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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1 (화)

[손석봉 칼럼] 여호와를 경외하라

기독일보 김경원 객원 기자 (kkwwon0691@naver.com)

입력 2017. 07. 03 12:19  |  수정 2017. 07. 03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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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봉 목사(부천 하나교회 담임)
▲손석봉 목사(부천 하나교회 담임)

[기독일보=칼럼] 미국의 어느 교회의 예배 실황을 보게 되었습니다. 영어를 알아들어서가 아니라 아이가 보여줄 장면이 있다고 해서 보게 된 것입니다. 예배 중, 사람들이 다리를 꼰 상태에서 말씀을 전하고 또 그와 같은 자세로 말씀을 듣는 것을 보았습니다.

원래 미국의 문화와 정서가 그렇기에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자신들도 모르게 하나님의 격을 자신들의 수준으로 낮춘 결과라는 마음이 듭니다. 예배는 자신을 하나님께 드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이지, 자신들의 인간적인 즐거움과 만족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믿는 자들이 하나님을 예배할 때 평안과 자유로움, 즐거움과 기쁨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지 사람들의 본능적인 추구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먼저 섬기던 교회에서도 한 유명인이 대예배 때, 한 손에는 성경, 다른 한 손에는 스타벅스 커피를 들고 와서 자리에 앉아 다리를 꼬고 예배를 드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때는 그것이 멋있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나도 그래볼까?’하는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하나님께로부터 친히 배우고 난 후부터는 그것이 옳지 않은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렇게 해서도 안 되지만 될 수도 없었습니다. 두렵기도 하고 양심에 찔림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을 조금이라도 맛을 본 사람이라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찌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전12:13)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의 첫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 분 앞에서 떠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좋은 사례가 출애굽기 19장 16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시내산에 임하실 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태도를 다루고 있습니다. “셋째 날 아침에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매우 크게 들리니 진중에 있는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 앞에서 떤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으로 인하여 불완전한 사람에게는 자연스런 두려움입니다. 그렇지 않을지라도 시내산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가시적인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느낄 수 없더라도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의지적으로라도 경외하는 자세를 지녀야 합니다.

두 번째,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죄를 미워하는 것입니다. 죄는 윤리와 도덕을 넘어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3장1~5절에는 공회 앞 대제사장 아나니아 앞에서 바울이 변론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자리에서 아나니아가 바울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바울을 치라는 말에 의분이 일어난 바울이 아나니아를 향해 “회칠한 담이여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3절)라고 말합니다. 이 말에 곁에 선 사람들이 “하나님의 대제사장을 네가 욕하느냐”(4절)라고 바울에게 말하자 바울이 자세를 바짝 낮추며 “나는 그가 대제사장인줄 알지 못하였노라”고 합니다. 이어서 “너의 백성의 관원을 비방치 말라”는 구약 성경 출애굽기 22장28절의 말을 인용하여 하나님께서 세우신 대제사장을 욕하는 것이 죄임을 드러내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세를 보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에 대한 소중함을 얘기하고 싶습니다. 영성(靈性)을 아날로그와 디지털로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전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초점을 두는 삶이라면 후자는 은사에 중점을 두고 사는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후자가 전자를 있게 하고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전자가 후자를 존재하게 하고 온전히 지속케 합니다. 방언, 통변, 예언, 치유, 축사 등 다양한 성령의 역사를 오게 하고 은사를 주신 목적 그대로 사용되게 하는 것은 회개, 순종, 겸손, 하나님을 경외함 등입니다. 이에 대한 깨달음이 인생의 횟수가 더해감에 따라 더욱 실감납니다. 둘 다 소중합니다. 하지만 성령의 은사에 있어서 그 뿌리와 진액이 말씀에 기초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에 있다는 것을 항상 염두 해 두어야합니다.

우리는 지금 디지털이 대세인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촌스럽고 느리고 불편하고 불규칙하기도 한 아날로그의 삶이 여전히 디지털 세상을 지탱시키는 버팀목인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가치를 끝까지 존중하고 지켜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영생, 성령의 은사,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끝까지 보존하고 지속시킬 수 있는 유일한 힘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고 또 기도하십시다.

글ㅣ손석봉 목사(부천 하나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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