕심 질투하는 법을 익히게 되어 집니다.

그런 후에 마귀로부터 수술을 받게 되는데 마귀의 마음으로 바뀌게 됩니다.

또한 눈을 수술하여 마귀의 눈으로 보게 되고 입과 수족을 교체하고 마귀의 시장에서 경매를 붙이는데 그 때부터 마귀의 종노릇을 합니다. (롬 6:13)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를 위해 오직 헌신 합니다. 형무소로 끌려가는 영혼 도살장으로 죽으러 가는 돼지와 같이 참으로 불쌍한 영혼인 것입니다.

이 영혼의 신음 소리를 듣는 귀가 열려 지기를 축원합니다. 아브라함을 통하여 물 한 방울을 찍어 내 혀를 시원 하게 해 달라는 부자의 신음 소리가 들려오지 않습니까? 여러분의 가족 중에 납치당한 영혼들은 없습니까?

그러면 납치된 영혼을 어떻게 구 할 수 있습니까?

더 강한 자가 와서 저를 이길 때에는 저희 무장을 빼앗고 (눅 11;22) 우리 의 대 장 이시요 더 강하신 예수님을 모셔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목적은 납치된 영혼을 해방시켜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거의 죽게 된 사람을 상처를 싸매어주고 구해주었지만 예수님은 죄와 허물로 죽은 우리를 자기를 희생하여 살려 주셨습니다. 이제 사 탄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인쳐 주셨습니다. 이제 방종 생활 못하도록 간섭 하십니다. 본국의 훈령을 받아 살게 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게 됩니다.

육신이 병 들면 병원에 가야합니다. 정신병은 정신과로 외과, 내 과 안 과 이 비 인 후과 각기 병원으로 가야 하듯이 영혼이 병든 자는 믿음으로 예수님께 나아가고 침 을 받아야 합니다. 집 주인이 허약하면 살림은 어렵게 되기 마련입니다. 집 주인만 잘 만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 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사마리아 사람은 강도를 만나 거반 죽게 된 사람을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치료비를 주고 더 들면 후에 와서 더 주겠다고 부탁하고 갔습니다. 인류는 다 강도 만난 사람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상처를 받고 가슴과 심장이 찔림을 받았습니다.

제사장이 고칠 수 없고 레위인도 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한 상처투성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때에 예수님은 우리를 그냥 지나치지 않으시고 불쌍히 여기시사 찾아 오셔서 우리 영혼을 고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와 사망에서 우리를 구해 주시고 평안을 주시 며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향해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고 당부 하십니다. 주님은 너희가 실험해 보라거나 연구해 보라가 아닙니다. 행하라고 명령 하십니다. 야고보 사도는 2;14절에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 이니라. 고 했습니다. 선을 행할 줄 알고 행치 아니하면 죄라고도 하였습니다. 우리도 가서 저 강도 만난 자를 주막 교회로 데리고 와서 예수님의 피로 씻고 말씀으로 치료받게 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무관심으로 고난의 현장을 빠져 나가는 제사장이나 레위인이 되지 마십시다. 강도 만난 이웃들에게 괸심을 가지고 다가갑시다. 불쌍히 여깁시다. 강도 만나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세상에는 만나서는 안 될 사람이 있고 만나나 마나한 사람이 있습니다. 치유의 역사가 단의 역사로 말미암아 신음 하고 있는 남, 과 북에도 화해와 분단의 아픔입니다. 치유 받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기를 진심으로 소원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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