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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8 (월)

[로마서 강해] 이선규 목사 "하나님이 쓰시는 자의조건" (롬9:10-15절)

기독일보 편집부 기자 (press@cdaily.co.kr)

입력 2019. 01. 30 15:05  |  수정 2019. 01. 30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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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규 목사
▲이선규 목사(대림다문화센터 대표ㅣ대림중국교포교회 담임)

경제 용어가운데 선점 효과(first mover effects)라는 것이 있다.

남보다 먼저 움직이거나 점유하는 자가 권리와 이익을 얻는다는 내용이다.

식당마다 원조를 내세우는 것도 알고 보면 그런 의미에서이다

그런데 오늘 본문 성경은 이런 세상의 원리를 뒤집어 놓는다.

강자가 아니라 약자로 태어나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던 야곱이 마침내 축복의 조상이 되었으며 최후의 승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많은 것을 가졌다고 할 수 있는 에서는 하나님의 눈 밖에 나기 시작하면서 불행의 나락으로 추락 하게 된다.

그러나 비열하고 교활하기 이를 데 없는 야곱은 자신의 치명적인 약점에도 불구하고 그는 승자의 길을 걷게 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1, 하나님의 섭리

(12절)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길 것이다.

세상적인 기준으로 보면 야곱보다는 호탕하고 인간미 넘치는 에서가 더 크게 성공하는 것이 당연한데 결국은 실패자로 전락하고 만다.

오늘날 흔하게 일어나는 크고 작은 분쟁이나 다툼의 원인을 살펴보자. 약자가 더 많은 것을 얻고 강자를 뛰어 넘기 위해 온갖 거짓과 술수를 부리는 데서부터 심각한 문제들이 발생하는 것이 아닐까?

야곱은 선천적으로 신체적 약점을 가지고 태어났다. 따라서 그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한 정 되어 있었다.

강자의 부류에 끼기 위해서는 부득불 속임수를 써야만 했으나, 그로 인한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성공은 이와 다르다.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입히고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많은 사람을 이롭게 하고 행복을 선사해 주기도 하며 선한 영향을 끼친다.

만약 야곱이 인간적인 술수를 부리지 않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맡겼더라면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주님은 그의 삶을 더 좋은 곳으로 인도 하셨을 것이다.

11절을 보자.

“그의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게하려 함이라.”

무슨 말인가 주님은 그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그를 향하신 뜻을 정해놓고 계셨다는 것이다.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길 것이라. 야곱이 이기적인 야망을 이루기 위해 불의하고 못된 짓을 하지 않았더라도 주님의 선하신 섭리에 따라 보다 수월하게 성취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섭리에 무지했을 뿐만 아니라 전혀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가 취했던 선택은 주님의 뜻과는 전혀 다른 방향이었다.

그가 주님의 계획을 인위적으로 바꾸려고 해서는 안 되었다. 자신의 야망을 포기하고 오직 자기의 뜻을 포기하고 주님의 뜻에 맡겨야만 했었다.

하나님은 누구의 손을 들어 주시는가? 모든 것을 주님의 뜻에 맡기고 전적으로 맡기고 의 지 하는 자이다.

2, 오직 은혜

우리는 본문 속에서 또 하나의 영적 교훈을 발견하게 된다.

인간의 집념과 열정만으로 진정한 성공을 거둘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야곱은 물불을 가리지 않는 집념의 소유자였다.

그는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무수한 난관에도 불구하고 무서운 집념과 끈질긴 인내심을 가지고 매달린다. 그가 지닌 가장 큰 장점을 들라면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자세와 불 타는 열정을 빼 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 열정 때문에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무슨 일 하더라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면서 하는 열정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그의 성공은 그의 집념과는 다르다. 그의 손을 들어주신 것은 전적으로 그의 은혜임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가 인생을 잘 살아서, 혹은 열심을 갖고 일을 했기에 복 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왜 에서는 내치고 야곱은 사랑하셨나?

주님께서 강자의 조건을 갖춘 에서 대신에 나약하고 결점이 많은 야곱의 손을 들어 주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 하는가?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설명할 길이 없다.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자들이 어떻게 주님의 택하심과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단 말인 가? 도대체 무엇을 보시고 우리를 택하신 것인가?

본문은 우리의 행위나 공로와는 전혀 상관없이 주님의 뜻대로 부르셨을 뿐 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은혜가 있어 무익하고 무자격한 자가 다시 살리심을 얻고 주님의 축복을 힘입고 그 은혜에 붙들려 사는 자이다.

