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그리스도만 남을 때까지

[책소개]

말기암과 투병하며 만난 하나님...

병상에서 기록한 허운석 선교사의 진솔한 고백

'주님은 왜 병을 허락하실까? 병들면 저주이고, 건강하면 축복일까?'

허운석 선교사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은 말기암과 투병하며 그가 직접 들은 원망의 목소리다. 많은 사람이 아픈 그를 보며 "하나님을 위해 일평생을 헌신했으면 복을 받아야지 어째서 암에 걸리는 저주를 받았을까? 당신을 보며 어떻게 하나님을 믿겠는가? 이것은 저주이니 하나님 앞에 회개하라"면서 하나둘 곁을 떠난 것이다. 그러나 허운석 선교사는 욥의 삶에서 그 해답을 찾는다. 가족과 친구에게 외면과 거절을 받고 무정한 고통을 받은 욥의 삶에서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며 고통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한 것이다. 고통은 부활을 경험하는 터널이다. 우리가 완전한 멸망에 이르러 남은 것이 없을 때에야 비로소 어둠과 죽음의 돌들이 보석으로 변한다.

고통 중에서도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이유

《내가 왕바리새인입니다》 에 이은 허운석 선교사의 두 번째 책이 출간됐다. 아마존에서 22년을 사역하며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인디오를 사랑했지만 폐암과 말기암으로 투병하다가 2013년 9월 마침내 주님 품에 안긴 허운석 선교사. 그가 생전에 남겨 두었던 복음의 메시지들은 성도들의 입소문을 타고 전해져 수많은 영혼을 살린 것으로 유명하다.

이 책에는 허운석 선교사가 하나님의 품에 안기기 전 4년간의 일기와, 말기암으로 고통받으면서도 끝까지 복음을 전했던 마지막 설교를 교차로 편집했다. 어쩌면 원망과 불평을 해도 모자를 고통 중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했던 다윗과 같은 가슴 절절한 신앙고백, 그리고 그 신앙고백대로 살기만을 죽기까지 간절히 바랬던 한 크리스천의 인생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의 고백은 거칠지만 꾸밈이 없고 진솔하다. 그의 메시지는 생명력이 있어 우리의 영혼을 살린다. 이 책의 메시지는 판에 박힌 뻔한 이야기가 아니다. 오직 죽음 앞에 섰던 그였기에 알 수 있었고 외칠 수 있는 메시지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진짜 신앙이 무엇인지, 하나님을 따라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다.

[저자소개]

허운석

십자가의 증인으로 한평생을 살았던 허운석 선교사는 2010년 말기 암 진단을 받았다. "하나님께 그렇게 헌신했으면 복을 받아야지 왜 암에 걸렸느냐"며 손가락질하는 사람들 앞에서 허운석 선교사는 오히려 "죽음과 투쟁하는 그 고통이 예수 그리스도를 덧입는 축복의 통로"였다고 고백하며, 매일 진통제를 수십 알씩 복용하면서도 복음 전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안양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하고 김철기 선교사를 만나 결혼했다. 서울의 한 교회에서 중고등부 전도사로 섬기다가 경상북도 금릉군의 작은 시골 교회에서 6년간 사역했으며, 1991년 신촌교회 창립 35주년을 기념하여 브라질 아마존에 파송되었다. 아마존 인디오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17개 동 규모의 신학교를 세웠으며, 100여 명의 졸업생과 50여 명의 목사를 배출했다.

2013년 9월 12일, 아낌없이 사랑하고 헌신한 그녀는 마침내 주님의 품으로 돌아갔다.

저서로는 《내가 왕바리새인입니다》가 있다.

[목차]

