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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9 (수)

갈등·분쟁 극복하는 '평화 목회' 했던 애산 김진호 목사를 기리며

기독일보 조은식 기자 (press@cdaily.co.kr)

입력 2017. 05. 23 22:24  |  수정 2017. 05. 23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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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신대, 개교130주년·웨슬리회심279주년 기념 제30회 학술대회 및 전시회

애산 김진호 목사
애산 김진호 목사 ©애산기념사업회

[기독일보 조은식 기자] 감리교신학대학교(이하 감신대)가 개교 130주년과 웨슬리휘심 27주년을 기념하며 학술대회를 개최한 가운데 '애산 김진호'(1873~1960) 목사의 목회와 민족운동에 대해 조명했다. 23일 오후 감신대 백주년 기념관에서 열린 행사에서 이덕주 교수(감신대)와 한규무 교수(광주대)는 각각 애산의 교육·목회와 민족운동에 대해 이야기 했다.

애산 김진호 목사는 대한제국 말기의 한학자로서 일제 강점기 초기에 기독교에 입문한 인물이다. 상동교회 전덕기 목사와 신민회 활동을 하고, 정동교회 전도사로 있으며 배재 학생들과 3.1운동 후 내리교회를 담임했으며, 배재기독학생들과 이태원, 홍제원 교회를 부흥시켰다. 퇴직 후 궁정교회 및 삼청교회를 담임하다 파송 받아 북한 청진에서 목회하며 6개 교회를 개척했고, 각종 중요 기록을 남겨 초기 한국기독교의 역사를 증거했다.

이덕주 교수는 먼저 애산의 목회에 대해 "크게 학원 목회와 교회 목회 두 영역에서 이뤄졌다"고 말하고, 특히 "배제에서 정년 은퇴한 후 교회 목회에 본격적으로 임했는데, 일제말기 종교 탄압이라는 외부 요인과 교회 내부의 갈등과 분쟁으로 인한 어려운 환경에서 화해와 일치를 추구했다"며 애산의 목회를 '갈등과 분쟁을 극복하는 평화 목회'라고 평가했다. 덧붙여 애산의 목회는 기독교 신앙과 민족운동의 조화를 추구했다고도 했다.

특히 이 교수는 "애산의 목회에서 교육과 목회, 이론과 실천, 종교와 문화, 학문과 신앙, 진보와 보수, 전통과 개혁이라는 두 축은 갈등과 충돌의 상극 요인으로 작용하기보다는, 조화와 공존의 상생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말하고, 한 예로 "목회자로서 기독교를 통한 개화와 근대화를 받아들였지만, 한국 전통 철학과 문화유산을 폐기하거나 소홀히 하지 않았다"며 "그의 학문적 종교적 입장은 한 마디로 본질과 진리에서 지킬 것은 지키되, 지엽적이고 비생산적인 것은 과감히 척결하는 '개혁적 보수주의'라 할 수 있다"고 평했다.

한규무 교수는 올해가 애산이 전덕기에게 세례를 받은 지 110주년이 되는 해라 밝히고, "애산의 수세(受洗)와 신민회 입회는 신앙생활과 민족운동에 대한 그의 각오를 새롭게 다져주는 계기가 되었음이 분명하며, 이는 하나님과 민족을 향한 또다른 의미의 회심이기도 하다"고 평했다. 다만 한 교수는 애산과 신민회·상동청년학원과의 관계와 애산의 3.1운동의 의미에 대해 분명하게 제시하지 못했다고 말하고, 이것들과 관련 앞으로 애산이 어떤 방식으로 민족운동을 계속했으며 그것이 끼친 영향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것, 그것이 아마도 자신의 과제가 될 것 같다며 강연을 마무리 했다.

한편 학술대회에서는 이덕주·한규무 교수의 발표 외에도 애산의 손자인 김주황 목사(애산교회)가 애산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으며, 오세종 목사(예수원교회)가 "애산 김진호 목사의 한학에 관한 개괄적 이해"를 주제로 발표하기도 했다. 또 감신대는 이날 학술대회 외에도 감신대 백주년 기념관 로비에서 지난 15일부터 23일까지 애산의 사진과 저서, 사료들을 모아 전시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앞줄 둘째부터 이대위, 윤치호, 브록크만, 이상재, 에비손, 이인영, 홍병덕 등이 있고, 가운데 줄에 바른하트, 신홍우, 뒷줄에 구자옥, 육정수 등이 보인다.
초기 서울 YMCA 지도자들의 모습. 앞줄 둘째부터 이대위, 윤치호, 브록크만, 이상재, 에비손, 이인영, 홍병덕 등이 있고, 가운데 줄에 바른하트, 신홍우, 뒷줄에 구자옥, 육정수 등이 보인다. 뒷줄 왼쪽에서 세번째가 애산 김진호 목사이다. ©이상재선생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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