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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4 (금)

[민영진 설교] “은택으로 한 해를 관 씌우시는 하나님”

기독일보 편집부 기자 (press@cdaily.co.kr)

입력 2018. 12. 05 21:22  |  수정 2018. 12. 05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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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65:9-13; 127:1-2; 마가 4:26-29

함께하는예배>공동체 공동설교자
'함께하는예배' 공동체 공동설교자 민영진 박사

전세계교회가 함께 사용하는 교회력으로는 오늘 12월 2일 교회력이 새로 시작되는 첫 날입니다. 12월 2일 주일은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다리는 대림절의 첫 주일이기도 합니다. 네 번의 대림절주일이 지나면 성탄절입니다. 교회력으로는 어제로서 한 해가 끝나고 오늘로서 새롭게 한 해가 시작됩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오늘 우리는 지난 한 해의 결실을 뒤돌아보고, 동시에 또 새로운 한 해를 구상해 보려고 합니다. 또 한 해를 경영할 때 아무쪼록 하나님께서 지혜와 희망과 용기를 우리 모두에게 넉넉하게 베풀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지난 한 해, 농사만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꾸려가는 여러 분야에서 각자 맡으신 일을 경영하시느라고 "여러분 모두, 수고 참 많이 하셨습니다."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 살아오셨고, 그리하여, 올 해, 수확이 남달리 풍성하셨던 분들께는 그러한 결실을 거두시기까지 흘린 땀과 노고가 크셨을 것입니다. 그런 분들에게도 치하의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 수고 참 많이 하셨습니다."

또 여러분 중에는 온갖 노력을 다하고 최선을 다했으나 손 안에 거두신 것이라고는 볼품이 없는 그런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수고의 양은 오히려 더 많으셨을 것입니다. 그런 분들에게도 치하의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 수고 참 많이 하셨습니다."

하는 일마다 되는 것이 없고 무엇을 하려고 하면 늘 장애가 가로 막아 뜻을 펴시지 못하셨던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런 분들의 가슴에는 크나큰 회한이 응어리로 남아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회한은 교회력이 끝나고 새로운 교회력이 시작되는 오늘부터 여러분에게서 떠나 보내버리시기 바랍니다. 우리 앞에는 또 새로운 한 해의 기회가 주어질 것입니다. 지금 여기까지 살아오시는 동안 실패를 거듭하신 분들께도 치하의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 수고 참 많이 하셨습니다."

주어진 일이면 무엇이든지, 평생 성실하게 했는데도, 이젠 기운이 없어져서 길거리에서나 공원 벤치에 앉아서 먼 곳을 하염없이 바라보시는 한가한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일평생 얼마나 수고를 많이 하셨습니까? "여러분, 수고 참 많이 하셨습니다."

교회 안에서 성도들 사이에서나, 직장 안에서 동료들 사이에서나, 친밀한 가족들 사이에도, 서로 서로 반목해야 했던 가슴 아픈 일들이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들 역시 자칫 우리의 가슴에 응어리로 남아 한으로 맺힐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서운한 감정을 미움으로 키우지 마십시오. 오늘, 구원 역사의 한 해를 마감하고, 구원 역사의 새해를 시작하는 오늘을 기해서 다 용서해 버립시다. 아량과 관용과 인내로 그러한 감정을 없애버립시다. 그렇게 하기 까지 기울여야 할 크나큰 수고가 있을 것이기에, 그렇게 하시기로 다짐하시는 분들께도 "여러분, 수고 참 많이 하셨다"는 인사를 미리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가 하는 이러한 온갖 수고에 대하여 아주 깊은 통찰을 한 한 시인이 한 사람 있습니다. 구약성서 시편 127편에서 우리 시인은 이런 고백을 합니다.

1 주님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집을 세우는 사람의 수고가 헛되며,

주님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된 일이다.

(새번역 시 127:1)

집을 짓는 사람들이 집을 짓기 위해서 수고를 합니다만, 그것이 어느 경우에는 헛수고일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곧 사람이 집을 지을 때 하나님께서 그 사람과 더불어 집을 함께 지어주시지 않으면 집 짓는 이의 그러한 수고가 다 헛되다는 것입니다.

경계병이 잠을 자지 않고 깨어서 성을, 도시를, 휴전선을 지켜도 하나님께서 그 경계병과 함께 깨어서 함께 지켜주시지 않으면 경계병이 깨어 지키는 것도 다 그것이 헛수고일 뿐이라고 합니다.

