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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7 (일)

기독교 신비주의는 어떤 길을 걸어왔는가?

기독일보 편집부 기자 (press@cdaily.co.kr)

입력 2018. 02. 07 06:56  |  수정 2018. 02. 07 0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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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신학칼럼] 창조신학연구소 소장 조덕영 목사

조덕영 박사(창조신학연구소 소장)
▲조덕영 박사(창조신학연구소 소장)

1. 신비주의의 역사

최근 국내 교계는 다양한 신비주의가 만연하고 있다. 과연 바른 신앙의 흐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새로운 신앙 사조가 나타나면 반드시 그 흐름에 대한 평가가 필요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특별히 기독교 역사는 참기독교와 유사 기독교 사이의 투쟁사다. 따라서 낯선 경향이 교회 안에 갑자기 나타나기 시작하면 성령의 인도하심인지 그 진위를 분별하고 성경적 평가가 필요하게 된다.

시카고대의 버나드 맥긴은 서방 기독교 신비주의 역사를 다루면서 서방 기독교의 신비주의가 3, 4세기 시작되어 12세기까지 꽃을 피웠다고 보았다. 13-16세기는 신비주의의 개화기로 이때 신비주의의 고전적 학파들이 생겨났다고 보았다. 그리고 17세기부터 현재까지를 기독교 신비주의의 위기 시기로 보고 있다. 이렇게 생각보다 신비주의는 그 역사와 뿌리가 깊다고 볼 수 있다. 이 역사 속에서 성 어거스틴(354-430)을 비롯하여 다양한 인물들이 신비주의 속에 관여한다. 맥긴이 3세기를 기독교 신비주의의 시작점으로 삼은 것은 아마 “수도자들의 아버지”인 사막 교부 안토니와 신플라톤주의의 원조 암모니우스 사카스(Ammonius Saccus, 175-250)의 두 제자였던 플라톤 철학의 종교적 해석의 달인 알렉산드리아의 신학자 오리겐(Origen, 185-254)과 신플라톤학파의 실제적 창시자요 비기독철학자인 플로티노스(Plotinus, 205?-270)를 염두에 둔 것임을 예측할 수 있다. 안토니가 실제적 신비 체험자였다면 신플라톤주의자들은 관념적 신비주의자였다.

2. 신플라톤주의적 합일

신플라톤주의자들에게 물질은 정신의 산물이며 현상은 본질적으로 정신적인 것이었다. 여기서 합일(合一)에 대한 신비적 열망이 나타난다. 플로티노스는 감각적 세계와 초감각적 세계 사이의 합일, 즉 인간의 혼은 탈자(脫自)를 통한 절대적 일자(一者)와의 합일을 이룬다고 본 것이다. 이 같은 합일의 갈망은 과학기술시대인 오늘날에도 여전히 신비주의의 근간을 이룬다. 초월자이신 신과 합일을 이룬다는 개념은 결코 간단한 것이 아니다. 이 같은 신비주의 속에는 전지전능하신 인격자이신 성경의 창조주 하나님과 플라톤적인 선의 이데아(Idea), 아리스토텔레스적인 만유의 목적인 누스(Nous)의 개념이 혼재해 있다고 보아야 한다. 한국교회를 어지럽히고 있는 최근의 모든 신비주의 경향들은 바른 신앙 교리를 무시하는 가운데서 누미노제한 미신적 합일을 기독교적 체험이라는 강변하는 일명 “부채도사화” 되어버린 아니면 말고식의 비성경적 신비주의의 경향을 보인다.

3. 부정신학

결국 기독교 신비체험가들과 신비주의자들도 이런 기독교의 하나님과 철학적 하나님을 혼동하는 체험(즉 주관적, 개인적 일종의 합일의 체험)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일찍이 이 같은 혼돈을 간파한 신학자가 있었다. 유대교의 알렉산드리아 신학자 필로(Philo, 주전 20-주후 50년 경)는 신은 인간 오성(understanding) 너머에 지고지순한 분이기에 무한하고 이해 불가능하며 형언할 수 없는 존재이다. 따라서 유한한 인간이 신과 합일을 이룬다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필로가 스토아 철학의 로고스 개념을 초월적 하나님과 물질 세계 사이의 중재 요소로 본 것과 더불어 신에 대해 인간이 단정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신은 이러이러한 분은 아니다’는 식의 서술만이 가능하다고 본 것은 분명 신학에 일정한 공헌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부정철학에서 파생한 부정신학(negative theology)이다. 당시 알렉산드리아 출신들이 그러하듯 구약성경의 알레고리적 해석에 관심이 많던 그는 헬라 철학을 히브리적 세계관으로 종합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부정신학의 실마리 찾은 것이다.

