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근섭 한의원장.
임근섭 한의원장. ©미주 기독일보

수더분하고 착하고 성실한 사람! 임근섭 원장(임근섭 한의원)을 만난 기자의 느낌이다. 기자는 이런저런 기회를 통해서 임근섭 원장을 몇 차례 만났지만 늘 한결 같은 느낌이다. 주어진 일에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다. 임근섭 원장은 갈보리믿음교회(강진웅 목사) 안수집사(현, 안수집사회장)이다. 임 원장은 믿음의 부족을 절감한다. 하지만 맡겨진 일들을 주어진 현실 속에서 성실히 감당하고 있다.

임 원장은 한의사로서도 성실하다.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최선을 다한다. 한의학의 장점인 예방치료에 힘쓴다. 인체 에너지 균형이 깨지면 여러 증상이 나타난다. 이 증상이 악화되면 질병으로 발전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증상으로 병원을 찾지 않는다. 병원을 찾는다고 해도 양의학에서는 문제의 원인을 발견하지도 해결하지도 못한다. 그러나 임 원장은 에너지의 균형을 회복케 하여 건강을 유지케 한다. 소위 예방의학이다. 예방의학에 대한 관심도 환자들을 가족처럼 대하는 성실한 한의사 임 원장을 설명한다.

군대생활 중에 교회를 찾고

임근섭 원장은 어린 시절 교회를 다닌 기억이 별로 없다. 늦게 군대를 가면서 학사장교 후보생으로 입대하였다. 학사장교 후보생으로 훈련을 받으며 기독교 천주교 불교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교회를 선택했다. 이렇게 시작된 군대생활에서 종교는 기독교가 되었다. 인사 기록카드 종교란에 ‘기독교’라고 적었다.

그래서 포병 장교로 근무하는 동안에 부대 교회를 다녔다. 포병장교의 필수보직 관측장교를 마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대대장의 인정을 받아 대대 군수장교로 근무했다. 대대 참모장교로 대대 교회를 돕고 섬기게 되었다. 돌이켜 보면 무슨 큰 신앙의 확신이나 믿음은 없었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부대 교회에 출석하며 도왔던 것이다.

결혼과 더불어 시작된 영적 여행

임근섭 원장은 2001년 결혼한다. 결혼한 아내 김지영 집사는 모태 신앙인이었다. 열심히 신앙생활하는 아가씨를 만나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았던 것은 군대 교회를 다닌 덕분이었다. 그러나 막상 결혼을 하고 나니 이야기가 달랐다. 아내의 열심을 따라 신앙생활을 하기가 벅찼다. 영암의 덕천교회를 위시해서 여러 교회를 거쳤다. 이사와 직장 등의 이유로 교회를 옮겨 다니며 교회들을 섬겼다. 젊은 부부가 열심히 교회를 섬긴 것이다. 물론 김지영 집사가 신앙생활을 주도했다. 임 원장은 여전히 수동적인 신앙생활을 했다.

그러다가 임근섭 원장은 더 깊이 한의학을 공부하기 위해서 미국으로 건너왔다. 늦깎이 유학생이었다. 마침 학교 관계자들이 열심히 나가는 교회가 있었다. 갈보리믿음교회였다. 초소형 교회였다. 당시 담임이셨던 박형택 목사님 부부의 인자한 사랑과 돌봄 그리고 교회 가족들의 사랑이 큰 위로가 되었다. 박형택 목사님과 갈보리믿음교회는 유학 생활의 고달픔을 이기게 하였다.

그때부터 찬양단을 섬겼다. 늦게 합류한 김지영 집사는 피아노를 치고, 임근섭 원장은 기타를 치며 찬양을 인도했다. 찬양을 인도하는 기쁨, 주님을 섬기는 기쁨을 그 시절에 느꼈다. 찬양을 인도하면서 처음으로 스스로 주도적으로 신앙생활을 한 것이다. 그렇게 시작한 찬양단 사역은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교회를 섬기며

임근섭 원장은 현재 갈보리믿음교회 안수집사회 회장이다. 안수 집사회는 교회의 일꾼들이다. 안수집사회 회장인 임 원장은 교회 행사가 있을 때마다 이런 저런 일들을 맡아 섬기고 있다. 그는 또 셀(Cell)의 리더로 셀을 섬긴다. 셀의 리더로 셀에 속한 영혼을 섬기고 돌본다. 영혼을 돌보는 것은 참으로 보람 있는 일이다. 찬양단을 섬기며 은혜 받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또 다른 기쁨과 보람이다.

