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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감동인터뷰] 션과 혜영의 '완벽한 하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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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동이 작성일17-03-06 18:32 조회1,43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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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7일 서울 한남동에서 만난 가수 션(본명 노승환·45)과 배우 정혜영(44) 부부는 "오늘이 만난 지 5898일 되는 날"이라고 했다. 션은 "매일 아침 눈뜰 때면 습관처럼 오늘이 아내 혜영이와 만난 지 며칠이나 됐는지 헤아려보곤 한다"고 했다. 그가 탁자 위에 올려놓은 휴대전화 잠금 화면에도 'D+5898'이라고 새겨진 숫자가 반짝거리고 있었다.

완벽한 부부가 세상 어디 있을까. 사람들은 이 두 사람을 보며 여전히 이렇게 마지막 한 톨 미심쩍음을 거두지 못한다. 2004년 결혼하고 국제 어린이 양육 기구 한국컴패션, 홀트아동복지회, 푸르메재단 등을 통해 어느덧 40억원가량을 기부해온 두 사람이다. 필리핀·우간다·아이티·북한 등에 있는 어린이도 900여명이나 후원하고 있다. 매달 후원 아동에게 내는 기부금만 3000만원 넘게 든다. 이것만으로도 보통 사람은 따라잡을 수 없는데, 두 사람은 결혼 후 지금껏 단 한 번도 큰 소리로 싸워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연애할 때보다 지금이 훨씬 더 행복하다고도 말한다. 자식 복도 많아서 하음(11)·하랑(10)·하율(8)·하엘(6) 네 남매를 낳아 키운다. 대체 이들은 흠과 그늘을 어디에 숨겨놓은 걸까.

션과 정혜영은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니까 연극하는 건 아니냐고 묻고 싶은 거죠? 그런 말 너무 많이 들어서 이젠 아무렇지도 않아요. '부부싸움 몰래 하고 카메라 앞에서만 웃는 것 아니냐' '대체 재산을 어디에 얼마나 숨겨놨느냐'는 식의 말도 참 많이 들었어요. 그때마다 이렇게 대답해요. 우린 아직 집도 없고 보험도 없고 적금도 없지만 그래도 오늘 가장 행복하다고요. 마음만은 지금 누구보다 넘치게 부자라고요." 처음부터 소화하기 쉽지 않은 대답이었다.

“다정하게요? 그거야 우리 부부 전문이죠!” 사진가가 “좀 더 다정하게”라고 주문하자 가수 션과 배우 정혜영 부부가 기다렸다는 듯 콧등을 마주댔다. 그 이후로는 별다른 연출이 필요 없었다. 두 사람은 눈길만 스쳐도 웃음을 머금었으니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의 머리칼을 쓸어넘겨 줬으니까. 그건 13년차 부부만이 빚어낼 수 있는 장면 같기도 했고 또 아닌 것 같기도 했다. / 한국컴패션

집도 보험도 적금도 없이 40억 기부

―결혼 13년째인데 아직 집이 없나요.

정혜영 "전셋집에 살아요. 여섯 식구 전부 건강보험·국민연금 빼고는 보험이나 적금 같은 것 없고요. 처음부터 계획했던 건 절대 아니고, (남편을 바라보며) 이 남자 덕분에 이렇게 됐죠(웃음)."

션 "시작은 소박했어요. 2004년 10월 혜영이와 결혼하면서 '이토록 사랑하는 여자와 가정을 이루게 됐으니 정말 감사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매일 하루 1만원씩 따로 모아 이웃과 나누고 싶어졌고요. 그렇게 결혼기념일마다 365만원씩 기부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죠. 그게 어느 순간 돌아보니 900명의 아이, 40억원으로 불어나게 된 것이고요(웃음)."

션·정혜영은 그렇게 매년 결혼기념일마다 365만원을 노숙인, 무의탁 노인에게 밥을 나눠주는 '밥퍼나눔운동본부'에 기부하기 시작했다. 정혜영은 "이때만 해도 우리의 나눔 활동은 그게 전부일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웃었다. 또 다른 후원은 2005년에 시작됐다. 정혜영이 첫째 아이를 갖자 션이 이를 기념하기 위해 국제 어린이 양육 기구 한국컴패션을 통해 케냐에 있는 쉐일라라는 아이와 일대일 후원을 맺으면서다. 후원 아동은 2007년 무렵 6명으로, 2008년 정혜영이 필리핀 봉사 여행을 다녀오면서 100명으로 불어났고 2011년엔 아이티 어린이 100명과 추가로 결연을 맺으면서 200명이 돼버렸다. 한국컴패션 측은 "두 사람이 현재 우리를 통해 총 300명의 어린이를 후원하고 있다"고 했다. 다른 단체 후원까지 합치면 900명이다. 이날 두 사람이 한남동 컴패션센터에 온 것도 후원 어린이 중 두 명이 지난 7~8년 동안 두 사람에게 꾸준히 받은 후원금으로 어느덧 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으로 자라나 '(결연) 졸업'을 하게 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온두라스에 산다는 이셀라(19), 볼리비아에 사는 바리나(18)가 그 두 명의 졸업생이었다.