그의 삶에서 그리스도를 만나다

프롤로그 고통이 우리를 은혜의 강으로 인도합니다

1 그리스도만 남을 때까지 내 마음을 찢으소서

일기 2010년 4월 8일 ~ 2011년 1월 28일

말기암 환자가 되었습니다

마지막 설교 I

고통 뒤에 부활의 길이 있습니다

2 그리스도만 남을 때까지 당신의 사랑으로 채우소서

일기 2011년 2월 28일 ~ 2011년 8월 9일

못다 한 사랑에 짓물렀습니다

마지막 설교 II

깨뜨리고 부수어 사랑의 자리를 만듭니다

3 그리스도만 남을 때까지 부활의 꽃을 피우게 하소서

일기 2011년 12월 25일 ~ 2012년 2월 12일

저는 한없이 연약한 그릇입니다

마지막 설교 III

하나님 앞에 굴복할 때 생명의 길이 열립니다

4 그리스도만 남을 때까지 믿음 하나 얻게 하소서

일기 2012년 3월 25일 ~ 2013년 9월 8일

내가 불을 지나갑니다

마지막 설교 IV

내가 죽어야 진정한 부흥이 옵니다

에필로그 내게도 그리스도만 남았습니다 204

[프롤로그]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는 허운석 선교사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기도하며 동역했던 남편 김철기 선교사가 당시 홈페이지(www.gramin.org)에 기록했던 글을 편집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은혜의 강을 지나고 있습니다. 아내가 암 투병을 시작하면서부터 주님의 은혜에 잠기게 되어서 은혜의 강, 고통의 강을 지나고 있습니다.

유한한 생명을 가진 우리가 죽음 앞에 맞닥트린다는 것, 그것보다 더 큰 은혜가 어디 있겠습니까? 누구도 미리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 맞닥트리기까지는 먼 훗날 일이라고 굳게 믿는 것이 죽음인데, 그 죽음 앞에서 투쟁하며 주님을 더 깊이 경험하고 그분의 은혜와 자비를 온몸으로 확인하고 있으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천지를 창조하시고 인간을 지으신,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서 그분의 존재를 처절하게 인식하며 감사합니다. 사랑이신 하나님, 그러나 아담의 죄와 관련하여 흙으로 돌아가라는 하나님의 공의로움 앞에 누구도 비껴갈 수 없음에 감사합니다. 생명의 주이신 하나님,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존전에서 주님이 아니시면 한순간도 숨을 쉴 수 없는 피조물의 유한함에 감사합니다. 통증으로 고통당하는 아내를 지켜보며 고문을 당하는 것 같고 무너져 내리는 마음을 가질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주님께서도 아내와 함께 고통을 겪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더불어 온 세상에서 질병으로 또는 여타의 문제들로 고통당하는 사람들과 마음을 열고 함께하는 자리에 설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암 투병으로 모든 것이 약해져서 항상 도움을 필요로 하는 아내를 바라보며 긍휼의 샘을 깊어지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대신 아파 줄 수 없어서, 대신 고통하는 자리에, 죽음의 자리에 설 수 없는 나의 무력함에 통곡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주님을 배신하지 않는다면 내 몸을 불태워서라도 아내의 건강을 회복시켜 주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최선의 일이고, 하나님의 뜻이라면 무엇이든 받아들이겠다고 고백하지만, 그럼에도 건강을 회복시켜 주시기를 바라며 절규하는 내 인간적인 약함에 감사합니다.

30년을 넘게 함께 살면서 그동안 아내가 내게 했던 수많은 권고와 충고들을 무시하고 내가 원하는 대로 고집했던 무지함과 완고함에 대하여 이제는 돌이키며 마음을 찢게 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더러 내게 몇 가지 질병(죽을병이 아닌)으로 통증이 있을 때 '이것들을 견디면서도 이렇게 힘든데 죽음의 공포를 동반하는 암의 통증을 겪으면서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을 할 수 있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내게 얼마간의 통증이라도 주어서 아내의 고통을 이해하게 해주심을 감사합니다.

주님 앞에 더 간절하게 그분을 바라며 죄인으로 서게 하시고 마음을 토하게 하시고 그동안 살아온 인생 전체를 돌아보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가끔은 아내가 통증이 버거워 짜증을 낼 때, 저렇게 짜증을 내면서라도 계속 생존하기를 바라며 감사합니다. 멈추지 않는 통증 때문에 무엇을 먹는 것도, 숨을 쉬는 것도 힘들 텐데, 그럼에도 남겨질 가족들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고 자신을 위하여 울지 않고 형제들을 사랑하게 해주셔서 눈물겹게 감사합니다.

