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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2 (금)

남북·북미 정상회담 이후 새로운 통일선교 전략방향

기독일보 조은식 기자 (press@cdaily.co.kr)

입력 2018. 06. 08 17:11  |  수정 2018. 06. 08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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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복음주의협의회 6월 월례회 경동교회 박종화 원로목사 강연

경동교회 박종화 담임목사
▲경동교회 박종화 담임목사 ©자료사진=기독일보 DB

1. “평화의 때 도래”

- 기독교인들은 역사적 상황의 변화를 단순히 예측가능한 시대사적 내지 역사현실의 변화의 틀에서만 보지 않는다. 역사의 궁극적인 주인이 하나님이라고 믿는 신앙고백의 입장에서 시대사의 흐름과 변화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개입의 징조(Kairos)를 간파한다. 1988년 하계 올림픽이 서울에서 평화의 축제로 열렸었다. 그 이전 1984 LA 올림픽은 미국과 소련을 정점으로 하는 동서 양진영의 핵무장 경쟁을 비롯한 냉전대결이 최고도에 처한 상황에서 동구권 국가들이 집단으로 불참한 반쪽축제였었다. 하지만 88 서울올림픽에는 전 세계 각국이 모두 참여했다. 이 올림픽이 지나고 1989년부터 시작하여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이 집단 몰락했고, 분단된 독일은 통일을 성취했다. 이를 우연의 특이한 역사발전 정도로 평가하기에는 역사적 반등과 반전의 폭과 깊이가 너무도 컸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개입의 현상을 목도한다. 독일통일은 바로 이런 역사변혁의 물결에 능동적으로 동승한 결과이며, 급기야 지루했던 적대적 냉전구조는 세계사적 차원에서 일단 종식되고 말았다.

- 그 뒤로 정확히 30년이 지난 2018년의 평창 동계올림픽은 누구나가 인정하듯 스포츠를 통한 세계적 평화축제의 현장이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한반도에서의 전쟁공포 곧 핵전쟁 위협이라는 최악의 불안이 설쳐댔었다. 하지만 상황이 급반전되었다. 4월27일의 남북 정상회담이 극적으로 적대적 냉전의 상징인 판문점에서 열린 것은 어쨌든 인간적 계획과 예상 이상의 사건임에 틀림없다. 예정대로 6월 12일에는 북미 정상회담이 싱가포르에서 열린다. 북한 비핵화와 북한 체제보장이라는 큰 틀의 합의가 이루어질 것이다. 당사국 상호간의 협약과 합의를 전제로 북한 핵의 비핵화가 시작되고, 종전선언과 함께 평화협정이 체결되는 길로 가고 있다. 여기에 동북아 평화를 보장할 집단안보의 틀이 제안되는 등의 평화조치가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국제법상의 요건을 갖춘(de jure) 통일은 아닐지언정 최소한 평화 공존적 삶(de facto)이라는 사실상의 통일과정을 명실공이 시작하는 셈이다. 30년 전의 유럽의 냉전 해체와 독일통일로 유럽의 평화를 만들었다. 이제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의 길이 열리고, 그것이 21세기 동북아의 평화와 안보 및 공영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으로써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믿는다. 2020년의 북경 하계올림픽, 2022년의 도쿄 동계올림픽이 이어지면서 동북아 집단안보와 평화의 틀이 지속발전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2. 독일통일에 기여한 독일교회의 교훈

- 서독의 빌리 브란트 수상 정부가 동독의 에리히 호네카 서기장 정부와 동서독 교류협력에 관한 「기본조약」을 체결한 것이 1972년 이다. 이는 1991년에 체결된 「남북기본 합의서」와 비견할 만한 것이었다. 독일의 기본조약이 모두의 박수 속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찬반논쟁이 많았지만 브란트 정부의 뚝심으로 빛을 보았고 그 후 정권이 바뀌면서도 기본 방향은 변치 않고 지속되고 있었다.