교회를 섬기며 많은 축복을 경험한다. 교회를 섬기는 것은 시간도 물질도 헌신해야 한다. 그러나 유익함이 많다. 교회를 섬기면서 이민 생활의 아픔을 치유했다. 교회를 통해서 가정도 평안하고 부부가 한 마음으로 교회를 섬기는 것은 건강한 가정을 세우는 데 아주 유익했다. 교회 생활을 통해서 자신의 문제가 해결된 것이다. 또 매 주일 찬양을 인도하고, 예배를 드리면서 긍정의 마인드를 갖게 된 것도 교회를 섬기며 얻는 축복이다.

한의학으로의 진로 변경

임근섭 원장은 우연한 기회에 한의학을 하게 되었다. 아버님이 급성 간염으로 갑자기 작고하셨다. 아들로서 아버님의 신음과 고통 앞에서 할 일이 하나도 없었다. 큰 충격이요 좌절이었다. 그래서 고분자 공학도의 길을 접고 의료 계통의 일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접하게 된 것이 한의학이다. 한국에서 한의학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마무리를 위해서 미국에 건너왔고 지난 2007년 한의학 대학을 졸업했다. 졸업하자마자 파티마 병원에서 한의사로 근무하고 경력을 쌓으며 여러 가지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

보람 있는 한의사 생활

임 원장은 한의사로 살아가는 것이 매우 만족스럽다. 환자들의 건강을 돌보고 환자들의 생명을 돌보는 것은 참으로 보람된 일이다. 얼마 전에 소화불량으로 힘들어 하는 집사님을 한의사의 눈으로 보니 심상치 않았다. 직접 충고하기는 어려워 정밀 진단을 권했는데 간암을 진단 받고 치료를 받아 건강을 되찾아 가는 모습을 보면서 큰 보람을 느낀다.

또 몇 년 전에 한국에서 오신 90대 어르신이 계셨다. 연로하신데 어르신이 미국을 찾은 것은 마지막 여행을 위해서였다. 가족들은 마음으로 장례식 준비를 하였었다. 그런데 임 원장을 만나서 치료를 받으며 건강이 회복되었다. 건강한 모습이 되어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셨다. 그 어르신의 건강 회복과 그 가족들이 기뻐했던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도 미소가 입가에 머문다. 참 보람되고 행복했던 순간이다. 이런 일들을 이 지면에 다 옮길 수가 없다. 한의사가 된 것은 참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비전과 기도의 제목

임근섭 원장은 열심히 산다. 늦깎이 유학생으로 열심히 공부했었다. 임 원장은 지금도 열심히 연구하며 공부한다. 침과 한약의 조합을 통해서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하는 중이다. 이렇게 열심히 살아가는 이유가 있다. 임근섭 원장은 한의사로 비전과 꿈이 있다.

우선 미국 주류사회에 한의학의 우수성을 알리고 싶은 꿈이 있다. 그래서 지금도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에 미국인들을 만나기에 용이한 시더사이나이 병원 근처 한의원에서 치료를 한다. 이 지역에서 운영하는 임근섭 한의원(Lim Acupuncture & Herbs Clinic)에는 유명한 영화배우나 감독들이 심심찮게 찾아와 진료를 받는다. 임근섭 원장은 한의학의 우수성을 확인한 유명인사들을 통해서 더 많은 미국 주류사회 환자들을 치료하기를 소망한다.

끊임없이 연구하는 임 원장은 원격기치료와 Tap Acupuncture(두드림 침술)을 개발하여 활용중이다. 특히 Tap Acupuncture는 침을 두려워 하는 미국인이나 아이들을 위해 임 원장이 개발한 치료법이다. 혈을 눌러서 치료하는 기법인데 반응이 좋다. 임 원장은 스스로가 개발한 이런 치료법들이 널리 전파되어 활용되기를 소망한다.

임근섭 원장은 기독교인으로 선교적 사명을 위해 기도한다. 의료 활동을 통해서 선교사들을 돕고 선교지를 방문하는 일들을 기도한다. 아직은 여러 가지로 준비가 미흡하다. 그러나 때가 되면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리라 다짐하며 기도한다.

임근섭 한의원 원장은 전문 의료인으로 세상을 밝히기를 원한다. 특히 기독 의료인으로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며 나아가 한국인 한의사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미국 주류 사회를 열어가는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오늘도 열심히 연구하고 성실하게 치료에 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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