인간의 사고 범주로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이므로 긍정(kataphasis)에 대조되는 부정(apophasis)의 방식으로 신을 이해하려한 이 같은 방식은 6세기 아레오바고의 관원 디오니시우스(행 17:34, 僞디오니시우스)의 이름으로 저서를 유포시킨 익명의 철학자를 통해 훗날 동방정교회의 수도원 전승을 통해 정교하게 다듬어졌다. 위(僞)디오니시우스에 의하면 창조주 하나님은 일체의 규정을 초월해서 선(善)이라고도 존재라고도 할 수 없다. 신은 초선, 초존재로 일체의 형용과 규정을 부정하는 것만이 신에 대한 이해의 길이다. 신을 아는 자는 “무지(無知)의 지”이어야 한다. 이 모든 부정의 길(via negativa) 또는 부정신학(apophatikē theologia)은 이후 오랫동안 신비신학의 방법론 중 하나가 되었다. 이 익명의 저술가인 위디오니시우스는 아빌라의 테레사와 더불어 “신비 신학”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1520년 마르틴 루터가 자신의 유명한 책 <교회의 바벨론 유수>에서 이 익명의 위디오니시우스를 유해한 인물이라고 본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4. 중세 신비주의

중세의 스콜라신학에서도 마지막 교부로 불려진 클레르보의 베르나르(1090-1153), 아시시의 프란체스코와 그의 제자이자 전기 작가인 보나벤투라 등 많은 교부 신비주의자가 나왔고 토마스 아퀴나스에게까지 이어진다. 이들이 신비주의 속에서 발견한 것은 주로 사랑이신 하나님과의 합일이었다. 13세기 말, 14세기 초에는 마이스터 에크하르트(Meister Eckhart, 1260년 경-1327)를 중심으로 하는 독일신비주의 운동이 일어나고, 근세 초기에 이르기까지 큰 직접적 영향을 미쳤다. 이들 중세 신비주의자들이 하나님의 본성에서 사랑을 가장 중심의 영성의 길로 보았다는 것은 신비주의가 영혼의 내적 생활 중심으로 궤도를 이동하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랑의 합일이 곧 영혼과 로고스 사이의 영적 결합으로 가는 길이었다. 이 같은 영적 합일의 길은 에크하르트에게서 좀 더 신의 본질에까지 접근하려는 경향을 가진다. 그러한 몸부림은 <그리스도를 본받아>로 국내에 많이 알려진 토마스 아 캠퍼스(Thomas a Kempis, 1380-1471)의 저작들에까지 이어진다.

하지만 내재의 인간이 초월의 하나님을 찾아 만나는 길은 인간의 노력으로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초월적 만남은 인간 노력이 아닌 절대 주권자이신 창조주 하나님의 절대 권한이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그랬고 모세가 그랬으며 한나와 사무엘이 그랬다. 더구나 인간은 모세가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의 전면적인 모습이 아닌 “하나님의 등”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인간의 노력으로 하나님을 보려고 하면 할수록 인간은 오히려 더 초월자와의 만남에 있어 안개 속으로 모습을 감추어 버린 하나님을 찾으려 헤매다 구렁텅이로 빠지게 되어버린 자신을 발견할 뿐이다. 이게 바로 신비주의의 역사다.

16세기가 되면서 종교개혁에 반응한 카톨릭 개혁운동 속 신비주의는 아빌라의 테레사(Teresa of Avila, 1515-82)나 십자가의 요한 등 스페인 신비주의에서 절정을 이룬다:

“나는 이제 묘사하고자 하는 것을 때로는 초보적인 형태로, 그리고 배우 순간적으로 경험하곤 했다. 그리스도에 대해 묘사할 때, 심지어 그리스도에 대한 글을 읽을 때, 나는 예기치 않게 하나님이 임재 의식을 경험하곤 했다. 나는 그리스도가 내 안에 있었다는 것, 혹은 내가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심연으로 빠져 들어갔다는 것을 결코 의심할 수 없었다. 이것은 결코 환상이 아니었다. 나는 이것을 신비 신학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순한 신비주의를 넘어 테레사는 신비주의가 신학의 영역이라고 본 것이다. 이렇게 이들 중세 신비주의자들은 단순한 합일만 추구한 것은 아니었다.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합일을 갈망하면서 믿음과 참회와 십자가 고난에의 참여를 통한 거룩을 향함이 분명 있었다. 그 후 신비주의는 프로테스탄트의 정통주의에 대응하여 17세기 말부터 18세기에 걸친 경건주의 운동 속에도 나타났다. 이 운동은 종교의 본질을 직관(anschauung)과 절대의존감정에서 찾으려 했던 현대신학자 슐라이어마허에 까지 이어진다. 이들 신비주의자들이 사용한 신비 체험의 술어들은 주로 연합(union), 관상(contemplation), 하나님의 환상(vision of Gom), 신성화(deification), 영성 속 말씀의 탄생(birth of the Word in the soul), 엑스터시(ecstasy), 의식(consciousness), 임재(presense) 같은 단어로 나타났다. 참된 신의 현현(theophania theou)을 체험하기 위한 신비주의자들의 열정과 달리 이렇게 신비주의는 복음과 성경 밖 초월의 경계선 상에서 늘 위태로운 영성 체험을 추구하였다.