아내의 암 투병이 시작되고 여러 사람들이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어떤 이들은 그렇게 헌신했는데 어떻게 하나님이 암을 허락하실 수 있느냐며 시험이 들었습니다. 2년 전 암이 재발된 후에는 더 많은 이들이 우리를 떠나갔습니다. 그럼에도 보석 같은 주님의 사람 몇몇이 곁에 남아 우리의 고통을 함께 나누어 주었습니다. 누가 하나님의 사람이고, 누가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형제인지 알게 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죽음의 공포를 겪어 보지 않은 이들이 아주 쉽게 "죽으면 되지, 뭐가 그렇게 어렵느냐" 하는 경박한 표현을 들으면서 과거에 나도 저렇게 쉽게 고통의 문제를 다룬 것들에 대하여 회개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그동안 함께 살면서 아내를 향해 가졌던 모든 기대가 사라지고, 생존 그 자체만으로도 감사하며 내가 필요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아내가 나를 필요로 하는 까닭에 사랑하는, 그러므로 비로소 조건 없는 사랑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아내의 암 투병이 시작되고 우리 아이들, 수산나와 지훈이 모두 전보다 더욱 주님을 가까이하며 변화되며 서로 사랑하는 가족임을 확인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은혜의 강을 함께 지나는 우리 아이들도 훗날 고통을 당하는 많은 이들에게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위로를 전하는 하나님의 사람들로 준비시켜 주심을 감사합니다.

이 모든 일들을 허락하셔서 우리를 변화시키고 감사하게 하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자기 고통으로 인하여 우리를 은혜의 강으로 인도하는 아내에게 감사합니다.

[본문 맛보기]

<38-43쪽 중에서>

2010511

병원에 안 갔다.

욥기서를 읽고 있다.

음식은 땅으로부터 나오나 그 밑은 불처럼 변하였도다 그 돌

에는 청옥이 있고 사금도 있으며 욥 28:5-6

하나님이 지정하시는 때에

어린아이와 힘센 자들에게 양분을 공급하기 위해

기름졌던 땅은 오랫동안 불모의 땅이 되어야 한다.

단 하나의 생명체도 없이 불에 의해 소멸되어야만 한다.

그 땅은 바로 나 자신이다.

나의 덕도, 주님 주셨던 은사들도, 명예로움도, 나의 공로도

불의 심판으로 소멸되어야만, 나의 재료가 어디에 속해 있는지

확인될 것이 아닌가.

오직 그리스도만이 내게 남으시도록,

하나의 생명체도 남김없이 진멸되고 전멸당해야만 한다.

그 땅, 바로 내가 완전한 멸망에 이르러 남은 것이 없을 때

어둠과 죽음의 돌들이 보석으로 변한다. 할렐루야!

주님의 지혜의 비밀이여!.

201068

진통이 부쩍 심해졌다.

주님의 손발이 못 박혔을 때의 고통이 이 정도일까?

오늘도 나는 그 비틀린 주님의 손가락, 발가락을 떠올린다.

벌레처럼 찢기는 진통에 나도 오그라진다.

그래도 주님, 주님을 부르짖으니

기도 안에 그분의 임재가 느껴진다.

진통제로 고통을 다스려 잠깐 동안 무통 가운데 있을 때는

다 나은 줄로 착각하여 어느새 주님을 멀리하고

한껏 들떠 있는 나를 목격한다.

그렇다고 견딜 만큼의 고통을 계속 달라고 간구하는 기도는

나오지 않는다.

나에게는 그런 용기가 없다.

하여 나는 오늘도 펑펑 운다.

2010619

욥은 무정한 고통을 받았다.

그의 사랑하는 열 자식들, 그를 덕망 있게 하고 자랑스럽게 해준

하나님의 축복과 풍성한 은사들.

그러나 그는 곧 수천 마리의 양과 소와 낙타를 한순간에 잃었다.

존영을 받은 그의 몸은 전체가 구더기로 덮여

티끌과 재 위에 앉아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높이 솟은 만큼 심하게 곤두박질치게 하신 주님.

그의 세 친구는 무지막지하게 그를 괴롭히는 말을 난사하고

잔인하고 냉혹한 단죄로 그를 압박하였다.

하나님과 사람들 모두에게 외면과 거절과 버림을 받은

욥의 모습에서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이 보인다.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예수님의 아픈 음성이 들린다.

욥에게 남은 것은 수욕과 정죄와 부끄러움과 쓰레기처럼 버려진

자신의 모습뿐.

그 모습은 흡사 갈보리 언덕에서 능욕을 당하며 버림을 당한

예수님의 모습과 같다.

고통은 불이 되어 나의 모든 것을 태운다.

내 속의 모든 것을 들어 처단하시고 소멸시키신다.

주님께 받았던 은혜와 은사, 능력 안에 똬리 틀고 앉아 있는

내 자아가 분리되어 진멸할 때까지.

오로지 주님만 남을 때까지.

고통에 허우적거리는 내 영혼은

주님께로 가는 속도를 높이고 있다.

나는 주님을 사랑한다.