- 하지만 서독은 통일은 원치 않으며 영구분단도 좋으니 평화만 보장되면 좋겠다는 입장이었다. 동독 측의 반응도 똑같았다. 통일대신 평화를 원한다고 했다. 제 2차 대전의 패전국으로 서독은 미, 영, 불에 의해서, 동독은 소련에 의해서 분단 점령되어 있었고, 이 네 나라가 독일통일을 허용할 일도 없을 것이고, 구라파의 다른 국가들도 같은 입장임을 알기에 통일은 불가능하며, 그러기에 「한 민족·두 국가」의 틀에서 교류협력을 통한 평화공존이 최적의 현실이라는 인식을 동서독 모두 공유하고 있었다. 입만 열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노래하는 한반도에는 이제야 “평화의 문”이 열리고 있다. 평화공존의 시대를 명실 공히 살라고 한다. 이와 달리 독일은 통일 대신 평화를 원했는데 급기야 “통일”을 선물로 받았다. 도대체 왜일까? 말없이 통일의 전제조건인 “평화 공존”의 삶을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살피며 우리의 필요한 결단을 상정해 보려고 한다.

- 동서독 교회는 지역단위 또 개 교회별로 자매결연을 맺고 동독교회의 예산의 거의 절반정도를 서독 측 교회가 지원했다. 17년간 총 56억 DM(약 33조원)을 지원한 셈이다. 절기만 되면 버스나 트럭에 온갖 선물꾸러미를 가득 싣고 서독 측이 동독 측을 방문했다. 이미 라디오와 TV 시청이 양 독 정부 간에 합의된 터라 동독 사람들은 서독의 현실을 알게 되었고, 특히 매체들의 가전제품이나 각종 문명의 이기들에 대한 상품광고가 호기심도 자극했다. 동독 땅을 지나 서독에서 서베를린으로 통하는 고속도로를 서독측이 닦아주고도 통행료는 동독 측이 꼬박꼬박 챙기는 실리를 주기도 했다. 물론 통행의 주인공은 거의 서독인들 이었다. 어려울 때 도와주는 서독의 침묵하는 손길이 동독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 사실이다.

- 양 독 간에는 일종의 정치범 석방계획(Freikauf)이 실시되었고, 처음엔 정부차원에서, 나중에는 기독교회가 정부자금으로 동독의 정치범들을 대가를 지불하고 석방시켜 데려왔다. 17년간 총 33,755명이 석방되었고, 대가에는 시기별 대상별 차이가 있으나 평균 일인당 당시 10만 마르크(약 6천만원)로 주로 물품으로 지불했다. 동독정부는 때로는 더 많은 돈을 벌기위해 반체제 인사들을 양산하거나 아니면 양산을 방조한 흔적도 있었다. 반체제 인사의 정략적 양산으로 돈은 벌었으나 동독 내에서는 체제비판이 그만큼 늘어났고, 동독인들의 보이지 않는 마음속에는 체제에 대한 저항과 비판으로 내적이반 현상이 자라난 셈이다.

- 서독 사람들의 동독방문은 자유로웠다. 하지만 동독인들의 서독방문에는 상당한 제한이 있었다. 일례를 들면 동독에서는 연금과 생활보조를 줄이려고 노인 이산가족의 서독방문을 허용하면서 가능하면 동독에 돌아오지 말고 서독에 계속 머물러 살라는 분부까지 했다는 말을 당사자들한테 직접 들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노인들은 두고 온 식구들이 그리워 거의 다 동독으로 돌아온다고 했다. 하지만 노동력이 활발한 젊은이들은 어쩌다 귀한 서독 방문기회를 얻으면 서독에 주저앉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방문 전 반드시 돌아온다는 서약을 했는데도 말이다.