5. 성경 속 신비

성경 속 예수와 바울을 신비주의의 영역 속에서 설명하려는 시도가 있다. 예수의 사역은 기적의 연속이었다. 특별히 예수 공생애 이적에 나타난 계시는 예수가 먼저 자신을 창조주 하나님으로 계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수는 스스로 ‘내가 창조주이다“라는 식의 공표를 한 적은 없으나 스스로 신성을 가진 존재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표적의 책인 요한복음에서 사용된 17번의 ‘표적’이라는 단어 중 11번은 예수의 기적과 관련되어 있다. 예수 공생애 첫 사역의 갈릴리 가나 혼인 자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꾼 이적은 단순한 기적이 아니었다. 그것은 창조의 기적이었다. 오늘날 과학 기술의 관점에서 ”자연은 영원히 과학에 순종“해야 한다. 그게 과학의 기본 원리이고 과학자들의 암묵적 합의다. 자연이 인과(因果)의 법칙 안에서 과학에 순종하지 않을 때 모든 과학은 그 실험과 법칙의 규율을 상실해버리기 때문이다. 물이 포도주로 바뀌는 것은 오늘날 생화학이라는 학문의 영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초월의 사건이다. 이 공생애 최초의 이적인 요한복음 2장의 사건은 예수를 삼위의 제 2위 이신 창조주 하나님으로 인식하게 만든 기독교 신학의 핵심이다. 즉 이것이 기독론의 중심이다.

초대 교부 이레네우스가 그리스도와 성령을 말씀과 하나님의 영 즉 우주를 창조하는 하나님의 두 손이라고 표현한 것도 창조가 삼위일체의 사역임을 보여준다. 일부 신비주의자들이 이 창조주 하나님의 고유한 창조 사역을 자신의 주관적 체험 속에 끌어오는 경우가 있다. 비록 주관적 체험이라 그 진위를 평가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나 성경 속 신앙과 신학의 고유한 전승을 무너뜨리는 위험한 체험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공생에 기적을 창조 사역으로 시작한 것은 단순히 자신을 창조주로 계시하시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오직 창조주만이 영원히 무너진 이 인간과 피조 세계를 회복시킬 수 있다. 오직 전지전능한 초월자만이 내재의 세상을 회복시킬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의 창조는 철저히 창조주 하나님의 구속 사역과 연관됨을 알 수 있다. 신비주의자들은 창조와 구속으로 이어지는 이 초월적 사역 속에 끼어들어 자신이 남들이 경험하지 못한 신비 체험 속에서 남들과 다른 하나님의 특별한 존재임을 부각 시키는 경우 신앙의 위험한 한계를 단숨에 넘어버리는 심각한 지경에 이르게 됨을 명심해야 한다.

6. 사도 바울의 신비와 신비주의

바울이 묵시적으로 삼층천에 올라갔다는 기록(고후 12:1-6)이 기독교 신비주의 역사에서 중심적 역할을 한다는 점을 지적한 최초의 인물은 스톨츠(Anselm Stolz, 1900-1942)다. 그러나 사도 바울을 신비주의자라는 명제를 바탕으로 접근한 인물은 아프리카의 성자로 불렸던 신학자 알버트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 1875-1965)였다. 슈바이처는 인간이 지상적인 것과 초지상적인 것, 시간적인 것과 영원한 것 사이의 단절이 극복된 것으로 보고, 아직은 지상적이고 시간적인 것 안에 존재하지만 자신이 초지상적인 것과 영원한 것 안에 들어가게 됨을 체험하게 됨을 체험하는 모든 것을 신비주의로 보았다. 사도 바울은 예수의 메시야적 통치는 비록 보이지는 않지만 이미 시작되었고 예수의 선민들의 부활도 이루어졌다고 생각했을 만큼 성례와 윤리, 율법, 칭의에 대한 바울의 견해는 모두 종말론적이며 신비주의인 것이다. 원시 종교에 나타난 원시적 신비주의가 마술적인 반면, 인류가 우주와 맺고 있는 관계를 이해하기 위한 깊은 사유 가운데 모습을 드러내는 좀 더 고도화한 철학(플라톤, 스토아, 스피노자, 쇼펜하우어, 헤겔 등)이나 힌두교의 브라만(Brahman)이나 부처(Buddha)에게서 보이는 신비한 요소를 사유 신비주의라 하였다. 슈바이처는 바울의 신비주의는 이 두 신비주의 사이에 위치한다고 보았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 신비주의라는 것이다.

슈바이처는 사도 바울이 받은 계시를 초월 계시로서의 신비와 진리로 보기를 회피하여 보다 높은 신비주의와 보다 낮은 신비주의가 혼재한 신(神)-신비주의가 존재하지 않는 그리스도 신비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기독교 신앙에 있어 성경에 나타나지 않은 단어나 신학사(史)에 등장하지 않는 새로운 신앙과 신학의 용어를 사용할 때에는 신중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자신의 믿음 부족을 나타내거나 신학적 미숙의 표현일 경우 신앙과 교리를 왜곡할 가능성을 지님을 늘 경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슈바이처 신학에는 초월적 복음의 요소보다 내재적 학문의 향기가 난다. 비록 슈바이처가 세상에 잘 알려진 아프리카의 성자인지는 모르나 바른 신앙의 신학자인가 하는 문제는 분명 다른 차원의 문제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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