―후원 아이가 6명에서 200명으로 불어나 버린 기간이 특히나 짧더라고요.

정혜영 "아, 그건 정말이지 운명이자 음모랄까(웃음)? 그 필리핀 여행은 원래 남편이 가기로 돼 있었어요. 저는 그때 둘째를 낳은 직후라서 해외여행을 가기도 쉽지 않을 때였고요. 그런데 남편이 아이 6명 후원을 모두 제 이름으로 해놓았던 거예요. 필리핀에 있다는 아이에게서 편지가 왔는데 비뚤비뚤 크레용으로 '아이 러브 마미, 혜영'이라고 써놓았더라고요. 남편이 그걸 보여주면서 '혜영아, 아무래도 네가 가야 될 것 같아' 했고요. 어후, 그걸 읽고 어떻게 안 가요. 결국 제가 갔죠."

정혜영은 그렇게 필리핀으로 날아가 편지를 보낸 클라리제라는 일곱 살 여자 아이를 만났다. 아이는 나무와 함석지붕으로 지어진 집에서 살면서 땔감을 긁어다 불을 피워 밥을 짓고 시장에서 물건을 팔아 동생들을 돌보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정혜영은 마음이 몹시 복잡해졌다. 당시 션과 정혜영은 서울 마포 전셋집에 살고 있었고, 신혼부부답게 매달 적금을 붓고 돈을 모아 내 집을 마련할 꿈을 키우고 있었다. 집에 도착한 정혜영은 고민 끝에 션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 집 사려고 모은 돈 말야. 그 돈으로 집 사지 말고 200명 아이를 후원하는 건 어떨까…. 어떻게 생각해?" 션의 대답은 들어볼 것도 없이 "정말 좋아"였다.

―아무리 그래도 집을 포기하는 게 쉽던가요.

정혜영 "아니, 당연히 안 쉽죠. 얼마나 잠을 설쳐가며 고민했는데요(웃음). '내가 미쳤나' '내가 어쩌다 봉사 여행을 왔지' '이게 다 남편 때문이야' 이런 생각 수백 번도 더 하다가 내린 결정이었어요!"

션 "제겐 사실 집이 별 의미가 없었어요. 어릴 때부터 부모님과 떨어져 살았고, 집을 꼭 사야겠다는 생각 같은 것도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아내는 달랐을 거예요. 여자에게 신혼집을 장만한다는 건 정말 큰일이잖아요. 아마 제가 그 필리핀 여행을 갔다면 그때 아내에게 집을 포기하고 200명의 아이를 후원하자고 말할 수 없었을 거예요."

정혜영 "어우, 만약 남편이 저한테 '집 포기하고 아이 후원할래?' 그랬다면 전 '말이 되느냐'고 난리 쳤을 걸요? 이게 다 클라리제가 편지에 '엄마'라고 써서 그래요(웃음)!"

―그럼 이 모든 게 결국 션의 엄청난 계획이었던 건가요.

션 "그분(하나님)의 계획인 거죠(웃음)."

션은 서울 이태원에서 나고 자랐다. 미주·중동 지역을 돌며 건설 노동자로 일하던 아버지를 따라 초등학교 5학년 때 미국령(領) 괌으로 이민을 가게 됐고 거기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수학을 제법 잘해서 괌 대표로 미국 수학 경시대회에도 참가했다. 그러다 열여섯 살 무렵 가출했고 그 이후 부모님과 떨어져 살다가 1990년대 중반 귀국해 댄서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왜 가출을 했던 거죠.

“이젠 기억도 잘 안 나요. 부모님과 사소한 걸로 옥신각신하다가 욱하는 마음에 집을 나왔어요. 며칠 친구 집에 얹혀 지내다가 다시 집에 가서 ‘전 이제 다 컸으니 독립하겠다’고 했어요. 그때부터 온갖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식당에서 포크·나이프 탁자 위에 세팅하고 손님이 먹고 난 그릇 치우는 걸 ‘버스 보이’라고 하거든요. 월급도 적고 팁도 못 받는 일인데 그것부터 시작했어요. 여름방학 때는 막노동을 했고요. 한 시간에 5달러씩 하루 10시간 일하면 50달러를 현금으로 받을 수 있었어요. 그렇게 닥치는 대로 일해서 모은 돈으로 룸메이트 찾아 방 얻어 살고, 그러다가 스무 살쯤 한국에 온 거죠.”