- 1989년이 시작되면서 동독 측에도 변화의 물결이 급격하게 생겨났다. 라이프치히 시내의 복판에 있는 <니콜라이 교회>(Nicholaikirche)를 중심으로 월요일 저녁마다 촛불을 손에 들고 평화기도회를 개최했었다. 점점 인파가 불어나기 시작했다. 동독의 비밀경찰과 안보요원들의 이상한 기류를 직감하고 감시와 방해공작을 했다. 그런데 방해하면 할수록 인파가 늘었다. 충돌하면 할수록 더 늘어났다. 당의 핍박은 이들을 오히려 강한 의식화와 단결로 내몬 것이다. 이 소식이 전국적으로 알려지면서 동베를린을 비롯한 큰 도시의 교회들을 중심으로 평화촛불 기도회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까지 엄청난 속도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촛불집회가 계속되었다.

- “우리가 독일민족”(Wir sind das Volk)이라는 구호로, 곧 분단 속에서도 독자적인 정체성을 지닌 민족으로 출발하더니, 나중에는 “우리는 이제 한 민족”(Wir sind ein Volk)이라는 통일지향의 민족적 일체감을 표출하는 것으로 발전되기 시작했었다. 독일주변 4강 점령국들이 나중에는 통독에 합의하는 쾌거가 있었지만, 동서독 국민들의 마음속에 이미 내적통일이 싹으로 자라나기 시작한 셈이다. 평화에의 열정이 뜻하지 않게 등장한 통일이라는 그릇을 채운 셈이다. 사실 필자는 무너진 베를린 장벽을 중심으로 인산인해를 이룬 양독 시민들이 운집한 가우데 독일인들이 사랑하는 음악가 베토벤의 교향곡 9번에 나오는 “기쁨의 노래”(Ode zur Freude)를 “자유의 노래”(Ode zur Freiheit)로 가사를 바꾸어 오케스트라와 합창으로 천지를 울리던 장면을 기억한다. 통일 자체도 반갑지만 통일이 가져다준 “자유”가 더 반가웠던 가보다. 1989년 12월 24일 성탄절 전야제의 광경이었다.

3. “평화 공존” 살기

- 남북 기본합의서에 등장한 “상호간 체제의 인정과 존중”(1장1절)은 구호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일종의 잠정적인 합의(modus vivendi)의 형태로서 통일까지의 “평화공존”을 명문화한 것이고, 잠정적인 단계로서의 평화적인 분단관리 모습일 뿐인데 말이다. 이런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중간 과정을 배제한 채 통일국가의 꿈을 현실화하려는 것은 허황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는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을 필두로 하여 한반도에는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다시는 전쟁의 위협도 자리할 수가 없는 상황으로 가고 있음이 반갑다. 종전선언이 공식화 되고, 곧 이어 정전협정을 대신할 <평화협정>의 체결로 일단 법적 제도적 평화공존의 모습은 국내적으로 국제적으로 그 틀을 갖추고 공인받아야 한다.

- 여기서 중요한 과제가 있다. 한국 사회에 그리고 한국교회에 뿌리 깊은 북한체제 불신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의 과제이다. 실제로 오늘까지 “통일”을 말하면 기쁘면서도 불안과 초조가 생긴다. 그 이유는 남한에서는 통일을 “북한에 의한 고려연방제라는 이름의 적화통일”로 이해하고, 북한에서는 통일을 “남한에 의한 자본주의라는 이름의 흡수통일”로 이해하는 때문이다. 문제는 이것이다. 두 오해는 적어도 남북 간에 전쟁을 치루고 한 쪽의 일방적 승리와 다른 한 쪽의 일방적 패배로 귀결 날 때에만 가능한 상상이라는 점이다. 오늘 날 전쟁의 일방적 승리/패배가 있을 수도 없고, 특히 핵전쟁의 경우 쌍방 전멸만이 가능한 현실에서 둘 다 불가능한 상상이다. 통일의 방식이 평화적이어야 함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동시에 통일의 목적도 목표도 평화이어야 함에도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이제 남은 것은 쌍방을 서로 인정하고 수용하는 바탕위에서 “평화적 공존”을 이루어 가는 일 뿐이다. 2018년의 한반도 상황 변화가 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평화공존을 통해 평화를 일구며, 통일은 평화공존의 결과물로 삼으라는 역사의 명령이다.

