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규 목사
▲이선규 목사(대림다문화센터 대표ㅣ대림중국교포교회 담임)

본문은 십계명의 돌 판을 직접 새겨주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시내산에 오른 모세가 성막 건축에 소요되는 각종 예물에 관한 계시를 받는 장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성소를 지으라고 명령만 하신 것이 아니고 그 재료며 규모며 방법 등을 세밀하게 지시해 주셨습니다.

재료는 너희들이 백성들에게 받을 예물은 금과 은과, 놋과 같은 귀금속류를 비롯해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는 베실과 염소 털 들을 받아 지을 지니라. 이러한 성막 건축을 위해 헌물을 준비 시키시는 하나님의 계시는 세상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물질에 궁핍한 신이 아니라 모든 만물의 주인 이십니다 (학2:8) 따라서 당신의 목적하신 바를 추진해 가시는 외부의 도움이 전혀 필요치 않으신 분이 십니다.

그러나 거룩한 일에 있어서 하나님 자신의 단독적인 사역 보다는 인간과 더불어 일하시는 것을 더욱 기쁘게 여기십니다. 그러기에 인간의 정성스런 협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사실 이를 위해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출애굽 당시 애굽 백성들로 부터 많은 재물을 얻도록 조치 하셨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12:35)

이 중에는 금이나 은처럼 비싼 것도 있지만 가는 베실이나 염소 털처럼 싼 예물도 있습니다.

따라서 백성들은 자신의 형편에 따라 얼마든지 알맞은 예물을 드릴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진정 원하시는 것은 결코 물질의 양이나 질이 아니라 오직 예물을 드리는 자의 마음을 보신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사1:11) 그래서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1, 그곳에서 나를 만나리라

‘속죄’소 ’라는 단어에는 본문에 볼 수 있는 대로 난외라는 “주”가 달려 있습니다. 혹은 시온좌 (mercy seat) 라고도 합니다.

'속죄소‘의 예표 하는 바 실체는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를 구원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들에게 쏟아 붇는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지 아니하도록 친히 자신의 몸으로 우리를 막아 주셨습니다.

주님이 지신 십자가는 우리가 매달려야 했을 십자가 이었습니다.

내 손과 발에 못이 박히고 내 옆구리에 창을 받았어야 했었습니다. 그것이 율법의 요구였습니다.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이 율법의 요구에 나를 대신하여 친히 십자가로 나아 가셨습니다.

목이 말라 하시면서 “내가 목마르다” 하시며 괴로워하시면서 물과 피를 다 쏟아서 율법의 요구를 만족 시키셨습니다. 22절을 보십시다.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거기서 라는 장소는 율법을 덮고 있는 속죄 소 ‘그곳을 뜻합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인간이 하나님과 만나는 장소가 어디 인지를 보여 줍니다.

오늘 여러분이 살면서 받았던 어떤 초청보다 더욱 위대한 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거기서 내가 너를 만나리라 어디서 하나님을 찾아 헤매고 있지는 않습니까? 들판 입니까? 산속입니까? 광야 입니까?

여러분이 헤매고 다닌 그 어느 곳에서도 속죄 소를 통해 만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없었다면 그곳에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을 것입니다.

누구든지 구주 예수 십자가로 나아가지 않고는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속죄 소는 다름이 아니라 창세의 에덴에서 추방 당 함으로 이산가족이 된 하나님 아버지와 자녀들 간에 만남의 장소인 것입니다.

속죄소위에서 나를 만나 주시는 하나님은 용서와 자비를 베푸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모든 죄와 연약함과 삶의 비극들을 그곳 속죄소로 가지고 나아가십시다.

하나님을 뵈올 수 있다는 이 위대한 초청 이야말로 우리에게 최고 최대의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의 죄 많고 더러운 인간에게 지존하시고 거룩한 하나님을 뵈옵고 교제를 나누다니 이것이 가능한 일입니까 “전에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 하십니다.

“거기서 내가 너를 만나겠다고 하십니다. ”속죄 소위의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속죄 소안에 있는 하나님만이 죄인의 벗이며 죄인의 문제를 들으시며 인간의 나아갈 길을 알려 주시는 위로의 하나님 이십니다. ‘

히브리서 기자는 당당하게라는 표현을 씁니다. 그러므로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찌니라 (4:16)

이제 우리 앞에는 가로 막힌 것이 없습니다. 휘장은 걷히고 율법은 덮이고 말았습니다. 가로 막힌 휘장은 찢어 졌습니다.