시인은 또 이렇게 말합니다.

2 일찍 일어나고 늦게 눕는 것,

먹고 살려고 애써 수고하는 모든 일이 헛된 일이다.

(새번역 시 127:2a)

우리가 좀 더 잘 살아보려고 아침 일찍 일어나서 일터로 나가고, 해 있을 때뿐 아니라 해가 진 다음에도 잔무다 야근이다 하여 일을 하고, 밤늦은 시간에 귀가하여 잠도 넉넉히 못자고, 그렇게 벌어서 먹고 산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일해주시지 않으면, 곧 하나님께서 우리 편이 되어 주시지 않으면, 우리의 이러한 온갖 노력과 수고가 다 헛되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이 시편 시인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을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신다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 시인이 그 다음 구절에서 한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쉽게 이해되는 말이 아닙니다.

진실로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사람에게는

그가 잠을 자는 동안에도 복을 주신다.

(새번역 시 127:2b)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개정 시 127:2b)

지금 인용한 두 번째 본문은 여러분들께서 보시는 우리말 개역개정판의 번역입니다. 이 구절이 들어 있는 전후 문맥과는 무관하게 우리나라 교인들 중에 특히 잠을 많이 자는 이들이 이 구절을 잘 알고 있고, 잠 많은 것을 나무라면 바로 이 구절을 인용하기도 합니다. 우리말 개역개정판의 이러한 번역은 우리말 독자들에게 이 본문의 참 뜻을 오해하게 합니다. 이 히브리어 표현의 뜻은 새번역이나 영어 현대어 번역들에 나타난 것 같이,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이들에게는 그들이 자고 있는 동안에도 복을 베푸신다"는 뜻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 일 자체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온갖 일과 수고가 우리가 하는 일 그 자체의 성과에 따라 평가를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 따라 평가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상식을 뒤집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는 우리의 구원이 우리의 업적에 따라 결정되지 않고, 한 편으로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긍휼에 따라서, 그리고 다른 한 편으로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에 따라서 결정된다는 것을 관찰하게 됩니다. 참으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얼마나 수고를 했느냐 하는 것보다는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떠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찰을 잠시 중단하고, 시편의 또 다른 시인의 고백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시편 65편에서 11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은택으로 한 해를 관 씌우신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성경 안에서도 다른 어느 곳에 나오지 않는 표현입니다.

12월로 접어들면서 양력 달력을 쓰는 우리의 한 해도 지금 저물어갑니다. 이제 곧 또 다른 한 해가 우리에게 다가 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살아온 지난 한 해, 우리에게 주어졌던 그 2018년에다가, 혹은 우리가 살아갈 우리에게 주어질 2019년 새해에다가, 하나님께서 당신의 은택으로 면류관을 씌우신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면류관은 사람에게 씌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관을 씌우셔서 그를 영화롭게 하신다는 것은 쉽게 이해가 됩니다만 하나님께서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의 한 대목, 한 해, 2018년이나 2019년에다가 면류관을 씌우신다는 것은 결코 예사스런 표현이 아닙니다.

시간의 한 대목, 곧 내가 살아온 나의 한 해에다가 하나님께서 관을 씌우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해 주신 그 한 해에, 우리가 살았다기보다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사셨고, 우리가 일했다기보다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열심히 일하셨고, 그렇게 일해서 얻으신 결실을 당신께서는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피조물인 우리에게 주신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 온 우리의 시간에 영화로운 관을 씌우신다는 말입니다. 시편 65편 9절 이하 13절을 자세히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시 65:9-13을 개역 번역을 중심으로 하여 다른 번역들과 비교하면서 이 본문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9 땅을 돌보사 물을 대어" 이것은 하나님께서 밭에 물을 대어 밭에 물이 넉넉하도록 비를 내리시고, 물길이 지나게 하신다는 말입니다. "[땅을/이]심히 윤택(潤澤)하게 하시며" 이것은 하나님께서 땅이 풍성한 먹거리를 내게 하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강(江)에 물이 가득하게 하시고" 여기에서 "하나님"은 최상급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강"은 "깊은 강"이라는 말입니다. "이같이 땅을 예비하신 후에 그들에게 곡식(穀食)을 주시나이다" 여기 "그들에게"는 땅위에서 살고 있는 사람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을 일컫는 말입니다.