- 평화공존 시대의 선교와 교류협력에는 몇 가지 견지해야 할 것들이 있다. 먼저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는 말은 북한에는 주체 사상적 공산체제가 지배하며, 남한에는 자유민주체제가 지배함을 부정하지 말고 인정하자는 것이다. 공존은 바로 상대방의 “다름”을 인정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이는 바로 남한교회의 공식적인 접촉의 파트너인 <조선 그리스도교인 연맹>이 남한 교회와 성격과 구성이 “다름”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동독교회는 과거에 스스로를 사회조의 체제에 “귀속되는” 교회(church of socialism)도 아니고, 사회주의 체제를 “위해” 존재하는 교회(church for socialism)도 아니고, 현실적으로 사회주의 체제 “속에 몸담고” 살지만 정체성은 주님의 몸으로 산다는 (church in socialism) 자기고백을 천명했고, 서독을 비롯한 세계교회는 이를 수용했다. 북한의 <연맹>도 또는 어떤 형식의 미래교회도 이런 성격으로 이해함이 바람직하리라고 본다. 다만 남한교회에도 해당하지만, 북한교회의 경우에도 일단 교회의 모습을 띠고 사는 한 하나님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하나님 자신의 구원의 역사를 자신의 방식대로 이루어 가시리라는 확신은 공유해야 한다고 믿는다.

- 이렇게 보면 북한을 향한 남한교회의 선교계획은 평화 공존적 틀로 바뀌어야 한다. 그것은 남한교회 식의 교파분열은 결코 북한에 유입되거나 추천될만한 틀이 아니라는 점이다. 교파교회가 아니라 북한식의 “연합교회”가 가능하며 또 바람직함 모델이다. 교파중심의 분열된 선교방식 역시 불식되어야 한다. 분단 자체도 불식의 대상인데, 분단 속의 또 다른 교파분열은 당연이 불식과 극복의 대상이다. 그렇다면 북한의 사회적 현실에 적합한 선교 모델은 북한이 외형과 체제상으로 갖추고 있는 “마을별 복지체제”를 선교협력의 실천적 장으로 삼자는 것이다. 예컨대 200여개의 군마다 있는 보건소를 실제로 주민건강을 돌볼 수 있는 내실 있는 보건소로 회복시켜주는 디아코니아 선교 말이다. 여기에 탁아소, 모자보건 진료소, 유치원, 학교 등등의 복지시설의 내실을 채워주고 운영을 지원함으로서 진실로 민생중심의 선교봉사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연관 속에서 영적 보살핌과 훈련을 담당할 소위 “복지 중심의 교회”를 북한 지역과 합의하여 거부감 없이 다양하게 설치해 갈 수 있으리라 본다.