그 어느 것도 나를 주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

2010625

탈진과 구토로 다시 병원에 실려 갔다.

계속해서 주님께 고했다.

빨리 데려가 달라고....

그리고 주님과 실컷 싸웠다.

아빠 밉다고....

<62-65쪽 중에서>

나는 고통 가운데 있을 때 욥기를 묵상하며 깊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욥의 고통이 이해가 되고, 공감이 되었습니다. 욥은 몸이 다 썩어서 뼈가 드러날 때쯤 하나님이 나타나셨다고 했는데, 나도 이쯤 되면 하나님이 나타나시지 않을까 기대하기도 했습니다.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었습니다.

왜 하나님은 욥이 가진 모든 소유와 자산을 다 탈취하시고, 그의 모든 것을 앗아가셨을까요? 욥의 재산, 자녀, 그의 의와 덕과 명예와 수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조차 모두 다 무참히 짓밟히게 두셨을까요? 왜 그를 완전히 추락한 인생으로 이끄셨을까요? 그리고 왜 주님은 내게 이런 암을 허락하셨을까요?

주변 사람들은 내가 암이 재발되는 걸 보고 참 운도 나쁘다며 혀를 찼습니다. '선교사가 그 많은 수고를 했으면 복을 받아야지 저렇게 죽을병에 걸리는 저주를 받아서 쓰겠는가?' 하는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습니다. 목사님들조차 "아마존에 가서 그렇게 고생했는데, 하나님은 복은 못 주실망정, 암을 주시다니..." 하며 안타까워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나를 보며 어떻게 하나님을 믿겠느냐며 더 원망했습니다. 은혜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둘씩 나를 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를 보고 있는 것 자체가 힘들었던 것입니다.

욥이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일생을 하나님 말씀대로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친구들과 아내에게서 독설을 듣고, 외면을 당했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억울함에 몸부림쳤을 것입니다. 하지만 욥은 꾹 참았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욥에게 나타나셔서 창조에 대한 이야기를 하십니다(욥 38:4). 나는 처음 이 구절을 읽으며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왜 하나님은 갑자기 창조에 대한 이야기를 하신 걸까요? 왜 악어(리워야단) 이야기를 하시고 하마(베헤못) 이야기를 하셨을까요? 만신창이가 된 욥은 그런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했을까요?

나는 욥의 고난을 묵상하면서, 그리고 사람들이 나를 보며 하나님께 실망하고 원망하는 마음을 갖는 것을 보면서 '아, 내가 부활로 가는 길목에 있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삼 일 동안 무덤에 계시고, 부활하신 그 사건에 나를 동참시키기 위해 일하고 계시는구나!' 하는 것을 몸소 체험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극도로 고통을 당하면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마 27:46

하나님이 십자가의 예수님을 거절하셨던 이유는 바로 그 주님을 부활로 다시 일으키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아마존에 서의 나의 생애 또한 '내 뜻대로 하지 마옵시고, 주님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하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드린 예수님의 기도로 이루어진 결과였습니다.

결국 욥도 저도 은혜의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는,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눈으로 보게 되는 값진 경험을 했습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욥 42:5

부활의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친밀히 만나는 자리까지 나아갔다고 하는 그 축복을 내가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 암을 발견했을 때 하나님은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겉이 깨어졌지 속이 깨어졌느냐? 겉으로는 안 그런 척했지만 이제부터 속이 좀 깨져야 되겠다."

그때만 해도 나는 하나님께 삐쳐서 "하나님, 그럼 관두세요. 저도 너무 고단하거든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부활 사건에 동참하자 기도가 달라졌습니다. 그 후로 나는 '내 뜻대로 하지 마옵시고, 주님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매일 '제게 암을 주신 주님, 고난을 통해 저를 부활에 동참시키려고 암의 재발을 허락하셨다면, 모든 것을 주님의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잘 먹지도 못하고 걸을 힘조차 없는 상황에 처하자 '내가 굶어 죽겠구나' 싶다가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는 요청을 받으면 거절하지 않고 썩은 물을 받는 비닐봉지를 치마 속에 숨긴 채 초청해 준 교회로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신기한 것은 그전까지는 정신도 없고 목소리도 안 나오다가 강대상 위에만 오르면 힘이 나서 목소리가 우렁차진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정말 나를 잘 부려먹는 분입니다. 아픈 나를 세워서 하나님의 귀한 자녀에게 주님의 말씀을 선포하게 하십니다. 그런 하나님이 밉다가도 그분께 감사하게 됩니다.