하나님을 알현 하는데 어떤 복잡한 조건들도 다 걷히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가능하게 된 것은 거기에 제물과 대 제사장이 있었습니다. 이 계시가 새 언약 에서는 주님께서 친히 제물이 되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대 제사장이 되사 단번에 드려 주심으로 영원히 온전케 하셨습니다. (히10:14)

보좌 앞에 나아갈 때 혼자 나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한 성령 안에서 ‘즉 성령께서 인도해 주신다고 말씀 합니다 보좌에는 누가 계십니까? ’아버지께 나아감 ” 즉 하나님 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보좌 앞 까지 나아다가 자기 할 말만하고 그냥 돌아서지 마세요. 거기서 너와 만나고 명한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하신 말씀대로 하나님을 만난 후에 그 분의 말씀을 듣고 나오시기를 바랍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특권 입니다.

2, 영원을 사모 하는 마음을 주심

인간은 본래 하나님으로 부터 왔기에 본능적으로 하나님을 찾아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올바른 길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온갖 종교 행위와 우상을 숭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생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전 3:11)

그래서 본능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남기려 하고 시체를 미이라로 만들어 오랫동안 보존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찾지 못한 사람들은 참으로 처량한 인생들입니다. 그러나 인간에게 엄마 품을 찾는 본성이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자신의 형상을 찾으십니다. 창세기에 보면 돕는 배필인 하와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실 때 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한 육체가 될 지니라 (창 2:24)말씀이 있습니다.

여자가 부모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한 남자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을 떠나 죄인들에게 찾아오시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께서 죄인들에게 찾아 오셔서 임마누엘 하시는 모형을 성막을 통하여 보여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 (출 25: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거룩하신 분이 거주 하시는 장막이기에 성소라고 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 성막 건축의 명령 속에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숨겨 있음을 발견 할 수 있습니다.

분명히 율법으로는 그 분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갈 2:16) 선언 하셨음에도 성막을 짓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보여 주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또한 이 성막구조에는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으로 오시려는 계획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성막으로 임재 하셨던 하나님께서는 이제 우리 속에 거처를 정하시고 (요14:23)우리 몸을 성전으로 (고전3:16) 으로 삼고 계십니다

3, 하나님의 거룩한 요청

성소를 짓도록 요청 받은 사람은 누구 입니까?

그들은 죄의 사슬에서 구속함을 받고 하나님을 위하여 구별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구원 하신 백성을 너무나 사랑 하셔서 그들 가운데 거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에서 타락 이전의 사람 아담과 함께 거하셨으며 그 다음에는 성막과 함께, 그 다음에는 성막과 성전 그리고 성육신 하신 당신의 아들의 인성 안에 거하시고 오늘날은 성도들 안에서 거하십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고후 3:16)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재료들을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것을 받으라고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전에는 애굽 사람들의 노예 이었습니다.

사실 그들이 성막의 재료로 내는 것은 자신들의 것이 아니라 애굽 사람들로 부터 받은 것들 이었습니다.

(출12:35-36) 그들이 종 되었던 처지에서 천만배의 금 은, 보화와도 바꿀 수 없는 어린양의 피로 자유함을 얻었기 때문에 감격 할 뿐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무엇 보다 인간의 자원 하는 마음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가 갖추어야 할 기본자세 입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시기를 즐거운 마음으로 하지 않거든 받지 말라는 말과 같습니다.

이 말은 성소짓는일이 너무나 귀한 일이기에 그런 자들을 동참 시키지 말라는 것입니다.

교회 생활에 복된 일이 많습니다. 봉헌이 귀하고 충성이 귀하고 기도와 찬양이 귀하고 사명감이 귀하며 직분 받는 것이 귀합니다. 그런데 이런 일에 기본 필 수 자세가 있는데 감사한 마음 기쁜 마음입니다.

예배가 무엇입니까? 드리는 것입니다. 최고의 가치를 드리는 것입니다. 드리되 감사한 마음으로 기쁜 마 음으로 정성을 대해 드려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만나 주겠다고 말씀 하십니다.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22) 여러분의 것들과 여러분 자신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물이 되어 귀하게 쓰임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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