"10 주께서 밭고랑에 물을 넉넉히 대사" 여기 "밭고랑"은 "밭이랑 사이에 홈이 진 곳"을 일컫습니다. "그 이랑을 평평하게 하시며" 여기 이랑은 "한 두둑과 한 고랑"을 합해 이르는 말입니다. "또 단비로 부드럽게 하시고 그 싹에 복을 주시나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비를 내려 땅에서 싹이 잘 나도록 도와주신다는 말입니다.

"11 주의 은택으로 한 해를 관 씌우시니" 여기 "주의 은택"은 9-10절에서 볼 수 있는 것, 곧 땅에서 살고 있는 모든 피조물을 먹이시려고 수고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와 신실하심에서 비롯된 된 농사의 전 과정을 일컫는 것입니다. "한 해를 관 씌우시니"는 한 해를 풍요롭게 하신 것, 그 해에 풍년을 들게 하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한 해의 풍년을 달리 말해 그해에다가 하나님께서 면류관을 씌워주신 것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주의 길에는 기름방울이 떨어지며" 주님께서 지나시는 자취마다 기름이 뚝뚝 떨어진다는 것은 풍성한 먹거리가 차고 넘쳐 출렁거린다는 말입니다.

"12 들의 초장에도 떨어지니" 11절에서 말한 "기름방울" 곧 풍성한 먹거리가 광야의 목장에도 여울져 흐른다는 말입니다. 번역에 따라서는 "들의 목장은 가축 떼가 그득하고"라고, 또는 비나 이슬이 내려 습기가 충분하게 공급된 것을 말하기도 합니다. 혹은 번역에 따라 "들의 초장은 이슬로 반짝이고"라고 이해하기도 합니다. "작은 산들이 기쁨으로 띠를 띠었나이다" 이 표현은 옷을 입고 띠를 두르는 이미지를 활용한 것입니다. 산마다 언덕마다 풍요롭게 자란 각종 식물로 덮여 있어서, 산들이 기뻐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생명으로 충일한 산과 들을 보는 사람들이 기뻐한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13 초장은 양 떼로 옷 입었고" 이것은 "초장에는 양떼가 그득하다"는 말입니다. "골짜기는 곡식으로 덮였으매" 이것은 "평야마다 곡식으로 덮여있다"는 말입니다. 히브리어 "에멕"을 영어 번역들은 valley로 번역합니다. 우리는 이 valley를 "골짜기" 혹은 "계곡"으로 번역합니다. 그러나 히브리어 "에멕"은 "산과 산(혹은 바다) 사이의 넓은 평원"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산과 산(바다) 사이의 대평원이라면, 우리나라 지리에서는 평야와 같은 지형을 일컫습니다. 서해안의 김포평야, 김제평야, 나주평야, 논산평야, 안성평야, 예당평야, 호남평야, 부평평야; 남해안의 김해평야 같은 것들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다 즐거이 외치고 또 노래하나이다" 여기에서 "그들이"는 "모든 만물이"입니다.

이상에서 보았듯이 시편 65편 9-13절에서 우리는 땅에서 농부처럼 일하시는 하나님을 봅니다. 밭에 물을 대시어 밭이 옥토가 되게 하십니다. 밭을 윤택하게 하십니다. 거기에서 곡식 농사를 지으시고 그 풍성한 결실을 내시고 그 결실을 피조물에게 주시어 먹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농사를 짓는 모습이 아주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강에 물이 넉넉하게 흐르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관리하시는 그 강은 그 이름 "하나님의 강"에서 보듯이 아주 물이 많고 "깊은 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강물로 밭고랑에 넉넉히 대십니다. 물 댈 옥(沃) 흙 토(土) 옥토를 만드시려고 하나님께서는 비를 내리시어서 땅의 흙을 부드럽게 하십니다. 땅에 복을 베푸시어 거기에 뿌려진 씨가 잘 자라게 하십니다. 푸른 초장은 양떼로 가득 덮이게 하시고, 들에는 곡식이 무르익게 하십니다. 이것을 두고서 시편 시인은 "주께서 당신의 은택으로 한 해에 관을 씌우셨다"고 고백합니다.

