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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2 (금)

[김진혁 칼럼] 크리스천 직장인의 사명과 자세

기독일보 홍은혜 기자 (press@cdaily.co.kr)

입력 2018. 06. 11 09:20  |  수정 2018. 06. 11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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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처럼, 조국을 사랑하고 인정받는 삶

김진혁 사무총장(한국기독교직장선교연합회 후원회, 한국취업컨설턴트 협회 대표)
김진혁 사무총장(한국기독교직장선교연합회 후원회, 한국취업컨설턴트 협회 대표)

역사는 반복된다. 기억하지 못한다면 비극으로 점철된다.

솔로몬 왕 이후 갈라진 북이스라엘은 BC 722년 아시리아(Assyria. 메소포타미아 북부 티그리스강 상류지역에 세운 고대국가)에게 멸망당한다. 많은 사람들이 추방당하거나 노예로 팔려갔다. 남유다 역시 BC 597년 바벨론(이라크 바그다드의 남쪽에 세워진 국가)의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 예루살렘이 점령당하고 성전이 파괴되었다. 유대민족들은 바벨론으로 끌려가는 디아스포라(Diaspora)가 된다. BC 539년, 바벨론을 점령한 페르시아의 고레스(Cyrus) 왕은 추방되어 살고 있던 이민족들을 그들의 나라로 되돌려 귀향시키는 유화책을 폈다. BC 445년 경 아닥사스다왕의 총애를 받던 신하 느헤미야는 조국의 훼파된 소식을 듣고 무리를 이끌고 고향으로 돌아가 무너진 성벽을 다시 쌓았다.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 종이 형통하여 사람들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그때에 내가 왕의 술 관원이 되었느니라." (느혜미야 1:11)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이 자기가 태어난 곳이 아니다. 나라 멸망의 책임도 없다. 높은 지위에 있던 직장인으로서 얼마든지 편하게 잘 살 수 있었음에도 왕에게 요청하고 총독의 직위를 얻어 멀고 험한 사역을 감당한다. 왜 그랬을까? 오직 조국에 대한 사랑과 온전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다.

느헤미야를 통해 오늘날 직장인들이 가져야 할 사명과 자세를 엿본다.

첫째, 크리스천 직장인들은 조국을 사랑한다. 사랑은 아낌없이 주는 것이다. 모든 허물을 가리고 서로 용납하는 힘이 있다. 느헤미야는 이스라엘 자손의 죄, 고난 받는 조국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연대적 책임의식을 가졌다. 국가의 회복을 위한 간절한 기도를 올려 하나님을 감동케 했다. 오늘날 직장인들이 따라야 할 성숙하고 품위 있는 표상이다.

『로마인 이야기』를 쓴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멸망을 문화적 포용력 상실에서 찾았다. "지성은 그리스보다 못하고 체력은 켈트나 게르만보다 못하고, 기술력에서는 에트루리아보다 못하고 경제력은 카르타고보다 뒤떨어졌다"는 작은 도시 국가 로마가 역사의 중심이 된 것은 특유의 개방성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후 자신의 문화만 고수하는 폐쇄성으로 인해 로마는 망한다. 이민족과 융화되지 못했고 기독교의 성장이 멸망을 앞당긴 것이다.

에드워드 기번(Edward Gibbon, 1737~1794)이 쓴 「로마제국의 멸망」에서 도덕적 타락을 로마 멸망의 주 원인으로 설명한다.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외래의 피를 섞지 않고 시민의 순수한 혈통을 유지하려는 편협한 정책 때문에 더 이상 번영하지 못했다. 그러나 로마는 공허한 자존심 대신 야망을 택했다. 로마는 노예나 이방인, 적이나 야만족 모두의 장점과 미덕을 취해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이 더 사려 깊고 영예로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1000년간 번성하던 로마가 망한 이유를 종합해 보면 성(性) 문란과 가정의 붕괴, 끊임없는 내분, 무능하면서도 무능한 줄 몰랐던 관료들, 서커스, 목욕탕의 사치와 향락문화, 정치지도자의 타락 등을 꼽을 수 있다.