―지금 모습을 보면 당시 반항했던 게 참 의외인데요.

션 “네…. (잠시 할 말을 찾더니) 부모님과 그렇게 잘 지내질 못 했어요. 지금도 그렇게 가깝다고 할 수는 없고요. 일일이 말할 순 없지만 우여곡절 많은 사춘기 시절을 보냈어요. 그러다가 열여덟 살 무렵 처음으로 힙합 음악을 듣게 됐고요. 그전까진 사실 음악을 제대로 들어본 적도 없어요. 그렇게 갑자기 힙합에 확 빠져서 춤을 추기 시작했고, 그러다가 서울에서 가수를 하게 된 거죠. 남 앞에 서는 걸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성격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연예인까지 된 거죠(웃음).”

션과 정혜영이 만난 건 현재 YG 사장인 양현석의 생일 파티에서다. 크리스마스였다. 두 사람은 서로 얼굴도 모르는 사이였다. 정혜영은 당시 션을 이렇게 기억한다. “무슨 남자가 말이 한마디도 없더라고요. 그날 이후 매일같이 제게 전화를 걸어오는데, 전화를 해서도 별말 안 하고요! ‘아니, 뭐 이래?’ 생각했는데, 아주 가끔 툭툭 던지는 말이 뭐랄까 좀 남달랐어요. 제가 아는 어떤 연예인과도 다른 느낌? 한창 연애할 때도 만나면 만날수록 신선했어요. 가수들은 보통 새벽까지 음반 녹음하고 낮까지 자고 저녁에나 나오잖아요. 이 남자는 밤새 녹음하고 아침에 전화 걸어와서는 ‘뭐해?’ 하고 물으면 ‘응, 이제 새벽 예배 간다’고 하는 거예요(웃음). 저로선 참 어이도 없고 놀랍기도 하고 그랬죠.”

션은 그러나 이 시절을 조금 다르게 설명한다.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시기였어요. 가수이고 연예인이니 화려하게 사는 것 같았지만 그렇게 섞여 놀면서도 마음은 늘 괴로웠죠. 그래서 새벽마다 기도하긴 했는데 평안하질 못했고요. 내 안에서 엄청난 방황과 충돌이 있었죠. 그러다가 음반 녹음 때문에 미국에 10개월 정도 머물면서 그곳에서 매일 아침저녁으로 홀로 기도했어요. 그러다가 어느 날 깨달았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았다고요?

“네…. 그전까지 전 항상 보잘것없는 환경에서 자라났고, 아프고 외롭게 컸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때 그날 그 새벽녘 기도를 통해서 알았어요. 신의 사랑을 제가 이미 넘치게 받고 있다는 걸요. 그렇게 뜨겁게 사랑받고 있으니 이제부턴 저도 남에게 사랑을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한국에 와서 혜영이와 결혼했고, 그날부터 깨달은 걸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했죠. 믿음은 앎이 아니라 삶이라는 걸, 그렇게 알았으니까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션이 덧붙였다. “나처럼 자랑할 것 없는 가정에서 자라난 사람이 지금 이토록 소중한 가정을 일구게 된 것, 남들 앞에서 말 한마디도 못하던 성격의 아이가 연예인이 되고 무대에서 공연을 하게 된 것, 글이라곤 한 줄도 쓸 줄 모르던 사람이 책을 몇 권씩 펴내고 그 인세를 또 이웃에게 기부하게 될 수 있게 된 것…. 이 모든 것이 어쩌면 그날부터 시작된 일일 거예요.” 정혜영이 옆에서 미소 지었다. “남편은 그날부터라고 하는데요, 저는 실은 혼자 알고 있었어요. 남편은 그 이전부터도 그 사랑을 이미 깨닫고 있는 사람이라는 걸요. 솔직히 제가 이 남자와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주변 친구들은 다들 반대했어요. ‘너랑 정말 안 어울린다’면서요. 민망해서 그 친구들에게 제 속마음까지 말할 수는 없었어요. ‘너희가 모르는 뭔가가 이 남자에겐 분명히 있다’고요. 그렇지만 결혼하고 나서 확실히 알았죠. 제가 사람 하나는 정말 잘 봤다는 걸요.”