- 또 하나 대북 선교지원의 문제이다. 적어도 지역단위별 선교지원이 기본적인 틀이라면, 지원의 기본정신은 공여자의 뜻이 아니라 수혜자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그동안 모든 지원과 협력에 있어서 갑을관계 내지 주객도식은 과거의 식민주의적 방식으로 의롭지도 않고 효율성도 없음이 판명되었다. 이것이 바로 북한과의 교류협력에서 특히 중시해야할 요목이다. 동시에 지원은 그 동안의 경험에 비추어 현금이 아닌 “현물” 내지 “물품”으로 해야 옳다는 점이다. 동시에 비상의 고난 상황을 고려하여 “물고기”를 제공하는 것은 좋으나 가능하면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고 지원하는 “기술”과 “자본”의 투자가 더욱 중요하다는 점이다. 지원이 의존을 낳기 보다는 자립을 지원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 이러한 지원 속에 “평화 만들기”가 실체화 되며, 통일을 부분적으로나마 부분적으로 나마 미리 맛보고 나누는 것이 된다. 곧 인도주의 차원의 교류협력은 끊임없이 지속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설령 정부 당국끼리의 부정적 대결과 갈등의 상황에서라도 인도주의 지원은 “단절 속의 연속”의 모습으로 지속되어야 한다. 이 교류협력은 상대가 북한의 백성이다. 북의 체제가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에도 “체제”의 희생양인 백성을 도와 마음을 사고 결국에는 통일을 위한 협력 축으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눅 25-37)에 나오듯이 “강도만난 동포”를 돕되, 이념과 교조주의에 충실한 레위사람이나 제사장처럼 “체제가 싫기 때문에 ‘골치 아파!” 하며 도피하지 말고, 선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체제갈등에도 불구하고, 또는 체제는 싫지만, “희생당한 동포의 사정이 너무도 가슴 ‘아파’!” 하며 선을 베푸는 신앙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 마지막으로 심혈을 기울여 노력해야 할 것이 있다. 평화공존의 삶은 가치관의 경쟁을 벌려가는 삶이다. 분단 시절에는 객관적인 체제와 이념 갈등으로 살아왔으나, 교류협력이 원활해진 공존의 시대에는 예를 들어 자유, 행복, 정의, 신뢰, 공동체, 평화, 사랑 등의 기본 가치관이 정치에서부터 문화예술에 이르는 전체 삶의 영역에서 제대로 구현되는지 아닌지를 놓고 무한 경쟁에 돌입하는 시대이다. 여기서 우위를 점하는 측이 통일의 주역이 된다. 통일국가가 지니는 통일헌법도 이런 기본 가치관을 서문에 명문화할 것이며 그것을 따라 입법 사법 행정의 체제도 조문화될 것이다. 외부 권력으로 부터의 강요나 위압이 아니라 국민들 스스로의 자율적인 결단이 만들어 가는 통일 사회가 될 것이다. 여기서 교회의 필연적인 선교과제가 있다. 기독교 가치관을 어떻게 위에 예기한 기본 가치관의 바탕으로 뿌리를 내리게 할 것인지 그리고 그런 가치관을 기독교가 앞장서서 구체화하고 모범을 보여줄 것인지의 과제이다. 통일 이전이나 통일의 과정이나 통일 이후에서도 기독교가 이런 삶의 기본에 충실한가의 여부에 따라 기독교 선교의 흥망성쇠가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4. 나가면서

분단된 민족 내부의 갈등은 과거 지향이 아니라 미래 지향으로 푸는 것이 훨씬 더 바람직하다고 믿는다. 그것은 곧 공동의 미래 번영과 평안 및 복지와 안보를 위하여 “평화 만들기”에 함께 나서는 일이다. 앞서 강조한 바대로 통일이 바라는 그릇이라면, 그 그릇에 담길 보화는 넓은 의미의 평화이다. 평화는 곧 화합의 집이다. 또 하나 종교는 국가에 몸담고 있으나 국가주의에 봉사하지 않는다. 국가의 국민과 동시에 국가의 경계를 넘어선 사람들의 공동 안보와 평안을 위해 헌신해야 하는 존재이다. 한국의 기독교가 민족과 국가를 사랑하는 것은 당연하고 훌륭하지만, 편협한 민족주의에 굴복하고 비 인륜적 국가이기주의에 매몰되면, 한낱 “맛 잃은 소금”에 불과하고 “빛을 상실한 등”에 불과할 뿐이다. 한국기독교는 이 민족의 평화는 물론 동북아의 평화, 나아가 세계의 평화를 심고 가꾸고 꽃을 피우라는 소명을 타고났다. 그것이 미션이고 비전이다.

/글=한국복음주의협의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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