내가 잘 나서 주님으로 부터 택함을 받고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자가 누구인가?

주님의 사랑을 힘입고 그 은혜에 붙들려 사는 자이다. 이와 같은 깨달음이 있는 자에게는 어떤 어려움에 처 어려움에 처한다 해도 낙심하지 않는다. 언제나 이길 힘을 주시고 솟아 날 구멍을 열어 주시기 때문이다.

주님은 집념의 사람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를 입고 사모하는 자를 가까이 하신다.

하나님은 누구의 손을 들어 주시는가 자기 능력을 의지하는 강자가 아니라 은혜를 구하는 자이다.

에서는 자기 나름대로의 생활에 만족 하였다. 그는 남 못지않은 건강과 사냥 하는 재능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생활하는 데도 부족함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야곱은 육신적인 재미에 탐닉하기 보다는 가정에서 경건과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부모로 부터 배우는 일에 더 관심이 있었다. 이 언약의 복에 대한 관심의 차이가 야곱과 에 서의 인생을 완전히 다르게 결정지었다.

하나님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존중히 여겨 주신다. 하나님을 무시하는 자는 하나님 도 무시해 버리신다. 에서는 하나님의 언약의 축복을 무시하고 살았다.

그러나 야곱은 그 모든 인간의 약점과 실수 가운데서도 오직 한 가지 하나님의 언약의 축복에 대해서만은 온 정성을 쏟았다.

하나님은 그런 야곱을 축복 하여 주셨다. 우리 모두가 여러 가지 실수와 결함이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야곱과 같이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에 대해서만은 절대로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예수님은 그런 하나님의 언약의 축복을 잡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자를 절대로 버려두지 않겠다고 약속하신다.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나는 너를 버리지 않겠다”고 하신다.

그러한 은혜를 입은 성도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

3. 하나님을 영화롭게

강자는 성공할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다. 너무 잘났기에 얼마든지 자기 힘으로 성공 할 수 있다고 큰 소리 친다.

자신을 신뢰하는 나머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다.

자신의 힘으로도 얼마든지 치고 나갈 수 있다고 믿는 자만심 때문에 주님을 의지할 필요성이 없게 된다. 주님은 “내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나이다. 주여 나를 도와주소서“라고 고백 하는 자의 기도를 들어 주신다.

모든 것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주님을 붙드는 사람에게 자신의 능력을 나타내신다.

본문에 에서를 미워한 이유가 무엇인가? 그의 외모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인가? 강자라는 이유에서 인가? 그렇지 않다 자신을 신뢰하는 나머지 하나님을 찾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차이점이 무엇인가?

야곱은 위기가 닥쳐 올 때마다 지체하지 않고 신속히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엎드린다.

그러나 에서는 하나님 앞에 엎드렸다는 말이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왜 그랬을까? 그는 자신 만만 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힘으로 모든 인생의 위기를 극복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한 번은 일본의 경영의신이라 알려진 마쯔시다 고노(파나소틱 내셔널)에게 누군가 성공 비결을 물었다고 한다. 그의 대답인즉,

“나는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지 않은 가장 유리한 세 가지 조건을 가지고 있다. 한 가지는 어렸을 때에 부모를 잃어 버렸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초등학교도 제대로 졸업 하지 못했다는 것이고 세 번째는 늘 병약해서 골골하며 살았다는 것이다. 이 세 가지가 나를 성공하게 만든 원동력 이었다.”

일찍이 부모를 여의므로 홀로 서기 위하여 불철주야 노력 해야만 했고,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했기에 나보다 더 많이 배운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며 배우려고 발버둥 쳐야 했으며, 몸이 허약 하였기에 건강에 유의하여 살다보니 오늘의 내가 존재 할 수 있었고 겸손하게 살다보니 오늘의 내가 존재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약점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는가? 그것 때문에 늘 자신감을 상실하고 있는가. 그 약점이 가장 위대한 강점 이라는 것을 기억 하자. 왜냐하면 그 약점으로 인해 주님의 능력을 힘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가장 고통스럽고 약한 순간에 이렇게 고백 하고 있다.

“내가 약할 때가 가장 강할 때” 였노라고.

“주님의 능력이 내 안에 머물기 때문이라.”

주님은 언제나 주님의 섭리를 믿고 은혜를 사모 하고 겸손히 엎드리는 자의 손을 들어 주신다

우리 모두 야곱처럼 하나님의 사랑받는 우리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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