<75-76쪽 중에서>

죽음 앞에 선 사람들의 심정은 굉장히 다릅니다. 나도 죽음 앞에 선 사람입니다. 매일 죽음에 대한 압박감에 헐떡거리고 삽니다. 생명을 가진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두려운 것이 죽음입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심판받은 것은 바로 죽음입니다. 사실 죽음처럼 무서운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죽음처럼 고독하고, 슬프고, 외롭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지는 아픔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죽음은 가장 끔찍한 고통이며, 아픔이며, 슬픔입니다. 아직 젊은이들은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늘 죽음을 깊이 묵상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심장을 갖지 못하면 진실한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지 못하면, 남의 아픈 마음을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남의 마음과 고통을 헤아리지 못하고 정죄한다면,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될 수 없습니다. 이처럼 구원이라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에 내 마음이 함께할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투병으로 헐떡거리고 있을 때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얘야,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죄악이 무엇인지 아느냐? 내 심장을 너희들이 갖지 못한 것이다. 복음을 전하는 자는 많지만, 내 마음을 가진 자는 적다. 내 마음을 품을 때 너희는 다른 이의 마음을 공감하고 이해하는 능력이 생길 것이다. 그러면 너의 이웃이 너를 보며 나를 느낄 것이며, 나의 사랑을 받고 회복될 것이다."

나도 그 말씀을 깨닫기 위해서 죽음을 지불하고 있습니다. 나는 감히 주님한테 살려 달라는 말도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살아야 주님한테 유익한지, 아니면 죽어야 주님한테 유익한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혹시 내가 살아서 주님께 폐를 끼치는 행동을 하고 다니면 어쩝니까? 그러면 주님은 또 얼마나 괴로우실까요? 그래서 나는 살려 달라는 기도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166-175쪽 중에서>

2012325

항암치료를 받으며 타는 듯한 고통에 온몸이 부서지는 것 같다.

내 입에서 "주님, 가능하면 빨리 죽여 주세요"라는 말이

자꾸만 흘러나온다.

홀로 신음하며 고통을 참는다. 고통과 싸운다.

육신의 몸을 빨리 버리고 싶은 마음뿐이다.

몸이 아파 괴로울 때 몸은 저절로 주님을 반역한다.

온갖 불평을 털어 놓는다.

주님은 인색하며 인자가 없으시다고 소리친다.

2012년 5월 27일

주님을 따라 나서는 길은 왜 이리도 좁고 협착한가!

주님이 아니시면 누가 이 길을 찾아갈 수 있단 말인가?

죽음으로 이르는 이 길을 누가 가려 할까?

주님을 만나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이 지독한 여정에

누가 동참하려 하겠는가?

2012729

만약에 주님이 나에게 이런 고통을 허락하지 않으셨다면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생각해 본다.

역시 지독한 교만으로 남들을 내려다보며 살았을지 모른다.

201383

나의 노래이신 하나님.

나는 밤새 당신을 노래했네.

나의 노래가 되신 당신.

당신의 손이 나를 만드실 때 거친 흙이 되지 않기를.

다만 부드러운 흙이 되어 고통이나 노여움이 없기를.

7년의 투병이 만들어 낸 나의 마음을 드리네.

아, 주님! 당신의 뜻을 민첩히 아는 마음 하나

죽기 전에 얻게 하소서.

무엇에나 "예"라고 얼른 답하게 하소서.

주께서 내게 베푸시는 그 무엇에 온 힘 다해 사랑으로

"아멘"이라고 말하게 하소서.

당신 마음 헤아리는 딸 되었으면 하는 소원을 다시금 올립니다.

오늘은 퇴원하여 집에 가는 날이랍니다.

9일 동안 고통스러웠던 시간을 뒤로하고,

괴로울 때마다 부르짖는 내 심령은

한 시간도 지체 없이 주님이 나를 불러 주시기를 소원했지요.

때로는 너무 지루한 나날이 힘겨워

그렇게 주님께 염장을 지르는 나를 봅니다.

상처받은 내 마음은 주님께도 생채기를 드립니다.

주께서 내게 주신 이 통증은

오늘도 누군가를 위해 드려지는 산제물의 제사인가,

이 세상 고통 가운데 감사제와 번제로, 자신을 향기로운 제물로

주님께 드려지는 영혼인가, 생각해 봅니다.

다시금 주께서 주신 잔을 향해 겸손하고 온유하기를 청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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