우리는 21세기 문화적 질병인 음란과 퇴폐적 문화, 무신론, 동성애와 성해방 풍조에 직면하고 있다. 이 때야 말로 분열의 영으로 조롱하고, 경건하지 않고 정욕대로 행하는 어리석은 자들과 싸워야 한다. 고급 공무원 느헤미야의 열정처럼.

자신의 유익을 위한 기도가 아닌 중보적 기도, 자신과 민족의 죄를 고백하는 회개

기도, 말씀에 근거한 회복기도로 역사의 흐름을 바꿔야 한다.

둘째, 직장인들은 세상에서 인정받는다.

크리스천인은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생각이 아닌 열린 마음으로 포용과 공감할 수 있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포용이란 남을 너그럽게 감싸 주거나 다양성을 받아들임을 뜻한다. 공감은 남의 감정, 의견, 주장 따위에 대하여 자기도 그렇다고 느끼는 소통능력이다. 공감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먼저 관심과 배려가 필요하다.

동료와 고객의 감정, 의견에 대하여 같이 느끼고 경청한다. 상대방의 다양성을 존중하여 크리스천의 향기를 발휘한다.

"네 형제의 소나 양이 길 잃은 것을 보거든 못 본 체하지 말고 너는 반드시 그것들을 끌어다가 네 형제에게 돌릴 것이요."(신명기 22:1)

'저 사람이 믿는 종교라면 나도 따라 믿고 싶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의 헌신적 삶이 필요하다. 느헤미야는 신실한 사람으로 왕의 신임을 받아 술 맡은 관원으로 일했다. 크리스천의 자세는 직장업무도 탁월할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을 존귀하게 여기는 섬김이다.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 명철한 자의 입술에는 지혜가 있어도 지혜 없는 자의 등을 위하여는 채찍이 있느니라(잠언 10:12~13)

미국이 불과 300년도 안되어 세계 최강국이 된 것은 포용력 때문이다.

남부 총사령관인 로버트 리 장군은 '전쟁에서 이기지 못하고 질 때는 깨끗이 지자. 게티스버그 전투에서 북부가 이겼으니 전쟁을 그만두자.' 고 남쪽을 설득하여 조용하게 전쟁을 끝냈다. 그 후 교육자가 된 후 멋진 말을 남겼다.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 이 전투에서 패한 사람은 나뿐이다. 남과 북 군인들은 '하나의 미합중국' 건설을 위해 전쟁을 끝내버린 승리자다"

옥(玉)뚜기로 회자되는 오뚜기는 어린이 심장병 환자 4,000여 명의 수술을 해 주었고, 밀알복지재단에 사재 주식 3만 주(375억 원 상당)를 기부하는 등 사회적 책임을 수행했다. 성경이 가르치는 직업관을 바로 알고 교회 밖에서 승리하는 직장인이 되었으면 한다.

셋째, 일터사역자의 본분을 지킨다.

직장은 전도의 황금어장이며 흩어져 일하는 교회다. 직장은 단순히 생업의 장이 아닌 전도의 지경이다. 직장인들이 자기 구원에 만족하지 말고 직장 선교사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먼저 나만 잘되겠다는 이기적 욕망을 버리고 모두의 이익이 되게 하는 믿음과 신뢰를 쌓아야 한다. 성경에서도 협력하면 패하지 않는다고 한다.

메이저리그 정상급 투수로 독실한 크리스천인 클레이튼 커쇼는 삶의 중심을 늘 하나님께 두고 살아간다.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후원하기 위한 다양한 자선활동을 펼쳤다. 경기장 현장에서 예수를 증거 한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갈라디아서 6: 9~10)

크리스천 직장인들이 먼저 솔선수범하여 상대방을 믿고 협력하고 상생을 통한 전도의 사명을 깨달았으면 한다.

무늬만 크리스천이 아닌 신실한 직장인으로서 소명을 담당하길 기도한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브리서 12:2).

조국의 현실을 직시하고 사랑하겠습니다.

세상에서 인정받는 셀프리더십과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겠습니다.

직장을 단순히 생업을 위한 일터에서 뛰어넘어 흩어져 일하는 사역지로 섬기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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