여기 시 65편에서는 농사를 예로 들어서 우리가 하는 농사는 실제로는 하나님이 하시는 농사이고 농업에 종사하는 우리는 다만 하나님께서 맺어놓으신 결실을 거두는 일만 할 뿐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농경 사회를 벗어난 오늘의 우리는 농사 이외에 여러 분야에서 우리의 사업을 경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상업이라면 상업, 경영이라면 경영, 이루 다 열거할 수 없이 많은 여러 직종에 우리가 근무를 하는데,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께서 해주시는 일이라는 것에 착안하게 됩니다. 우리가 하는 일의 성패는 우리의 기술이나 열성에 달려 있지 않고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시느냐 아니냐 하는 데에 달려있음을 일찍이 파악한 시인이 있습니다.

개정 시 127:1-2

1 여호와께서 집[혹 가옥이나 가문]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혹 우리의 안보]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2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새벽별 보며 출근하고]

늦게 누우며 [밤늦게 퇴근하고]

수고의 떡을 먹음이 [입에 풀칠하려 애써 일해도]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이 본문은 문자대로 번역하면 오해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최근의 번역들은 이 본문이 지닌 의미를 달리 이해하고 있습니다.

진실로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사람에게는

그가 잠을 자는 동안에도 복을 주신다.(새번역 시 127:2b)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라는 히브리어 본문을 예수께서는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오는지를 말씀하실 때, 독자들에게 이 표현의 뜻을 넌지시 알리고 계십니다. 바로 이 잠자는 농부의 비유를 들어서 말씀하신 바가 있습니다(막 4:26-29).

26 또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27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28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29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라 (개정 막 4:26-29>)

농부는 아마 씨를 뿌린 것 외에는 별로 한 것이 없습니다. 적어도 씨가 자라고 싹트고 이삭을 맺고 하는 일에는 농부가 할 일도, 한 일도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고, 씨는 우리가 보기에 저절로 자라는 것입니다. 농부가 밤이 되면 자고 아침이 되면 일어나고 그러는 사이에 하나님께서는 그 씨가 싹이 나게 하시고, 이삭을 맺게 하시고, 그 이삭이 충실한 곡식으로 익게 하시는 것입니다. 농부가 잠을 자는 동안에도 하나님께서는 씨에서 싹이 나게 하시고 이삭을 맺게 하시고, 곡식을 내게 하시고, 열매가 익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농부가 열심히 일할 때뿐만 아니라, 잠을 자고 있는 동안에도 복을 베푸시어서 농사가 잘 되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경영도 마땅히 일해야 할 것입니다.

참으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얼마나 업적을 쌓았느냐 하는 것보다, 우리가 과연 얼마나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업적으로 평가되지 않고 믿음으로 평가됨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쉬지 않고 일하는 노예적 임무를 수행함으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의 증인이 되는 것으로 평가를 받을 것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나라가 우리의 노력으로 이룩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당신 스스로 이룩하시고 우리는 그 나라에 합당한 구성원으로 부름을 받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한 해 경영을 결산하고 새로운 해를 경영하려고 하는 이 시간, 지난 한 해를 되돌아보며, 지난 한 해 동안 나에게 가장 좋았던 일들이나 아니면 나에게 가장 나빴던 일들이 무엇이었던가를 그 목록을 길게 작성하지 맙시다. 그 대신, 하나님께서 우리 사이에서 하신 일을 생각해 보십시다. 우리가 살아온 지난 한 해에 우리가 한 일에 관을 씌우신 일, 곧 지난 한 해에 우리를 영화롭게 하신일, 자랑스럽게 해주신 일이 무엇인지 되돌아 관찰해 보십시다.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총을 깨달았다면 그것을 함께 증언합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올바르게 응답합시다.

우리의 이런 응답은 하나님의 섬기며 이웃을 사랑하는 일로 확대될 것입니다. 받은 혜택에는 책임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이 응답은 이 예배를 마친 다음에 우리가 모두 향하는 이 세상을 위한 섬김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나야 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받은 복 함께 나누며 더욱 풍요로운 삶을 누리십시다. 하나님과 더불어 즐기시고 성도들끼리도 행복한 삶을 이룩해 가고, 우리의 섬김을 기다리는 이 세상과도 우리가 받은 복 함께 나눕시다. 그러면, 우리가 지을 내년 농사도, 더욱 풍요로워질 겁니다.

* 설교는 지난 2018년 12월 2일 '함께 하는 예배' 공동체 주일예배 설교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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