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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5 (목)

[설교]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 - '김동호 목사'

기독일보 편집부 기자

입력 2013. 04. 01 17:31  |  수정 2013. 04. 01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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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15:55-58

오늘 복된 부활 주일에 하나님 전에 나아와 예배하시는 여러분들과 여러분들의 가정과 가족위에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엿새 동안 힘써 온 우주와 생명을 창조하시었습니다. 그 하나님의 창조는 완벽하였고 아름다웠습니다. 그곳은 아픔도 슬픔도 괴로움도 죽음도 없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그곳의 이름은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함으로 그 낙원을 잃어 버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영생도 잃어버렸습니다. 완벽하고 아름다웠던 세상은 엉겅퀴와 가시나무로 뒤덮인 세상이 되었고 슬픔과 아픔과 괴로움과 죽음이 난무하는 그런 나라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비록 우리가 범죄하여 그렇게 되었지만 우리를 그곳에서 그렇게 살도록 버려두시고 싶지 않으셨습니다. 죽음의 댓가를 스스로 치루시고 우리 인간을 그 죄와 사망으로부터 건져내시려 하셨습니다.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예수님은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으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구원의 사역을 완성하셨습니다. 그리하여 다시 하나님을 믿고 따르기로 한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죄를 짓고 범죄함으로 고통과 죽음을 모두 격어야만 하지만 믿는 자의 끝과 결국은 그 고통과 죽음이 아니라 부활과 영생이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이 우리 기독교의 핵심 진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부활과 영생을 알려주시고 보여주시기 위하여 스스로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입니다. 영생의 종교입니다. 구원의 종교입니다.

우리는 부활을 믿습니다. 영생을 믿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믿습니다. 구원을 믿습니다.

이와 같은 믿음이 우리에게 주는 것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희망입니다.

키에르케고르라고 하는 철학자는 절망을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하였습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이 절망 때문에 죽어가고 있고 살아 있어도 죽음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얼마 전 지방의 꽤 공부 잘 하는 학교에서도 꽤 공부를 잘 하고 있었던 아이 하나가 아파트에서 떨어져 자살하였습니다. 그 아이가 남긴 유서가 참 마음 아픕니다.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다."

그 아이는 정말의 덫에 걸려 죽었습니다.

절망은 정말 죽음에 이르는 병입니다. 그런데 부활신앙은 우리에게서 그 절망을 빼앗아갑니다. 정말로 부활 신앙을 믿는 사람들은 혹독한 이 세상에서의 지옥 같은 삶에서도 그것을 이겨냅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서 8:18에서 그것을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생각하건데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아멘.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소망이 되었습니다. 절망이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면 소망은 생명에 이르는 약입니다.

둘째는 용기입니다.

폴 틸릭이라는 신학자가 '존재의 용기'라는 책을 썼습니다. 인간답게 존재하기 위하여 가장 중요한 것이 용기라는 말을 그는 그 책에서 하고 있습니다.

저도 그 말에 동의합니다. 정말 살아오면서 순간 순간 가장 필요했던 것 중에 하나가 용기였습니다.

세상에 제일 무서운 것이 죽음과 실패입니다. 그런데 세상과 사탄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뜻과 식대로 바로 살려고 할 때마다 '그러면 손해본다. 그러면 망한다. 그러면 죽는다.'라고 위협하였습니다.

그 때마다 그것을 이겨내고 벗어내기 위하여 필요한 것은 용기였습니다. 사탄의 위협과 공갈은 모두가 다 거짓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대부분이 사실이었습니다.

정말 그러면 죽고 망하고 실패할 수 밖에 없는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고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서 그것에 도전할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현실과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내 삶에 종국적인 끝과 결국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실패와 죽음을 넘어선 영광과 승리와 생명을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용기 중의 최고의 용기는 순교입니다. 세상에 많은 순교자들이 믿음 때문에 죽었습니다. 피할 수 있는 죽음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돌파하였습니다.

저들은 정말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는 진정한 용기의 사람들 이었습니다. 저들은 그럼으로 세상이, 사탄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도바울에게도 바로 그런 믿음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그와 같은 바울의 믿음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고전 15:55-57)

셋째 지혜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8장 32절에서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고 말씀하십니다.

지혜란 진리를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수 많은 것들을 분별하고 판단하며 살아야 합니다. 바른 판단과 바른 결정을 하며 산다는게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어긋난 판단과 결정을 할 때마다 우리는 실패를 경험하고 죽음을 경험하게 됩니다. 어리석음은 정말 우리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또 하나의 병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이 지혜에 대하여 치명적인 결함을 안게 되었습니다. 죄의 뿌리는 욕심인데 욕심은 항상 우리의 눈을 멀게 합니다. 욕심에 눈이 멀게 되면 우리는 모두가 다 어리석어 집니다. 지혜를 잃어 버리게 됩니다.

지혜는 눈 앞에 보이는 욕심을 버려야만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그것처럼 어려운 것이 없습니다. 내가 욕심내고 바라는 것이 바로 눈 앞과 코 앞에 있는 데 그것을 보지 않고 넘긴다는 것은 정말 도통한 경지가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부활 신앙은 우리에게 그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저도 죄인인지라 어쩌다 가끔은 바르게 살고 싶지 않고 아무렇게나 막살아보고 싶은 충동이 있습니다. 악인들의 형통을 부러워 할 때가 있습니다.

저도 이 세상이 전부라면, 죽음이 모든 삶의 끝이라면 아마 눈 앞에 보이는 것만을 위하여 살았을 겁니다.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 세상> 하며 세상과 죄와 타협하며 살았을 겁니다.

그런데 저는 부활을 믿습니다.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과 부활을 믿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세상이 끝인 것처럼 살 수가 없습니다.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 세상하며 살 수가 없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보물을 땅에다만 쏟으며 살 수가 없습니다. 보이지 않지만 믿는 하나님 나라에 보물을 쌓으며 살려고 부족하지만 노력하게 됩니다.

가끔 제 정신(타락한 정신)이 들면 아깝습니다.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진짜 제 정신이 들면 또 다시 절제하며 자신을 스스로 채찍질하며 바르고 보람있고 가치있는 삶에 도전하게 합니다.

사도바울에게도 그와 같은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늘 본문 끝에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고전 15:58) 아멘.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저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습니다. 때문에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때에 내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심판 받아 영원한 사망이라는 판결을 받아야 마땅한 자임에도 불구하고 구원을 얻었다는 것을 믿습니다.저는 부활과 영생과 하나님 나라를 믿습니다.

그 믿음이 저에게 소망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용기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지혜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것은 죽음 이후의 하나님 나라에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죽음 이전의 아직 세상에서의 삶에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것은 죽음 이전의 이 세상도 하나님 나라가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제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너무 좋고 감사합니다. 저는 어떤 일이 있어도 이 믿음이 저에게 가져다 준 은혜와 축복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우리에게도 부활의 소망과 영생이 있음을 증명해 보이시기 위하여 예수님이 오늘 새벽 부활하셨습니다.

저는 부활 믿습니다.
여러분들도 이 부활을 믿으시고 부활의 신앙의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놀라운 축복의 증인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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