고마워 고마워 고마워

(왼쪽부터) 첫째 하음, 셋째 하율, 둘째 하랑, 세 아이와 함께 선 정혜영·션 부부. 아직 막내 하엘이 태어나기 전 모습이다. 션은 “지금껏 아내 혜영이 쓰레기를 버리게 하거나, 화장실을 청소하도록 내버려둔 적이 한 번도 없다. 그게 바로 우리 가족 행복의 비결”이라고 했다.
(왼쪽부터) 첫째 하음, 셋째 하율, 둘째 하랑, 세 아이와 함께 선 정혜영·션 부부. 아직 막내 하엘이 태어나기 전 모습이다. 션은 “지금껏 아내 혜영이 쓰레기를 버리게 하거나, 화장실을 청소하도록 내버려둔 적이 한 번도 없다. 그게 바로 우리 가족 행복의 비결”이라고 했다. / 홍성사
많은 사람은 여전히 션과 정혜영이 대체 어디서 돈이 나서 그렇게 기부를 하는지 궁금해한다. 션은 “강연 다니면서 받는 강연료, 내가 직접 운영하는 온라인 의류 쇼핑몰 수익금, 아내와 종종 찍는 광고 수익, 책 인세 등으로 낸다. 나 혼자 도저히 기부금을 낼 수 없을 때는 홍보를 다니며 기금을 모으기도 한다”고 했다. 그는 작년 어린이재활병원 건립 기금을 모으기 위해 10㎞ 마라톤을 뛰었고, 작년 말엔 ‘사랑의 연탄 300만장 나눔’ 행사를 알리기 위해 직접 연탄을 날랐다.

―매스컴에 이런 활동이 자꾸 소개될수록 안 좋게 보는 시선도 있죠?

션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데, 너는 왜 이렇게 소문내고 다니냐’는 말 많이 들었죠(웃음). 그렇지만 저 혼자만 기부해서는 이 세상 많은 사람을 다 도울 수가 없는 걸요. 욕 좀 먹더라도 널리 널리 알려야 저를 따라서 함께 기부하고 봉사하는 사람이 더 많아질 테고요. 저는 바로 그런 일을 위해 쓰이는 사람이니까요.”

―아무리 그래도 남보단 내 가족이 먼저 아닙니까.

션 “물론이죠. 제 안의 사랑이 넘쳐나고 우리 가정이 행복하니까 그 사랑과 기쁨 덕분에 저도 이렇게 이웃에게 잘할 수 있는 거예요. 제 가족이 힘들고 불행하다면 진작에 관뒀겠죠.”

정혜영 “한 번도 남편은 제게 ‘기부하자’고 강요한 적이 없어요. 늘 의견을 묻고 제가 ‘더는 못하겠다’고 하면 조용히 따라줘요. 그렇게 며칠 때론 몇 달이 지나면 이상하게 제 마음이 변하는 거죠(웃음). ‘아유, 몰라…. 알았어, 하자!’ 이렇게 되는 거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정말 한 번도 큰 소리로 싸운 적이 없습니까. 버럭 화를 낸 적도 없고요?

정혜영 “이 남자랑 살아보세요(웃음). 항상 조용조용 묻고, 물 한 잔 떠줘도 ‘고마워’ 해요. 제가 아무리 까탈을 부려도 ‘넌 나랑 달라서 참 재밌어’라고 말하고요(웃음). 그런데 어떻게 싸워요?

션 “재밌잖아요. 먹는 것도, 잠자는 습관도, 성격도 다 다르지만 그래서 그 덕에 이토록 심심하지 않게 살 수 있는데, 아내에게 화낼 필요가 전혀 없죠(웃음). 그리고 무엇보다 결혼이라는 건 사랑해서 하는 것도 있지만, 평생 사랑하기로 결단을 해서 하는 것이기도 하거든요. 그렇게 내린 결심을 함부로 바꿀 수가 있을까요.”

마음에 오래 품은 질문을 마지막으로 꺼내봤다.

―두 사람은 진짜 위기를 한 번도 겪지 않아서 계속 잘 지낼 수 있었던 건 아닐까요? 갑자기 빚더미에 올라앉거나 식구 중 하나가 갑자기 병석에 눕는…. 그렇게 현실이 사랑을 증발시켜 버리는 순간이 없어서 그런 건 아닌가요?

션은 이 질문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천천히 대답했다. “셋째 아이가 무척 작고 약하게 태어났어요. 그 이후로도 아이들이 종종 번갈아가며 아팠고요. 완벽한 부부, 완벽한 가족은 어디에도 없어요. 완벽한 환경을 가진 사람도 없고요. 이건희 회장님이라고 완벽한 삶을 사셨겠어요. 그렇지만 저희는 환경에 기대서 살지 않아요. 서로의 마음에 기대서 살죠. 지금 우리 아이들, 별로 공부 잘 하지 않아요. 저희 생각보다 가진 것 많지 않아요(웃음). 그렇지만 서로의 마음에 기대어 있으니 괜찮습니다. 환경은 시시때때로 달라지고 변할 수 있겠지만, 마음만큼은 어떤 비바람에도 풍화되지 않을 테니까요.” 완벽한 부부는 없을지언정 그의 이 대답만큼은 완벽하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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